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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원만이 정답일까요? ‘협동 전략’으로 풀어보세요

학원만이 정답일까요? ‘협동 전략’으로 풀어보세요
한겨레
수과학교육놀이협동조합 조합원들의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만든 팝업북을 펼쳐보이고 있다. 수과학교육놀이협동조합 제공

[함께하는 교육] 사교육비 줄이는 교육 협동조합

‘협동조합’이란 말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교육 분야 협동조합을 통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근 비슷한 교육철학을 공유한 교육자들이 모여 교육서비스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생산자 중심 교육 협동조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은 사교육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주입식·경쟁 중심의 공·사교육에 대해 문제의식을 품은 이들이 만든 다양한 교육 협동조합을 만나봤다.

아이들 교육문제 고민하던 이들
손잡고 대안적 교육공동체 열어
교육비 지출 많은 주요교과부터
한문·고전 수업은 인성교육 초점
팝업북 활용한 과학놀이 수업까지
한뜻으로 모여 더 즐겁게 공부해

강사·부모 밀착소통하는 특별한 학원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알아서 공부를 찾아 하더라고요.”

학부모 김희진(서울 은평구)씨는 지난 5월부터 중3 딸 류지희양을 강사들의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에 보낸다. 매회 3시간씩 주 2회. 처음 한 달,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는 걸 힘들어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아카데미쿱에 가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공부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읽은 책을 엄마에게 추천하기도 하고, 학업이나 진로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아카데미쿱 중등 자연반 학생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수업 장면. 아카데미쿱 제공
지난달 30일 창립총회를 연 아카데미쿱은 소수정예 통합교과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공동체다. 강사들은 초·중학생 5~8명을 한 반에 모아 수업한다. 이들의 목표는 학생들이 ‘함께하는 공부’를 통해 공부의 즐거움을 배우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알음알음 모인 강사진은 주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를 최근에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청년들이다. 현재 서울 강남·노원·송파 등 7개 지역에서 아카데미쿱이란 이름으로 총 15명의 강사가 약 100명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공간을 임대하지 않고 지역 아이쿱생협 사무실이나 다른 단체의 공간을 빌려 사용하기 때문에 교육 수요자 입장에서 많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수강료는 초·중등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학생 1인당 과목별 월 10만원 선이다. 아이쿱생협 조합원의 경우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생협의 부산 조합원 자녀를 대상으로 2012년 말 시작한 아카데미쿱은 초등부 놀이창작(저학년), 한문교양·자연탐구(고학년), 중등부 자연·인문·고전교양반 등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아카데미쿱의 특징은 과목별·학년별 수업이 없다는 점이다. 학년별로 나뉜 교육과정을 강사들이 모두 모아 ‘중등 자연반’, ‘중등 인문반’으로 재구성해 수업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수학과 과학을 통합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한 중등 자연반 학생들은 중학교 3년의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수학 내용을 수·연산·확률·기하·함수 등 굵직한 다섯 개 주제로 나눠 먼저 배운다. 이를 기초로 우주부터 태양계·지구를 거쳐 원자와 분자까지 과학 분야 주제별 작은 단위 내용을 공부한다. 이 역시 중학교 3년 동안의 과학교과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초등 한문교양반은 아이들이 쉽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한문수업을 간단한 개념놀이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부담을 줄였다. 한문수업의 첫째 목표는 ‘인성교육’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비판’(批判)과 ‘비난’(非難)의 차이를 한문풀이로 배운 다음 자신이 누군가에게 했던 비난이나 비판의 말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등 개념 이해를 돕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강사들은 매시간 수업일지를 작성해 이를 네이버 밴드에 올리고 학부모들과 공유한다. 일지는 수업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눈에 선히 보일 정도로 자세하고 길게 작성한다. 이 교육 협동조합만의 또다른 특징이다.

한문교양반을 수강하는 전호창(서울 광진초4)군의 어머니 박선주씨는 “아이가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편이었다. 일반 학원에 믿고 맡길 수 없어 고민이 많았다”며 “협동조합 수업을 들으면서부터는 아이가 어떤 내용으로 다른 친구들과 토론하고 소통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는지 등을 일지로 알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심우열 대표는 “개인차는 있지만 수업을 시작한 뒤 3개월 정도 되면 대체로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했다. 교사·학부모가 아이들을 믿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방법을 천천히 지켜보고 응원하는 방식의 교육과정을 짰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 근처에 살 경우,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학생을 5명 이상 모으면 반을 개설할 수 있다. 황승주(서울 대곡초4)군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외국생활을 했던 탓에 아이가 한문에 관심이 없었는데 아카데미쿱에 다니면서부터는 스스로 한자책을 찾아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새로 개설한다는 초등 자연반도 다니게 하고 싶은데 개강 최소 조건인 수강생 5명을 모으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공계 출신 엄마들이 모여 ‘펼치는’ 과학교육

최근에는 유·초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과학 사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엄마들도 늘어난다. 하지만 교구나 강사료 등 비용이 만만치 않다. 수과학교육놀이협동조합은 이런 엄마들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는 과학강사들의 모임이다. 이공계 출신 경력단절 여성 25명이 모여 만든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지역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한다.

이들은 1인당 2만원씩 출자해 모인 기금으로 과학키트를 만들고, 창의적인 교수법 등을 개발한다. 조합으로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해당 강의를 맡은 조합원이 수업료의 10%를 조합 운영비로 낸다.

수과학교육놀이협동조합에서 교구로 활용하는 과학 팝업북. 수과학교육놀이협동조합 제공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은 출산·육아로 경력이 끊겼던 여성들이다. 이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할 때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전공지식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던 여성들은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위셋)에서 과학콘텐츠 교육자를 양성하는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교육을 받다 협동조합을 차려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서로의 전공지식을 살려 힘을 합치면 더 좋은 교육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셋에서 학교나 도서관에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혼자서 당장 출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점도 중요한 동기가 됐다.

이들이 진행하는 ‘팝업수업’은 아이들이 팝업북(책을 펼칠 때마다 입체적인 도형이 나타나는 형식의 책)을 직접 만들며 관련 내용에 대해 배우는 식으로 꾸려진다. 박기영 이사장은 위셋 강의에 출강하면서 예비 강사들에게 팝업교육 등을 전파했다.

이들 수업은 책을 만들며 과학·수학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 지역 도서관이나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인기가 좋다. 경기 광명·안산, 인천, 서울 송파·노원 등 여러 지역에서 교육 문의가 이어진다. 송파나 노원 지역 도서관의 경우 방학마다 조합에 강의를 요청한다.

김경란 조합원은 “세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일을 못해 아쉬웠었다. 학교나 도서관에 출강하면 일하는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고, 전공했던 식품영양 관련 지식을 살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조합원은 대부분 수학과 과학을 오랫동안 가르쳐온 여성 과학기술 전공자다. 함께 모여 수업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새로운 팝업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더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는 게 교육 협동조합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중고생 교과목 공부 돕는 전 사교육 강사

대형 교육회사에서 강사로 활동하던 민혁기 대표는 1년 전부터 꿈이은교육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그는 “강사가 얼마나 많은 학생을 학원에 데리고 왔고, 학생들 당장의 성적을 올렸는지 성과만 평가하는 분위기에 회의를 느껴 강사 생활을 그만뒀다”고 했다.

“학원 강사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교육자로서의 보람은 없고 실적에 대한 압박만 컸다. 그런 사업구조에 ‘교육’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같은 학원에 다니던 강사들, 평소 민 대표와 뜻을 함께하는 종교인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께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꿈이은교육협동조합 역시 아카데미쿱과 마찬가지로 공간 임대를 하지 않는다. 교회의 사무실을 빌려 쓰거나 학생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기 때문에 운영비가 덜 든다.

조합에서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강사 6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중·고교생 35명의 학과 공부를 돕는다.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한다.

이 조합 프로그램의 특징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교과수업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상담·인성교육도 병행한다는 점이다. 평소 자신의 분노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고1 이아무개군은 또래 친구들이나 부모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자주 보였었다. 이군을 만나 함께 공부하던 민 대표는 이군의 이런 태도와 관련해 오랜 시간 상담을 진행했다. 덕분에 이군은 스스로 평소 태도를 돌아보고 공부에도 흥미를 보였다.

이 협동조합의 강사들은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학생들에 대한 학습법, 상담 노하우 등을 서로 공유한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서울기독학생회의 고교생 대상 진로특강, 담쟁이숲아카데미 등의 강좌를 학생들에게 안내해주기도 한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