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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능 만점에 '환호'하는 언론, 이래도 되나

수능 만점에 '환호'하는 언론, 이래도 되나

14.12.07 10:55l최종 업데이트 14.12.07 10:55l정은균(jek1015)

수능 만점자 관련 뉴스가 뜨겁다. 대구 경신고와 서울 은광여고가 그 중심에 있다. 놀랍다. 두 학교 모두 한 명 내기도 힘든 시험에서 만점자를 한꺼번에 4명이나 냈다. 축하하고 치하할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마음이 개운치 않다. '수능 만점 4명'을 요란스레 전하는 언론들 때문이다. '만점'이 사람들의 삿된 호기심을 끄는 것임은 분명하다. 아무리 '물수능'이었다지만 대학 입시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수능이지 않은가. 그런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뜨거운 시선이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수능 만점 소식을 전하는 일부 언론의 시각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수능 만점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비결이 있다고 한들 일반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교나 학생이 처한 조건과 환경, 갖고 있는 역량과 태도 등이 같을 수 없겠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몇몇 언론은 그 비결을 찾아낸 모양이다.

'수능 만점 4명' 대구 경신고․은광여고 비결 있나(<경향신문>)
만점 4명 경신高, 교사들 '수업 경쟁'이 '수능대박'(<문화일보>)

두 기사 모두 수능 점수 발표 직후인 지난 4일 보도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가령 대구 경신고는 동일 과목이라도 단원에 따라 장점을 지닌 교사가 그 분야를 맡도록 한다고 한다. 수시로 '학습연구 토론회'를 열고, 교과서와 참고서, EBS교재 등을 바탕으로 학습 자료를 만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 학교 박용택 진학부장은 "교사들은 수업 후 학습연구를 위한 토론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의 유명 입시학원을 방문해 입시 자료까지 만든다니 밤을 새우는 일쯤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까.

경신고에서는 야간에 보충수업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기사는 학생들이 교사들을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보충수업 시스템이 이번 '수능 만점 4명'이라는 놀라운 결과의 토대가 된 것처럼 쓰고 있다. 학생의 교사 선택 시스템이 교사들 간 수업 잘하기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수업의 질을 높였다는 분석에서일 테다.

수능 만점 비결 분석... 이게 맞을까

이들 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수능 만점의 비결에 대한 분석이다. 경신고의 경우, <경향>과 <문화>는 차별화된 수업방식과 교사들 간 선의의 경쟁 구도에서 그 비결을 찾고 있다. 은광여고와 관련해서는 학교의 맞춤 상담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 타당할까.

이들 기사의 취지나 의도가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기사들이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가 무엇일까. 학교가 수능에서 좋은 성과를 내놓으려면 교사들 간 경쟁 구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일까.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사설 입시학원들을 본받아 '시장화'하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교사를 선택한다니 학교 교사들이 스스로 '상품'이 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이들 기사만 놓고 보면 학생들의 수능 성적에 크게 관여하는 변인은 학교와 교사에게 있는 것 같다. 최고의 입시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입시 준비에 맞춘 진학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마련하는 데 전념한다. 모든 교육활동의 기조를 입시에 맞추는 학교의 학원화, 교사의 강사화를 지향한다.

교사들에게도 특별한 무장이 필요하다. 무한 능력의 소유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경신고의 선생님들처럼 학교에서 밤을 새우는 열정까지 토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 날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는지, 그런 토론에 진심을 갖고 참여하는 교사들이 얼마나 될지 나로선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능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는 힘들다. 위에서 본 일부 기사에서처럼 학교와 교사에 초점을 맞춘 '만점 비결' 분석은 수능 문제와 관련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다. 학생들의 수능 성적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배경 요인을 무시하게 만들기도 하다. 만점 비결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학교와 교사의 구실이나 중요성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수능 성적을 포함해 우리나라 학생들이 보여주는 학업 성취 결과가 과연 어떤 요소들에 가장 크게 좌우되는지 그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학력 대물림이나 교육 세습과 같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세상 아닌가.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다. 작년 서울대의 '신입생 특성조사 보고서'에 관한 언론 보도들을 보자. 이에 따르면 서울대 신입생 중 아버지와 어머니 학력이 대졸 이상인 경우는 각각 83.1%와 72.0%에 달했다.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집계된 20세 이상 성인 중 대졸자 비율인 43.2%의 2배에 가까운 수치였다.

부모 직업이나 학생들의 출신 지역도 '개천에서 용 나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버지가 사무종사자나 전문가와 같은 이른바 화이트칼라 계층에 종사하는 신입생 비율이 절반을 넘는 53.5%나 됐다고 한다. 도시 지역 학생도 많았다. 서울 출신 신입생이 34.9%였으며, 광역시와 수도권을 포함한 대도시 출신 학생 비율이 74.3%나 나왔다. 10명 중 거의 3명꼴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수능 만점자 29명의 부모들 중에도 현직 교사가 상당수라고 한다. 광주 인성고 박현준 학생은 아버지가 인성고 영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순천 매산고의 정대승 학생 또한 아버지가 같은 학교 교사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역시 인근에 있는 광양 백운고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밤 12시까지 남아있는 교사들... 왜 불편할까

어제 <YTN>은 수능 만점자를 4명이나 낸 경신고의 김진수 교사 인터뷰를 내보냈다. 김 선생님 반에서는 이번에 수능 만점자가 2명이나 나왔다고 한다.

교직 경력 13년차라는 김 선생님은 이 인터뷰에서 3학년 담임들 절반 정도가 항상 밤 12시까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선생님들이 모여서 토론 연구모임도 많이 하고 밤을 새우기도 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밤을 새우는 것까지는 과장된 것이라면서 전한 말이다.

과장이라고 하지만 교사들이 학생들을 위해 밤을 새워 토론을 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절반 이상의 3학년 담임들이 자정까지 남아 있다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스승'이나 '교육자'가 아니라 단순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김 선생님을 포함한 경신고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이 각별히 다가오는 이유다.

김 선생님은 인터뷰 말미에서 고3 수험생들 못지않게 힘드셨겠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매년 하는 거라서 적응이 됐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마지막 대답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김 선생님은 정말 '적응'이 된 걸까. 그런 '적응'은 교육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마음 한켠이 왠지 불편해졌다.

어지간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은 밤 10시 정도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교실 문이 활짝 열린다. 학생들의 수능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학교는 가능한 모든 환경을 조성하고 방법을 동원한다. 정도와 노력의 차이가 없지 않겠지만 고3 담임들은 혼신을 다해 학생들 입시 지도에 매진한다. 크든 작든 교사 '개인'으로서의 삶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고3 담임의 '숙명'이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온당한가. 12시가 아니라 새벽까지 학생들을 돌보고, 그렇게 해서 한 학교에서 4명이 아니라 그 이상의 만점자를 내는 것이 진정으로 이 나라 전체 교육을 위하는 길일까.

저는 입시 제도에 불만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교복을 입은 채 학교에서 지내며, 밤늦게까지 학문적 성취감과는 거리가 먼 입시 공부를 하다가 4시간 남짓의 잠을 자곤 이튿날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야 했던 일상의 반복이 싫었습니다. 그런 노력은 한순간의 선택과 실수가 대학을 결정하는 수능으로 점수화될 예정이었고, 저 또한 실수 때문에 최저등급을 못 맞추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끊임없이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한 채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습니다.

수능 만점자 중 하나인 부산 대연고 이동헌 학생이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수능 소감 중 일부라고 한다. 하루 4시간 정도만 자면서 학문적인 성취감과 무관한 문제 풀이 공부를 해야 하는 수능 수험생들의 답답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고, 이 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를 차분하게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수능 만점이 교육의 모든 것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수능 문제 한두 개로 대학과 미래가 결정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아이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행복과 여유를 유예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세상을 유지시키는 핵심 수단인 입시 제도를 날카롭게 꼬집어야 할 언론이 수능 만점에 환호하는 사태가 비극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