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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런 이민人材, 한국에선 왜 안나오나

이런 이민人材, 한국에선 왜 안나오나

[동아일보]
본보-현대경제硏, 국내 체류 외국인 고급인력 115명 심층설문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입니다.”

7년 전 친구의 소개로 한국에 온 캐나다 출신의 A 씨(42). 현재 교육업체에서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그는 한국 생활을 이렇게 요약했다. 빠른 인터넷 환경과 신속한 서비스,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유흥 문화가 ‘재미’라면 지나치게 업무 위주인 근로 환경과 직장 내에서의 눈치 문화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고급인력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선 A 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였다. 글로벌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한 한국 대기업에서의 경험과 독특한 문화는 매력적이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면서 장기간 체류하기에는 뭔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 한국은 ‘징검다리 국가’

세계적인 명문 공대인 인도공과대(IIT)를 졸업하고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B 씨(27). 몇 년 전 그는 미국으로의 취업을 희망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어렵게 되자 한국행을 택했다. B 씨는 “한국 대기업의 임금이나 복지 수준이 나쁘지 않은 데다 몇 년간 경력을 쌓으면 미국으로 가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외국인들은 체류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출국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B 씨처럼 30세 미만인 경우는 절반이 한국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귀국하거나 미국이나 유럽 기업으로 가고 싶어 한다.

비자 유형별로 보면 대부분 기업체에서 근무하는 특정활동(E7)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 인력의 61.1%가 한국을 떠나겠다고 밝힌 점이 눈길을 끈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전문 인력에 대한 국내 기업의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용 한국과학기술평가원 부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한 번은 와볼 만한 나라로 보지만 오랜 기간 머물기는 꺼리다 보니 경력 관리를 위한 ‘징검다리 국가’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거주 여건보다 조직문화가 걸림돌

이번 조사에서 외국인 고급인력들의 한국 체류 만족도는 3.83점으로 정부가 조사했던 결혼이민자(3.64점)나 단순 노동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3.51점), 영주권자(3.25점)에 비해 높았다. 주변의 친구나 지인에게 한국 취업이나 체류를 추천하겠다는 이들도 응답자의 절반에 달했다.

한국에서의 생활 여건에 대한 불만이 외국의 고급인력을 유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점이다. 그 대신 외국인 고급인력들은 ‘일과 삶의 불균형’과 ‘차별’, ‘근무처 내 소통’과 ‘평가 및 승진의 불이익’ 등을 우려해 한국을 떠나겠다고 답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부 교수는 “외국 인재를 단기적으로 활용하고 내보내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한국의 기업 환경을 사전에 인지하면 우수한 외국 인재가 오지도 않을 것이고, 와서도 열심히 하지 않고 떠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대기업의 외국인 고급인력 관리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핵심인재 영입을 위해 해외 곳곳을 누빈다. 하지만 이렇게 영입된 인재들 중 계약기간조차 못 채우고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현지법인을 이끌던 임원들이 경쟁사로 간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2007년 LG전자는 ‘C레벨’로 불리는 최고위 임원에 IBM과 맥킨지 등 글로벌기업에서 근무한 외국인을 뽑았지만 실적 부진을 이유로 대부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LG전자의 전직 임원은 “영어로 말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외국인 임원과 한국인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였지만 결국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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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중심의 한국 기업 상당수가 측근 위주의 경영을 하다 보니 외국인들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 교수는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같이 미국에서 이민자가 창업한 기업은 미국 500대 기업의 41%에 이른다”며 “한국에서도 뛰어난 외국인들의 취업과 창업이 활발해져야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 떠오르는 외국인 통합 이슈

고급인력들은 자녀 교육과 언어 소통, 일상생활 등에서 고용주나 상사, 동료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답했다. 반면 지역 시설이나 정부기관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응답은 적었다. 정부에서 외국인 전문 인력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놨지만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백인을 우대하고 같은 동양인이나 흑인을 무시한다”거나 “한국인들은 ‘향후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중국인들에게는 ‘짱깨’라고 비아냥거린다”는 답변도 나왔다. 결혼 이민자나 단순 근로인력이 아닌 고급인력들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의 차별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기선 IOM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이제까지 외국인 관련 문제라고 하면 결혼 이민자에 한정됐지만 앞으로 피부색이 다양한 외국인 고급인력이 들어오고 이민 2세대가 취업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통합 문제가 한국 사회의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이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