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맛나요!

산이 깊어 멋도 맛도 깊다, 청송

산이 깊어 멋도 맛도 깊다, 청송
계곡마다 맑은 폭포가 흘러내리고, 도공이 계곡의 돌을 캐고 물속의 돌을 주워 새하얀 백자를 빚는 고장. 산자락에서 달큼한 사과가 익고 논에서 금빛 벼가 춤출 때 옛 초등학교 교실에서 향기로운 사과주를 담그는 마을. 느리고 천천히 하지만 풍요롭고 알차게 익어가는 청송의 가을 풍경 속으로!

 


청송의 슬로 푸드 청송 사과
청송 백자 사이에 마치 가을 산의 풍광처럼 빨갛고 노랗게 익은 청송 사과를 놓았다. 산간 지역인 청송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풍족한 고장. 1924년 한 종교인이 묘목을 들여오면서 청송에서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해발 250m에 일교차가 크고 해양성 기후와 내륙성 기후가 교차하는 청송의 자연은 사과 재배를 위한 천혜의 자연조건. 청송 사과는 전국 어느 사과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고 산미가 적당하다. 객토와 퇴비를 사용하는 건강한 토양에서 사과를 재배하고, 개인 농장에서도 저농약 재배를 시도해 껍질째 먹는 사과 역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송에서 재배했다.

2014 청송 사과 축제
해마다 사과 수확이 끝난 가을에 여는 사과 축제는 주왕산 단풍놀이와 이색적인 사과 요리 시식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청송 지역 농민의 주요 소득원인 사과의 한 해 수확을 마무리한 후 온 고장이 즐거운 퍼레이드와 음악회, 요리 경연 대회, 예술 공연 등을 벌이며 한바탕 즐거움에 빠진다. 올해 축제는 11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청송군 사과공원에서, 11일과 12일 이틀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청송 사과공원 주소 경북 청송군 청송읍 주왕산로 222 문의 054-970-6227(청송군 관광과), 054-873-3686(축제추진위원회)


흙이 아닌 돌로 만든 백자의 가치 청송 백자 마지막 사기 대장 고만경 옹

5백 년 전부터 청송을 비롯한 경북 지역의 서민들이 밥을 담고 나물을 올려 먹던 청송 백자. 청송의 도공은 산자락에서 도석(일반 도자기는 도토라는 흙으로 빚어 만들지만, 청송에서는 돌가루로 만든다)을 캐고 빻는 고된 과정을 거쳐 하얀 사기를 만들었다. 그러니 도석 가루를 아끼고 등금쟁이(보부상)가 많이 짊어지게 하기 위해 자연스레 얇고 가벼운 사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도석이라는 특별한 자연 소재로 만드는 청송 백자는 1970년대 이후 양은그릇, 플라스틱 그릇이 대거 등장하면서 50년간 맥이 끊겼습니다. 도공이 자연 재료로 인고의 시간을 담아 만든 그릇이지만, 공장에서 기계로 뚝딱 찍어내는 그릇과 경쟁할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청송 부남에서 태어나 청년기에 15년간 민요에서 백자 만드는 일을 배우며 사기 대장까지 지낸 고만경 옹은 공방을 떠난 지 50여 년 만인 2009년에야 옛 도석 광산 자리에 청송군이 마련해준 백자 전수장으로 돌아와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전수관 앞산에서 돌을 캐고 빻은 뒤 배합해서 모양을 만들고 유약은 노천 아래서 캔 돌가루로 만드니 청송 백자는 오롯이 자연의 산물입니다. 무엇보다 가볍고 떨어뜨려도 쉽게 깨지지 않도록 그릇의 끝을 밖으로 미세하게 말아 빚거나 양파형의 독특한 모양으로 만드는 것도 청송 백자의 기술력이지요.” 청송의 향토 문화이자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인 청송 백자를 보전하고 맥을 잇기 위해 청송군은 청송문화관광재단을 발족했다. 재단은 올해 처음으로 국내외 도예가들이 청송 백자를 더욱 깊이 연구하고 창작할 수 있도록 입주 작가를 공개 모집해 지원한다. 산은 깊지만 그보다 더 깊은 도공의 혼이 깃들어 있기에 세상과 더 넓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유산, 이것이 청송 백자의 소중한 의미요 진귀한 가치다.

청송 백자 전수장 주소 경북 청송군 부동면 법수길 190
문의 054-873-7744, www.csbaekja.kr


청송의 슬로 푸드 청송 사과 아락
청송 백자 잔에 사과주 아락을 담아 단아한 술상을 차렸다.
‘아락Arak’은 증류주를 뜻하는 세계 공통어. 청송 사과 아락은 청송의 사과와 청송에서 재배한 쌀로 천천히 정성껏 만든 사과 증류주를 뜻한다. 자연에서 얻은 싱싱한 사과와 쌀을 그대로 증류해 원료 특유의 풍미와 향을 잘 살린 것이 청송 사과 아락의 특징. 청송군청은 우리나라 전통주 명가인 배상면주가와 협력해 지역의 이름을 당당히 내건 청송 사과 아락이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이 술은 폐교가 된 주왕산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든 청송양원이라는 양조장에서 생산하며, 배상면주가의 전국 판매망과 자체 판매망으로 유통해 청송 지역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느린마을 양조장 청송양원 주소 경북 청송군 부동면 하의리 162-1
문의 054-874-1645


주왕산 달기폭포

멀리서부터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11m 높이의 폭포는 주왕산의 또 하나 대표 폭포인 용추 폭포와 비교하면 훨씬 남성적인 기운을 뽐낸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로 밑의 웅덩이, 용소龍沼의 깊이는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다고 한다.


중평 솔밭

“소나무와 잣나무는 울울창창하고, 연기와 노을은 어두침침하게 잠겨 있어 맑고 그윽한 한 동학이 의젓한 선경仙境인 듯하다.” 조선시대의 문인 홍여방이 기록한 것처럼 청송靑松은 ‘푸른 소나무’의 고장이다. 사양서원으로 가는 길목에 만난 중평 솔밭에는 2백 년 이상 된 소나무 80여 그루가 기세등등하게 숲을 이룬다.


일본에서 청송의 선조를 찾아온 도예가 일본 사쓰마야키 명인 심수관

일본 가고시마 현(옛 사쓰마번)에는 청송 심씨靑松沈氏의 성을 4백여 년 동안 지켜온 도자기 가문이 있다. 일본 3대 도자기로 불리는 ‘사쓰마야키’의 심수관沈壽官 일가다. 4백 년 전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는데, 이 가문의 초대 당주인 심당길 도공도 그중 하나였다. 그의 솜씨는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고 가문 대대로 예술혼이 이어져 심수관 일가는 일본 최고의 도예가로 우뚝 섰다. 그의 후손이 남긴 사쓰마야키가 지난 4월 청송 주왕산 자락에 문을 연 심수관도예전시관에 전시되었다. 무려 4백16년 만에 성사된 귀향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현 당주인 15대 심수관 도예가가 그의 부인 오사코 스미코大迫壽美子와 함께 청송 심씨의 시조묘를 찾아와 조상에게 예를 갖췄다. 30년 전 청송으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의 두 번째 방문인 것. “좋은 도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심수관 도예가는 ‘지역성’을 첫머리에 올린다.

“조선백자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우리 가문의 선조들이 목표한 빛깔, 형태, 질감은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보는 순간 ‘이것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것은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와 방법, 생산지가 한 맥락을 이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대 심당길 도공이 처음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들 때 조선에서 쓰던 원료를 구하지 못해 사쓰마번의 흙을 쓰면서 그 원료에 적합한 방법을 구현해냈습니다. 그것이 발전한 지금의 사쓰마야키는 매우 독창적 도자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화려한 금색 유약을 칠하고 정교한 기법을 더한 사쓰마야키와 담담하고 유려한 조선백자 사이에는 4백여 년 시간과 거리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심수관 일가는 늘 고향을 찾는다. 서민을 위한 새하얀 백자를 만들던 고향 청송이 일본 최고 도예 가문의 고향이자 예술적 기원이다.


청송 백자 전시관 & 청송 심수관도예전시관

5백여 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시대 대표 서민 생활 도자기 청송 백자와 청송 심씨의 후손인 일본 가고시마 현 심수관가家의 도자기를 번갈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청송에 문을 열었다. 도석이라는 돌의 가루로 만든 청송 백자는 흰 눈처럼 맑고 투명한 빛을 띠며 그릇 두께가 얇고 놀랄 만큼 가볍다. 반면, 사쓰마야키는 정밀한 투각 기법과 다양한 색의 유약을 입혀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두 전시장에서 각각 대접, 주병 등 청송 백자 40여 점과 12대부터 15대 심수관까지 사쓰마야키의 대표작 30여 점을 전시해 조선과 일본의 도예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주소 경북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로 494
문의 054-874-0101, www.cctf.or.kr


흙냄새도 나고 사람 냄새도 나야 좋은 옹기 청송 전통 옹기장 이무남

청송군 진보면에 있는 이무남 옹기장의 작업장 외에 그의 옹기를 파는 별도의 매장은 없다. 그런데도 옹기의 전성기이던 1970년대 이전이나 요즘이나 겉멋만 잔뜩 부린 옹기를 ‘청송 옹기’라고 속여 파는 해프닝이 간혹 들려온다. 청송 옹기를 한번 써보면 누구나 최고로 꼽아 그 오랜 세월 독보적 명성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청송 옹기는 오색 점토로 만듭니다. 흙에서 다섯 가지 층이 한꺼번에 나오는 곳은 청송밖에 없지요. 황토가 많이 섞인 이 좋은 흙으로 물 반죽을 하고 발로 밟아 모양을 만든 것을 청송의 선선한 산바람에 잘 말립니다. 옹기가 알맞게 굳으면 청송의 소나무와 참나무를 태운 재와 부엽토를 섞은 잿물을 유약 대신 발라 1200℃로 끓는 가마에서 굽지요. 고열로 구울 때 잿물의 알갱이가 표면에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 공기가 잘 드나들게 되니 음식을 담아도 썩지 않는 숨 쉬는 항아리가 되는 겁니다.”

18세에 뒷산의 흙으로 옹기 만드는 것을 배워 56년째 옹기를 빚고 있는 그는 지금도 빛이 들지 않는 움막 같은 작업장에서 웅크린 채 물레를 돌린다. 화학 유약을 발라 매끈하게 뽑은 요즘 옹기에 비하면 재와 흙을 발라 구운 그의 옹기가 투박하고 덤덤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국의 유명 된장 공장이든 김치를 담아본 주부든 그의 옹기를 써 본 사람이면 누구나 굽이굽이 청송으로 옹기를 사러 다시 찾아오고, 자연 친화적이고 사람 냄새 나는 제품이 귀해 여기저기서 문의가 많아져 그의 옹기 작업은 멈춤이 없다. 든든한 아들이 가마에 불 때고 흙 나르는 일을 함께 하며 전수자의 길을 가기에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는 이무남 옹기장. 청송 옹기 이야기만 나오면 자신이 살아서 맥이 이어지는 게 더없이 뿌듯하다며 웃는 그의 미소가 또 한 겹의 구수하고 훈훈한 유약으로 청송 옹기에 덧입혀져 있다.

청송 전통 옹기장(체험관) 주소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4리 351
문의 054-874-3362


청송의 슬로 푸드 약수닭백숙
명궁약수가든은 가게 정문 옆에서 솟아난 약수를 바로 받아 백숙을 끓인 뒤 구수한 누릉지를 얹어 낸다. 닭가슴살로는 맛깔스러운 떡갈비를 만든 뒤 숨 쉬는 청송 옹기에 담아 식당 앞 너른 바위 위에 상을 차렸다.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청송으로 낙향해 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발견했다. 그 물을 마셨더니 트림이 나오고 속이 편했는데, 신기하게도 냄새와 빛이 없는 약수는 아무리 가물어도 솟아나는 양에 변함이 없었고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았다. 또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른빛이 돌고 찰기가 있어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었다. 특히 청송 주민들은 닭백숙을 끓일 때는 반드시 약수를 이용한다. 철분 함량이 많은 이 약수로 닭백숙을 끓이면 닭의 지방이 제거되어 맛이 더욱 담백하고 위에 부담이 적다.

신촌약수탕 명궁약수가든 주소 경북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 31-12
문의 054-874-0033


참닥나무로 만든 선비의 종이 청송 전통 한지장 이자성

“청송의 ‘참닥’은 다릅니다. 이거 봐요, 나무줄기가 요렇게 대나무처럼 키가 크고 쭉쭉 뻗어서 탈피하기가 좋지요.” 사슴 발목처럼 가늘지만, 바람에 묵직하게 흔들리는 것은 한지 원료인 참닥나무다. 한지 생산장 주변에는 이 참닥나무가 지천이다. 이 지역의 흙에서 나고 자란 참닥나무 예찬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이는 7대째 한지를 만드는 이자성 명인. 그는 청송이 한지 생산으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이유로 우수한 원료, 깨끗한 물, 기술을 꼽았다.

“만져봐요. 매끈매끈하게 윤기가 흐르고 맑지요. 그치요? 아니면 그 종이는 죽은 겁니다. 물이 나쁘면 그게 안 나온단 말입니다. 물에 철분이 들어가면 한지가 변색돼요. 1천 년 이상 영원토록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자꾸 붉게 변한단 말입니다. 그럼 안 되잖아요. 그렇잖아요.” 3년 미만의 토종 참닥 또한 섬유가 곱고 부드러워 고품질의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원료. 이자성 명인은 생산장 부지에 참닥나무와 함께 재배하는 황촉규 뿌리의 점액(닥풀)을 배합해 한지를 만든다. 청송의 흙에서 나고 자란 원료가 결국 품격 있는 청송 한지를 완성하는 것. 그렇게 참닥을 채취해 삶아 껍질을 벗기고, 다시 껍질을 말려 삶고 씻고, 섬유를 두드리고 풀어 발로 뜨고, 물을 빼고 건조하고 다듬는 과정을 반복한다. 고된 노동의 시간을 견디면서 전통 한지 생산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자성 명인의 남다른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타 지역에서는 수입 닥나무를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청송 한지는 다릅니다. 순수 전통 한지를 지키는 것이 우리 종이를 지키는 일이고, 나아가 우리 문화와 정신을 살리는 일입니다.” 한지를 만드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자 사명이라 강조하는 이자성 명장. 그가 만드는 청송 한지는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명인의 땀과 고뇌와 바람이 압축된 신성한 보물이다.

청송 전통 한지장(체험관) 주소 경북 청송군 파천면 청송로 5882-41
문의 054-872-2789


청송의 슬로 푸드 산채비빔밥
청송 전통 한지를 테이블 매트 삼아 청송의 자연식 산채비빔밥을 차렸다.
청송 산지에서 채취한 각종 산나물을 넣은 산채비빔밥은 청송의 지역색을 반영한 대표 먹거리. 박하승 대표가 운영하는 주왕산 청솔 식당의 비빔밥에는 일반적으로 취나물, 달래순, 표고버섯, 어수리나물, 고사리, 무생채가 들어간다. 밥 위에 나물과 달걀 프라이를 올려 재래 고추장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여기에 된장찌개를 함께 낸다. 당귀김치, 곰취김치, 참취, 병풍나물, 박쥐나물, 박잎장아찌, 뽕잎장아찌, 당귀무침 등 각종 자연산 산나물과 나물전, 더덕구이, 도토리묵을 곁들여 한 상에 나오는 산채 정식도 별미다. 특히 ‘언어리’라 불리는 어수리나물의 쌉싸래한 향이 입맛을 진하게 돋운다. 건강한 식재료가 집약된 주왕산의 산채 비빔밥은 그야말로 자연 보양식이다.

주왕산 청솔 식당 주소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319
문의 054-873-8808


김민정 수석기자, 신진주 기자, 이정선 사진 김동오・이경옥 기자, 이명수 취재 협조 청송군청 캘리그래피 강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