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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아이들 꿈에 맞춘 진학 설계…탐구조사·발표회 등 차곡차곡

아이들 꿈에 맞춘 진학 설계…탐구조사·발표회 등 차곡차곡
한겨레
 

 

인천 숭덕여고 학생들이 일본 푸르고, 중국 천진14중, 인천 만수고 학생들과 국제 학술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특화 프로그램 눈길끄는 일반고

흔히 일반고를 ‘면학 분위기가 덜 조성돼 있는 학교’로 생각하기 쉽다. 모든 일반고가 다 그런 건 아니다. 대입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 등 학교 역량이 중요한 전형이 강세를 보이면서 특화한 교육과정·프로그램을 운영해 활기를 띠는 일반고도 나온다. ‘일반고 전성시대’의 모델이 될 만한 학교들을 만나봤다.

학술에세이 인터넷 짜깁기 되지 않게
국회도서관 등서 자료찾기 가르쳐
융합동아리 특정주제 공동연구로
다양한 시각서 입체적 탐구조사 등
수능 배치표 중심 교육 벗어나
아이들 적성 살린 교과과정 돋보여

국제 학술대회·융합동아리 있는 인천 두 학교

지난 10월31일에 만난 인천 숭덕여고 3학년 홍승정양은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수시 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합격한 대학에서의 인성면접 시간.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자기소개서에 적힌 내용 위주로 질문을 던졌다.

“꿈이 디스플레이연구원? 참 구체적인데? 어떤 배경에서 이런 꿈을 꾸게 됐죠?”

홍양은 1, 2학년 때 교내 프로그램인 학술에세이 쓰기, 아르앤이(Research & Education, 학생들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조사 및 연구활동을 하고, 관련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활동) 등에 참여하며 쓴 ‘휴대폰 디스플레이’ 관련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연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소재 등에 관심을 기울였고, 디스플레이연구원에 대해서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고교에 가면 공부만 시키겠지.’ 입학 전 예상과 달리 학교는 교과 공부만 강조하지 않았다. 3월, 관심 분야가 비슷한 학생들끼리 학술에세이 모둠이 꾸려졌다. 매년 ‘논문은 어떻게 쓰는가?’라는 주제로 특강이 열렸다. 올해는 인하대 교양학부 교수가 방문해 ‘학술에세이 쓰는 법’을 알려줬다. 모둠별로 에세이 주제가 정해지면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을 이용해 국회도서관 등을 찾아 자료조사도 했다. 김경애 진로진학상담부장은 “논문을 쓸 때 학생들 대부분이 인터넷 자료를 짜깁기한다”며 “논문 작성법을 기본부터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어 아날로그식 자료조사를 권한다”고 설명했다.

문과 학생들은 해마다 열리는 국제 학술대회에도 참여한다.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푸르고, 중국 천진14중 학생들을 비롯해 이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미국 학생들 등이 참여한다. 3학년 장아련양은 “평소 교육 분야에 관심이 많아 학술대회 때 ‘한·중·일 교육제도’ 관련 연구 발표를 했다. 일반고에서는 흔치 않은 교내 활동”이라고 했다.

장아련양의 언니 장홍련(경희대 경영학과 2학년)씨는 “교사가 밀착해 진행하는 교내 프로그램이 많아 학원 다닐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교사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설계·추진하면서 학생의 성장과정 등에 집중하고 이런 과정이 학생부에 잘 정리될 수 있게 돕는다.

십여년 전만 해도 이 학교 진학을 반가워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약 5년 전부터 다양한 진로진학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학생부종합전형(전 입학사정관제) 등이 생기면서 교내 활동 내용으로 잠재력을 인정받고 주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수도 늘었다. 유성호 진학지도부장은 “사정관들이 실사를 나오면 ‘일반고에서 해외학교 교류, 국제 학술대회 등 활동을 이렇게 하는 사례가 흔치 않다’며 놀라워한다”고 했다. 학교 쪽은 학술에세이, 아르앤이 관련 정보를 다른 일반고에도 공유하는 중이다.

인천 만수고 학생들이 유타대학교, 뉴욕주립대학교 등 인천 지역에 있는 대학과 함께 진로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인천 만수고는 숭덕여고와 국제 학술대회에 함께 참여하는 이웃학교다. 이제 개교 7년차이지만 지역에서 인기 있는 남학교로 성장하고 있다.

학교에는 다른 일반고에선 찾기 어려운 ‘융합동아리’가 있다. 학생들은 학년 구분 없이 약 55개의 교내 동아리들 중 하나에 가입해 활동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융합동아리를 꾸려 공동연구를 한다. 하나의 공통 주제를 정해 동아리별로 그 주제와 관련된 연구활동을 한 다음 학술대회를 연다.

융합동아리 연구활동과 관련해 교사들은 각기 다른 교과목들을 융합한 교과 협력수업을 설계한다. 시행 첫해인 재작년 연구 주제는 ‘소래포구’였다. 과학 동아리는 포구 생태 환경 조사를, 언어 동아리는 포구 관련 도서를 읽고 활성화 방안 탐색을 했다. 3학년 김승민군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동아리가 모이기 때문에 주제를 굉장히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1학년 이민수씨는 만수고 재학 시절 수질탐사동아리 활동을 하며 진로를 탐색할 수 있었다. 이씨는 “융합동아리를 하면서 점심시간마다 수질탐사 등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일반고에서 동아리는 이름만 있는 경우가 많은데 모교의 융합동아리 활동은 연구 성과까지 내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박종학 진로진학부장은 교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학업, 진로인식, 창의성, 리더십, 경험·문화, 인성 등 여섯 개 역량으로 구조화해 ‘만수무강 헥사곤 시스템(HEXAGON SYSTEM)’이라고 이름 붙였다.

박 부장은 “학생들이 교내에서 쌓은 역량을 입시 때 더욱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뜻에서 지금 시대 인재에게 필요한 역량들을 구조화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체육계열반이 있는 서울 누원고.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컵에 그림을 그리는 등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
특화 교육과정 운영 서울 누원고, 대구 청구고

서울 누원고 3학년 이영진군은 초등학교 때 무릎 부상으로 운동선수 꿈을 접었다. 한데 일반계고인 지금 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꿈을 다시 펼치고 있다. 이군은 방과후수업료 수준의 돈만 내고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실기고사를 준비한다.

이군이 인문계고로 진학하면서도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학교에 예술체육계열반이 개설돼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인근 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위원의 의견 등을 참고해 2011년 예술체육계열반을 만들었다.

2012년부터 본격 운영을 시작해 올해 2월 예술체육계열반 첫 졸업생이 나왔다. 편무섭 교감은 “첫해 26명의 예술체육계열반 학생 가운데 92%가 전공 분야에 맞춰 진로를 결정하고 이를 유지했다”며 “유명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로에 맞춘 진학설계를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체육계열반에 들어가려면 희망조사, 서류평가, 실기평가, 면접평가, 예비과정 등 5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3학년 때는 문·이과반, 예술체육계열반 더해 직업반도 추가된다.

예술고 진학에 실패해 누원고에 온 2학년 이현군(미술 전공)은 “지금 와서 보면 그 학교에 안 가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예술고에 진학한 친구들 얘길 들어보면 입시형 미술만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과 공부와 미술 실기 등을 지도해줄 뿐 아니라 미술과 관련된 각종 봉사활동, 체험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수시전형으로 진학할 예정인데 이런 활동 내용들이 입시는 물론이고 훗날 사회에 진출했을 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 누원고 예술체육계열반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발표회를 열어 연주·노래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과에서 드럼을 치는 2학년 이연수군은 “음악 전공 희망자들을 위한 개인 연습 공간 등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며 “정기적으로 기량을 뽐내는 ‘향상음악회’도 열린다”고 했다.

다른 학교에는 없는 예술체육계열반이 있어 문·이과반이 다소 축소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문·이과반에도 다양한 학습동아리,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김전웅 교장은 “꿈과 재능은 학생마다 다를 수 있다. 공부가 잘 맞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다른 분야가 잘 맞는 학생도 있다. 학생에게 맞춤한 ‘균형 잡힌 진로탐색’을 돕겠다”고 했다. 학교는 최근 교육부가 선정한 ‘2014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우수학교’(이하 우수학교) 사례 가운데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일반고의 전범이 될 만한 학교들은 학생의 ‘진로’에 집중한다. 우수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대구 청구고는 ‘3개년 진로집중형 선택교육과정’을 운영한다. 1학년 때는 중학교에서 받은 진로교육을 바탕으로 인문사회·자연과학·공통과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탐색과정을 운영한다. 2학년 때는 진로진학 계획 정도에 따라 반을 각각 인문사회 집중반, 자연과학 집중반 A, B로 나눈다. 3학년 때는 인문대, 사회과학대, 경상대, 자연과학대 등 대학 단과대별 공부 내용과 연관지어 짜둔 총 여덟 개 교육과정 속에서 진로를 구체화한다. 이동우 교사는 “수능 정시 배치표 중심의 진학지도가 아니라 학생들이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앞당겨서 적성·진로에 맞는 진로 진학지도를 해보려고 교육과정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입시가 창의·인성·비교과 등을 평가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지만 옛날 수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들도 있다. 학교의 프로그램, 교육과정 다양화 노력도 필요하고, 대입 전형들도 고교 교육과정과 더 밀접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사진 각 학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