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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영재 6명 중 1명 학습장애 … 산만함, 혁신 자질로 변할 수 있다

영재 6명 중 1명 학습장애 … 산만함, 혁신 자질로 변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토드 로즈는 산만하고 학업 능력이 떨어졌다. 사진 속 키 크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가 로즈. 그는 아이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EBS는 2015년 신년 대기획 다큐프라임(5부작) 3부에서 로즈의 스토리를 심도 있게 다룬다. [사진 EBS 다큐 제작진]

토드 로즈 하버드대 교육신경학 교수
“변형 가능성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과거엔 나쁘다고만 여겨졌던 ‘산만함’도 최근엔 다양한 가능성으로 해석되고 있다. 산만하다는 건 지루함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는 혁신의 자질을 타고났음을 의미한다. ‘우리 아이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부모의 믿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 믿음의 결과물이 바로 나, 토드 로즈다. 영재 6명 중 1명은 어린 시절 학습장애를 앓는다. 이런 사실이 일러주는 진실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토드 로즈(38·교육신경학) 교수는 13세 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학습장애 진단을 받았다. 18세에 고교에서 퇴학당한 후 시간당 4달러25센트짜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19세엔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스스로를 망치려고 작정한 아이’였고 감옥이 어울리는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날아오르듯, 그는 완벽하게 변신했다.

 사고뭉치 아들을 끝까지 믿어준 엄마, 아들과 시간을 나누려고 노력한 아빠, 학생의 가치를 지지해준 교수,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 자신(로즈)이 있었다. 긍정적 피드백이 긍정적 행동을 낳고 그 행동은 다시 좋은 피드백을 불러오는 ‘긍정의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가 순환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그의 산만함은 혁신의 자질로 변형됐다. 그는 로컬 칼리지를 거쳐 하버드를 나와 교육사상과 교육신경학의 권위자가 됐다. 지난해 북미에서 출간한 『Square Peg(학교라는 둥근 구멍에 맞지 않는 네모난 못)』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를 스타덤에 올려놨다. 이 책은 국내에서 『나는 사고뭉치였습니다』(문학동네)로 출간됐다. 지난 8월 그로부터 “한국의 교육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이후 두 차례 e메일 인터뷰가 진행됐다.

 - ADHD 아이를 둔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는.

 “최근 뇌과학은 ADHD가 질병이 아닌 인간의 여러 특성 중 하나라고 본다. 평균적인 뇌는 없다. 그건 하나의 신화일 뿐이다(그의 대표 이론인 The Myth of Average). 먼저 아이의 다양한 면을 파악해야 한다.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ADHD라는 단어 하나로 아이를 규정해버리면, 이는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 당신은 원래 똑똑한 사람으로 보인다. 모든 아이가 당신처럼 ADHD를 극복할 순 없을 텐데.

 “타고난 재능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개발되는 능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런 믿음 없이 ‘평균 이하 지능의 아이’에 대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건 불가능하다. ADHD 아이가 하버드 교수로 성장한 건 그저 변화의 한 모델일 뿐이다. 세상은 다양한 재능을 필요로 하기에 성공에 이르는 길도 다양하다.”

 - 한국에선 엄마의 열정과 아빠의 무관심이 종종 대비된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 엄마의 열정을 사랑한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한국 엄마의 믿음을 존경한다. 다만 그 열정이 ‘자녀에 대한 불신’으로 변질되지는 않는지, 때론 맹목적이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내 어머니는 아들이 사고뭉치였음에도 ‘이 녀석은 정말 구제불능이야’라고 단 한 번도(그저 푸념이라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고, 나는 이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모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믿음을 언젠가는 알아챈다. 그게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한국 아빠는 바쁘다. 하지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절대량은 중요하지 않다. 내 아버지는 낮엔 일하고 밤엔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난 어린 시절을 기억할 때마다 매일 밤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내가 그런 것처럼 당신의 아이도 그렇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 최신 뇌과학은 아빠와 돈독한 아이가 문제해결 능력과 충동조절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정이 지능보다 중요할 수 있다.”

 - 새벽까지 공부시키는 한국의 학원은 어떤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의 교육열을 전 세계가 부러워한다. 다만 그 방법은 좀 더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 암기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교육의 시대는 갔다. 방법을 찾는 공부, 시스템 전체를 볼 줄 아는 훈련이 각광받는 세상이 왔다. 부모와 교사는(그리고 정부는) 아이의 밤샘 노력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 또래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중요하지만, ‘또래 멘토링’같이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주는 방식은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은 학업 성취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부모들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아이가 학업에 재능이 없다면 방과 후 활동에서 ‘능력의 섬’을 찾도록 하자. 어떤 분야에서든 아이가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면 자연스레 매력적인 친구가 생길 것이다. 둘째, ‘부모가 집에 있을 때’ 아이가 편하게 집에 데려올 수 있는 친구를 만들도록 도와주자. 이 과정을 통해 (부모와 아이) 서로가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능력의 섬: 아이가 자존감의 닻을 내릴 수 있는 작은 거점. 농구나 기타 연주 어떤 분야든 상관없다.)

 - 부모들의 두려움을 겨냥한 ADHD 고가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는데.

 “ADHD는 가족력일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아이를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고 약을 먼저 처방하는 의사를 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약을 치료방법에서 제외시키는 전문가도 피해야 한다. 나는 ADHD를 극복했지만, 여전히 리탈린(신경정신약)을 복용하고 있다.”

 -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을 압도한다. 남자애들은 뭐가 문제인가.

 “성별에 따른 학업능력 차이, 특히 여학생의 우위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엔 남녀 간 차이는 진학을 준비하는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다. 여자애들은 쓰기·계산 등 기본적인 단계에서부터 남자애들보다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태도의 차이’가 학업성적 격차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산만한’ ‘중학생 남자아이’를 둔 부모는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상황에 처한 타자와 같다고 로즈는 말한다. 이때 부모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부모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아이를 위해 노력하되 자신을 위한 ‘원기를 회복하는 틈새’를 꼭 찾아야 한다. 숨 쉴 공간을 찾아야 스퀘어펙 아이와 씨름할 힘도 생긴다.”

 그는 교사의 역할을 수차례 강조하며 자신의 학창시절을 예로 들었다. 첫 사례는 초등학교 시절 교사다. 교사가 시(詩) 쓰기 숙제를 내주자 글쓰기를 좋아한 로즈는 밤새 시를 썼다. 하지만 교사는 “네가 쓴 게 아니야”라며 로즈에게 F를 줬다. 그때부터 로즈는 무기력을 학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정적 피드백이 그를 악화시키고, 악화된 그에겐 더 가혹한 혹평이 돌아왔다. 부정의 악순환이 로즈의 ADHD를 악화시키고 학습능력을 손상시켰다.

 두 번째 교사는 로컬 칼리지 시절 아버클 교수다. 그는 로즈를 신뢰했으며 타인에게도 늘 로즈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다. 학업에 문제가 생기면 “토드, 이건 너답지 않아”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게 있어 ‘나다운 것’이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정의되는 순간이었다. 가족 외식으로 수업에 빠진 적이 있는데 교수는 “토드가 빠질 리 없는데 걱정”이라며 휴강을 결정했다. 로즈는 그런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그런 피드백의 선순환이 로즈를 하버드로 이끌었다.


[S BOX]미국 최하위 2% 수준 기억력 극복해준 ‘실수 노트’

로즈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은 미국 최하위 2% 수준이다. 작업기억은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로즈는 어린 시절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15X6을 계산한다고 하면, 5X6=30이고(이를 기억해 두고) 십의 자리는 1X6=6(60)이니까 (앞에 것과 합해) 답은 90. 이때 활용되는 기억력이 작업기억이다. 이는 대화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데도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때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로즈는 “작업기억과 지능은 무관하다”고 말한다. 작업기억을 보조할 방법을 찾으면 극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 등 언제 어디서든 적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함과 동시에 장기적 계획을 세웠다. D’oh Book(실수노트)이 바로 그것. D’oh는 ‘심슨네 가족’의 유행어로, 실수를 저지르거나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 터뜨리는 감탄사다.

 인터뷰에서 그는 D’oh 원칙을 밝혔다. ▶무엇이든 아주 자세히, 기억나는 걸 모두 적는다 ▶내용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평정심을 되찾은 후 판단한다. ▶내가 적어 놓은 일들에는 내 행동의 패턴이 담겨 있으며 이는 나에게 어떤 해법이 필요한지 알려 주는 열쇠가 된다.

 그는 “실수노트가 중요하고 아이에게도 권할 만하지만 절대 아이의 글을 읽으려 하면 안 된다”고 권했다. “내 실수는 나조차도 읽기 꺼려진다. 그건 아픈 일이다.” 그가 제시한 마지막 팁. ▶모든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했을 때 D’oh book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는다. 어느 순간 내 행동의 패턴이 드러나고 어떤 통찰을 얻게 된다.

강인식 기자 kang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