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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는?

'고루유족'을 아십니까'

'고루유족'을 아십니까'

- 넥타이 풀고 시골서 미래 찾는 2030
- 고루유(Go Rural In Youth)족
- 귀농·귀촌 청년가구 3년새 8배 늘어
- "불황에 부모들도 지원…농사로 자아찾기도"

 

그래픽=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형해운회사에 다녔던 권태종(31) 씨는 20대에 귀농했다. 2012년 6월에 퇴직한 권씨는 아내, 딸과 함께 경남 거창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 낫도 안 잡아보고 촌으로 향한 권씨는 “내 롤 모델이 될 사람이 결국 부장인데 비전이 안 보이더라”며 “대기업이 좋긴 한데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없어 이른 나이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20·30대가 시골로 향하고 있다.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에서만 도시를 떠난 게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일터로 시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농사를 직업으로 택하고 있는 것이다. 60대 이상이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농과는 다른 모습이다.

수치상으로도 부쩍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761가구에 그쳤던 20·30세대 귀농·귀촌인구는 2013년 5060가구로 약 8배 많아졌다. 증가율만 보면 60대 이상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시골에 예술 등 문화를 심는 귀촌도 많아졌다. 도시에서 시골로 사회적 이민을 떠난 20·30대. ‘고루유’(Go Rural in Youth)족의 등장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등 대중문화에서도 이를 다룬 방송이 화제다.

전문가들은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귀농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권영미 한국벤처농업대 교수는 “예전에는 농사하면 벌이가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성실하기만 하면 결과물이 나오고 아이디어를 펼쳐 부가가치도 얻을 수 있다는 쪽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며 “농사지어 서울로 자식들을 보냈던 부모들도 경제가 어렵다 보니 직장생활보다 되레 농사에 전망이 있다고 보고 지원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대학 교학처에서 근무하던 친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와 함께 경남 합천으로 올해 귀농한 권준혁(27) 씨는 “쌈배추와 콜라비 등을 키우고 전통 음료의 캡슐화 등 아이디어 창업을 준비하는 데 재미있다”며 “도시에서 남을 위해 일하느니 시골에서 나를 위해 일하자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뭉쳤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새로운 노동계층으로 주목받고 있는 ‘브라운칼라’의 등장과 흐름을 같이 한다. 브라운칼라는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스스로 ‘블루칼라’ 직종에 뛰어든 현상을 일컫는 말. 육체노동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이윤을 내는 방식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를 ‘몸으로 자아찾기’라고 봤다. 김 교수는 “기계·정보화 사회 속에 일이 정신노동화되면서 사람들은 육체적 무력감을 느끼고 직장인들은 분업화된 작업과정에 일의 일부가 돼 일에서 온전히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며 “몸을 통해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것”이란 의견을 냈다.

▲고루유족=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20·30대. 폼 나는 남의 일보다 궂어도 내 일을 원하고 정신과 육체 노동의 조화를 추구한다.

양승준 (kranky@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