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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있는 수업

스펙보다 중요한 소통능력

스펙보다 중요한 소통능력
마크 저커버그가 졸업한 필립스 액시터 아카데미는 모든 수업이 토론식이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입하 듯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크니스라 불리는 원탁에 둘러앉아 스스로 공부해온 지식을 남들과 공유하며 지혜를 키워나가는 방식이다. 저커버그는 이 학교 출석부의 애칭(facebook)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의 회사 이름을 지었다. [중앙포토]

마크 저커버그
2004년 2학기 미국 하버드대의 로마예술사 중간고사 기간. 금발머리의 삐쩍 마른 한 남학생이 사진과 글을 올릴 수 있는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어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자료를 나눴다. 예술작품과 그에 대한 해석을 게시판에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댓글로 달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뤄졌다. 다른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있을 때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거친 논쟁을 벌였다. 성적이 통지되던 날 수십 권의 책을 읽었던 학생보다 웹사이트에서 토론을 벌였던 학생들이 더욱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남학생은 이 웹사이트를 발전시킨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놨는데 그것이 바로 ‘페이스북’이었다.

 직원들과 격의 없는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공부에 대한 개념이 남다르다. 공부는 남에게 뭔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함께 나누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가 나온 고등학교인 필립스 액시터 아카데미의 교훈(校訓)이기도 하다. ‘고교 하버드’로 불리는 액시터는 졸업생의 30%가 아이비리그(Ivy League·미국 동부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미국 최고 명문학교다.

 이 학교엔 교실마다 ‘하크니스’라 불리는 원형 테이블이 있는데 여기서 교사 1명과 학생 12명이 둘러앉아 수업한다. 학생들은 일방적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팀별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학습한다. 교사가 전날 공부할 주제를 미리 정해주면 학생들은 스스로 관련 자료를 조사해 토론거리를 찾아 발제한다. 논제에 대해 학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한다. 이 학교 입학사정관을 지낸 최유진 노스파크대 교수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협력하며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말했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남들과 토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학입시에서 수능 중심인 정시모집 비중이 줄거나 교과성적을 보지 않는 학생부종합전형(수시)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채용시험도 단순한 필기성적이나 스펙보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 능력을 보는 면접을 중시하고 있다. 강태완 경희대 언론대학원장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어느 한 분야의 전문지식보다는 학문 간의 협업과 시너지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스피치와 토론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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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인 A교수가 1년 전 자녀 교육법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자녀가 다니는 수학 학원과 영어 과외를 그만두게 하고 독서토론 지도사를 구해 매주 두 권씩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도록 했다. 수학도 단순히 문제지에 정답을 써내도록 하지 않고 말로 풀이과정을 설명 시켰다. 이론과 공식도 외우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증명하고 그 과정을 발표하게 했다. “입학 지원자들 면접을 보면 수능점수는 좋은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많이 떨어져요. 주어진 답은 잘 구해도 스스로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남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A교수는 “대학생도 마찬가지”라며 “열심히 필기하고 시험성적은 잘 나오는데 진짜로 알고 그러는 건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토론식 학습은 학생들의 지적 발달에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부산 장림초는 2011년부터 토론을 학교교육에 접목시켰다. 고학년 국어시간엔 홍길동이 처벌을 받아야 할지 말지 스스로 보고서를 써오도록 한 뒤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게 했다. 저학년은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칭찬릴레이를 하며 발표력을 키웠다. 그 결과 이 학교 학생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수업에 대한 흥미도(4점 척도에서 ‘그렇다’ 이상 답변한 비율)가 40.5%에서 68.2%로 늘었다. 근거를 들어서 말하는 능력(31.4%→70.1%), 질문하기(31.3%→57.9%) 등도 모두 높아졌다. 학업성취도평가에선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국어(76.1%→85.4%), 수학(74.9%→84.8%), 영어(85.9%→89.2%) 모두 높아졌다. 하숙주 교장은 “정답 찾기 교육으론 창의성을 기를 수 없다”며 “사고를 넓히기 위해선 토론교육이 필수”라고 말했다.

 토론은 가정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박인기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일상의 모든 대화가 토론”이라며 “주장과 논거, 설득 등을 단계적으로 나눠 말하는 훈련을 하면 토론 능력도 향상된다”고 말했다.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경우 “짜장면 사먹을까”하고 단답형 질문을 하기보다는 “무엇을 먹고 싶니” “왜 먹고 싶니” “어디서 먹을까” 등으로 개방형 질문을 하고 연쇄적으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말할 때는 주장과 근거를 구분해 차분히 설명하게 한다. 함께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거나 집안에 토론 게시판(또는 가족 SNS) 등을 만들어 언제든지 토론 주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임스 머피 미국 캘리포니아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케네디와 클린턴, 오바마 등은 대학시절부터 활발한 토론활동을 하며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훈련을 해왔다”며 “대학 입학이나 사회생활에서 토론능력은 인생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디베이트 가이드』).

윤석만 기자

◆국회의장배 청소년 스피치·토론대회

10월 19일부터 11월 23일까지 매주 일요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본선대회가 열린다. ‘인성(人性)’을 주제로 한 감동적인 스피치와 ‘인성교육진흥법’을 논제로 한 열띤 토론이 펼쳐진다. 신청 없이 누구나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결선은 12월 1일 국회 대강당.

윤석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