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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모닝요가·조기탁구 … 9시 등교 신풍속도

모닝요가·조기탁구 … 9시 등교 신풍속도

경기도가 9시 등교를 실시한 뒤 학생들이 아침 활동을 하는 학교가 생겼다. 분당고는 탁구(왼쪽), 과천여고는 요가(오른쪽 위), 서현고는 토론을 한다. [사진 분당고·과천여고·서현고]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달러를 엄청 찍어낸 게 결국 다 정부 빚이 됐잖아.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업도 부진한데 미국이 계속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긴 어려울 것 같아.”

 지난 7일 오전 8시20분 경기도 성남시 서현고의 한 교실. 2학년 남녀 학생 네 명이 미국 재정난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모임의 이름은 ‘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 대학 교재인 경제학 원론과 신문 경제기사를 참고 삼아 오전 8시부터 40여분간 매주 두 차례 진행하는 학생 자율 동아리다.

 같은 시각 성남시 분당고 체육관. “탁, 탁, 찌익~.” 탁구공이 라켓에 부딪히는 소리와 운동화가 마루바닥에 미끄러지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한 켠에선 학생 20여 명이 배드민턴과 농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2학년 김명준군은 “등교 시간이 오전 9시로 바뀐 뒤 시간 날 때마다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며 “다른 요일도 일찍 나와 책을 읽거나 수업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 고등학교의 아침 풍경이 달라졌다. 지난달 1일 도교육청 권고에 따라 ‘오전 9시 등교’가 시행되면서다. 애초 9시 등교는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잠도 더 자고 등교할 수 있는 여유를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오히려 학생들 리듬이 망가지는 등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에 논란이 컸다.

 시행 한 달이 넘은 14일, 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2250개 초·중·고교 중 2028곳(90.1%)이 오전 9시 등교를 시행 중이다. 10곳 중 9곳 이상이다. 예상치 못한 변화도 생겼다. 무엇보다 능동적인 ‘얼리 버드(early bird)’ 학생들의 자율적인 시간 활용이 늘었다. 이들은 오전 8시부터 1시간 남짓한 ‘알짜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스스로 계획표를 짰다. 방과 후 자율 동아리 모임과 체육 활동도 아침으로 옮겼다. ‘쇼 미 더 머니’ 팀장 이경훈군은 “예전엔 교실에서 자습하던 시간을 자기계발의 시간으로 쓸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의정부 효자고, 안성 죽산고, 과천여고, 고양 저현고, 파주 봉일천고, 부천 범박고 등도 9시 등교에 적극 대처하고 나섰다. 효자고에서는 지난달 5개에 불과하던 아침 학생 자율동아리가 이달 들어 10개로 늘었다. 주제도 만화·요리와 힐링 심리아카데미 등 다양하다.

 교사들의 재능기부도 잇따르고 있다. 죽산고는 “책 읽고 운동하는 것 말고 다른 것도 하고 싶다”는 학생들 요청에 음악 선생님이 나서 ‘아침 브라스 밴드’를 구성했다. 과천여고는 “살 빼고 싶다”는 수요가 많자 무용 선생님이 ‘사제 동행 힐링 요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저현고는 관내 대학생들을 초청해 진로·진학 상담 코너를 마련했다. 권천숙(55) 저현고 교감은 “방과 후 상담은 학원에 간다며 빠지는 학생이 많아 지지부진했는데 이번엔 호응도가 높다”며 “학교와 도교육청 홈페이지에 공고문을 내고 더 많은 대학생들을 초청해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자율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학교가 아직은 전체의 15~2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을 교실이나 도서관에 앉혀 놓고 자율학습을 시킨다. 이에 도교육청은 각급 학교에 ‘아침 프로그램 모범 사례’를 적극 전파하기로 했다. 방용호 장학관은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익진·임명수·윤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