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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

이 가을의 비엔날레 산책

이 가을의 비엔날레 산책


 

ⓒ시사IN 조남진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사진)는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을, 비엔날레의 계절이다. 미디어시티서울(11월23일까지)을 시작으로 광주비엔날레(11월9일까지), 대구사진비엔날레(10월19일까지), 부산비엔날레(11월22일까지), 창원조각비엔날레(11월9일까지) 등 비엔날레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가을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차를 잠시 돌려 한번 들러봄직하다.

모더니즘 미학의 대안으로 시작된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이자, 동시대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예술 뷔페'이기도 하다.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한 우리의 비엔날레 역사도 이제 20년이 되었다. 비엔날레가 이룬 예술적 성과를 확인하고 새로운 예술 에너지의 태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다섯 곳의 비엔날레를 직접 다녀와서 평가하고 소개한다.

미디어시티서울 (9.2~11.23)

광주비엔날레 (9.5~11.9)

부산비엔날레 (9.20~11.22)

대구사진비엔날레 (9.12~10.19)

창원조각비엔날레 (9.25~11.9)

귀신과 간첩을 재해석하다

미디어시티서울 (9.2~11.23)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는 올가을 비엔날레 중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맥락이 확실하고 메시지가 뚜렷해서 관람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평이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처럼 외국인 전시총감독이 주관한 행사가 악평을 받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미디어시티서울의 박찬경 예술감독은 작가 출신 첫 전시총감독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미디어시티서울의 주제는 '귀신ㆍ간첩ㆍ할머니'다. 현대사회에서 '타자화'된 개인들을 의미한다. 예컨대 소통에서 고립되면서 존재감이 사라져 귀신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할머니는 사회적 역할을 상실하고 무시당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모두 현대사회의 한 단면이다. 미디어시티서울은 귀신과 간첩과 할머니를 재해석해 이런 타자화를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귀신은 박찬경 예술감독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다. 최근 김금화 만신의 삶을 조명한 영화 <만신>을 제작하기도 했던 그의 '귀신탐구생활'이 전시에 반영되었다. <만신>에서 그는 합리주의와 기독교에 의해 비합리와 미신으로 전락한 한국 전통신앙의 '공동체 결속 기능'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전통신앙을 미신으로 몰아온 기독교에 도리어 일상화된 주술적 행태들을 고발했다. 전통신앙의 복권 선언인 셈이다. 심지어 박 감독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귀신을 불러내 신명 나는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미디어시티서울이 화두로 던진 간첩은, 저항의 한 형식으로 보인다. 누가 간첩이 되고 누가 간첩을 잡는지 보여줌으로써 간첩몰이가 어떻게 독재에 기여하는지 폭로한다. 일본 적군파 리더 중 한 명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면서 '간첩'이 된 인간의 이면을 짚어주기도 한다. 아프리카에 수출된 북한의 '주체 예술'을 조명한 최원준 작가의 작품, 평양의 목가적 풍경을 그린 최진욱 작가의 '간첩적 작업'도 인상적이다.

할머니는 여성문제 제기의 우회로다. 다른 비엔날레가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것과 달리 미디어시티서울은 성적 매력을 상실하고 출산 능력을 잃은 할머니를 각 사회가 어떻게 취급하는지 들여다본다. 나이토 마사토시는, 늙고 시력까지 잃은 할머니를 '이타코'라는 무당으로 숭배하는 일본 동북 지역의 전통을 기록했다. 민속학자 김인희 교수와 함께 작업했던 고 김수남 사진가의 굿 사진도 사회의 큰 어머니로서 할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미디어시티서울에서 가장 '튀는' 공간은 아무래도 '19금 전시실'일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데 스스로 결정하는지 아니면 남의 눈치를 보는지를 보여준 요안나 롬바르드의 실험 '궤도상의 재연'과 나체 행진으로 '예술 테러리즘'을 일삼았던 일본 전위미술 집단 '제로지겐'은 표현의 수위 때문에 '19금 전시실'에 묶였다.

미디어시티서울에는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이번 전시의 주제와 밀접한 고미술 작품도 전시된다. 동양적 천문도인 '혼천전도', 중국 선계의 계보를 볼 수 있는 '요지연도' 등도 전시된다. 미디어시티서울은 서울영상자료원에서도 진행된다. '귀신ㆍ간첩ㆍ할머니'를 테마로 한 영화를 제작한 감독 35명의 영화가 상영된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