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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업 동영상 보고 등교…학교선 체험·참여 활동

수업 동영상 보고 등교…학교선 체험·참여 활동
한겨레
 

 

‘거꾸로교실’을 고안한 존 버그만이 지난 15일 부산 글로벌빌리지에서 열린 ‘거꾸로교실의 존 버그만과 함께하는 미래교실 디자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에듀니티 제공

[함께하는 교육] ‘주목받는 ‘거꾸로 수업’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 많아져
수업중에 자는 아이 없어지고
학생들 학업성취도 개선 뚜렷
수학 등 원리 이해 과목에 적합
“핵심은 교사가 변화하는 것”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집에선 숙제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공부방식을 거꾸로 뒤집은 ‘거꾸로수업’이 요즘 교육 현장에서 화제다. 집에서 수업을 하고 학교에선 다함께 문제를 푸는 것.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5일 오후 4시30분. 부산의 글로벌 빌리지 3층. 350명의 교사들이 한 미국인 남성의 강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남성은 화면에 흑백사진 한 장을 띄웠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교사를 바라보며 강의를 듣고 있는 수업장면이었다. “1950년, 미국 학교의 교실수업입니다. 현재 한국이나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많은 수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원연수·교육출판 전문기업 에듀니티 행복한연수원과 거꾸로교실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사모임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주최한 ‘거꾸로교실의 존 버그만과 함께하는 미래교실 디자인’ 강연 현장이다. 교사들 앞에 나선 남성은 존 버그만(Jon Bergmann). 거꾸로교실을 고안한 미국의 교사이자 거꾸로교실 보급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단체 ‘거꾸로교실 네트워크’(Flipped learning Network)의 공동설립자다.

교직생활 24년. 미국 콜로라도 우드랜드파크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버그만의 수업 모습도 처음 19년 동안은 흑백사진 속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 각자의 수준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다 보니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교사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던 학생들은 수업을 쉽게 지루해했다. 파워포인트(PPT)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해봤지만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버그만과 동료교사 에런 샘스는 평소 수업에 자주 참여하지 못하는 운동부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둔 강의 동영상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활용해보기로 했다. 두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 동영상을 집에서 먼저 보고 오게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이 집에서 본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해가 어려운 내용을 교사에게 질문하고, 다른 친구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게 ‘활동 중심 수업’을 설계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집에서 숙제를 하던 학생들은 집에서 강의를 듣고, 학교에서 관련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기존 패러다임을 뒤집은 이런 수업 방식에는 ‘거꾸로수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꾸로수업 덕에 학생들의 수업 참여율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활동 중심의 수업이 가능해지면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이 사라졌다. 초기에는 영상을 안 보고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수업 참여가 어렵다는 걸 알고,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영상을 보고 수업에 참여했다. 학업성취도도 높아졌다.

올해 초 방영된 ‘KBS 파노라마 21세기 교육혁명’은 거꾸로수업을 한국 교실에 적용하는 실험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실험에 참여한 부산 동평중의 한 교실에서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가 한 명도 없는 수업,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수업, 69점을 받던 학생이 100점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을 구현해 주목을 받았다.

거꾸로수업의 수업 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스마트폰, 태블릿피시 등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스마트교육’과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버그만이 처음 동영상수업을 시도했던 2007년에는 현재와 같은 스마트기기가 없었다. 버그만이 있던 학교의 학급에는 약 25%의 학생들이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버그만은 “컴퓨터, 텔레비전 등만 있다면 수업 자료를 볼 수 있게 디브이디(DVD) 등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거꾸로수업에서 이런 기기들은 하나의 도구일 뿐 핵심은 수업 운영에 대한 교사의 철학이다.

버그만은 “‘교육은 곧 관계’라며 ‘교실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 거꾸로수업의 철학”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동영상을 제작하는 이유는 요즘 학생들이 디지털 문화에 친숙하다는 점 때문이다. 중요한 건 교사와 학생 사이 소통 시간을 확보하고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창의력·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어’나 ‘역사’ 과목처럼 텍스트를 읽고 기본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과목은 거꾸로수업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오해도 있다. 하지만 버그만은 “강의의 특성에 따라 활동수업과 강의식 수업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핵심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효율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도록 교사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꾸로수업에 적합한 과목들도 있다. ‘수학’, ‘과학’ 등 원리 이해가 필요한 과목들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수학·과학을 공부할 때 학교에서 원리를 배우고, 집에 가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거꾸로수업에서는 집에서 원리를 배우고, 학교에 와서 교사, 친구들과 함께 좀 더 난이도 있는 문제해결학습을 할 수 있다.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

교육 현장에서 거꾸로수업이 주목을 받자 교사들은 이런 수업을 시도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지난 13~14일 경주 케이호텔에서 열린 ‘미찾샘’(미래교실을 찾는 샘) 캠프(대구광역시교육청과 에듀니티 행복한연수원,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주최)가 그 현장이다. 지난 14일 오전 버그만의 특강을 들은 대구광역시교육청 소속 100명의 교사들은 과목별로 모여 앉아 어떤 수업을 만들 수 있을지 의견을 교환했다.

미래교실네트워크 소속 강명희 교사(전북 남원 하늘중·사회/역사)는 스스로를 ‘표류하는 거꾸로호의 선장’이라고 말했다. 강 교사가 거꾸로수업을 시작한 건 3개월 전. 처음에는 모든 수업에서 거꾸로수업법을 사용했다. 학생들은 강 교사가 준비한 동영상을 미리 본 다음 조별로 주어진 문제를 함께 풀고 강 교사가 설계한 수준별 퀴즈게임인 ‘능력자게임’에 참여했다.

아이들의 수업 참여율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강 교사는 교실에서 강의하는 시간을 모두 빼면 아이들이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는 법을 배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은 ‘게임수업이 재미있어요’라고 말할 뿐 ‘역사가 재미있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강 교사는 기존 일방향 수업 방식에 거꾸로수업을 일부 도입해 수업을 하고 있다. 특히 역사 연표를 통해 맥락을 짚어주는 강의는 반드시 한다. 강 교사는 “버그만이 시도한 거꾸로수업을 모든 교실에서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교사가 시행착오를 거쳐 각 과목의 특성, 학생들의 상황 등을 고려해 ‘학생들에게 교실을 돌려주는 수업방안’을 고민하는 게 거꾸로수업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공개그룹 ‘거꾸로교실의 마법’ 페이지에 가면 거꾸로수업을 학교 현장에서 구현하는 여러 교사들의 수업기록이 올라와 있다. 미래교실네트워크는 거꾸로수업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누리집을 구축하는 중이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