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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우리 선생님은 ‘수학 디자이너’ 유형별로 한눈에 다 보여줘요

우리 선생님은 ‘수학 디자이너’ 유형별로 한눈에 다 보여줘요

‘우리 학교 수업의 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창의적인 교수법을 개발해 학생들이 재미와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도록 도와주는 일반 중·고 선생님을 다룹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생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를 응원하고, 그들의 열정과 노하우를 다 같이 공유하자는 취지입니다. 1회는 서울고 유정석 수학교사입니다. 

유정석 교사가 분수부등식 중 ‘항상 0 이상인 항을 분자가 포함하는 경우’의 문제 풀이 방법에 대해 수업하고 있다.

“특별한 건 없는데요.” 학교 측은 물론 학부모들이 잘 가르치는 교사라고 추천한 유정석 서울고 수학교사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과연 그럴까. 유 교사 수업을 포함해 몇몇 수업을 직접 들어 봤다. 지난달 27일 오전 8시 10분 서울고 2학년 8반 교실에선 유 교사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일반고에서는 수학 시간이면 아예 엎드려 자는 학생이 3분의 1이 넘는다는데 이 반은 달랐다. 물론 조는 학생도 있었지만 전체 36명 중 2~3명에 불과했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유 교사는 한성과고와 세종과고 등 과학고에서 13년 근무한 상위권 전문 수학교사다. 실력 쟁쟁한 교사가 많은 과고에서부터 잘 가르치기로 유명했다.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대비용 방과후 수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게 입소문이 나 2000년대 중반엔 대형 사교육 업체에서 여러 차례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학교에 남았다.

유 교사가 평소 수업준비를 하며 따로 만드는 유인물.
그의 수업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직접 참관해보니 교실 세 벽면을 모두 칠판으로 활용한다거나 비디오를 보여주는 식의 화려함은 없었다. 겉보기엔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특별한 교수법이 드러난다. 핵심은 유형 분석이다. 그는 모든 교과서 단원의 주제에 따라 문제를 유형별로 재분류한 후 가르친다. 예컨대 분수방정식에 대해 강의할 때는 치환해 해결하는 문제, 이항해서 차수를 줄여 푸는 문제, 부분분수로 분해한 후 2차방정식을 이용해 정답을 찾는 문제 식으로 3가지 유형의 풀이 방법을 차례로 설명한다. 유형을 알면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유형을 파악해 5분 만에 끝낼 수 있는 문제도 유형을 모르면 30분 넘게 끙끙거리며 풀어야 한다.

유형 파악 훈련을 하면 직관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처음 보는 문제를 맞닥뜨려도 어떻게 풀지 감(感)이 온다는 얘기다. 그는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되는 순간이 처음 본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라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도전도 안 해보고 포기하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형 익히는 훈련을 하면 출제자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 응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유형 파악은 단순히 시험성적만 높여주는 게 아니라 수학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컨대 A문제를 보고 ‘근의 공식을 써볼까’라고 생각한 후 실제로 문제가 생각대로 풀리면 성취감 때문에 수학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수학은 다른 과목보다도 훨씬 더 교사 역량에 따라 수업 질(質) 차이가 크다. 학생들에게 뭔가를 알려주겠다고 마음 먹으면 한없이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쉽게 하려면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학생을 호명해 순서대로 문제를 풀게 한 후 자습서 보고 풀이과정 확인하라고 해도 50분을 충분히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편하겠지만, 학생들 머릿속에 새로 남는 건 있을 리 없다.

유 교사는 다르다. 매 수업마다 1~2시간 준비는 기본이다. 과고에 들어온 최상위권 학생을 가르치며 축적한 15년 경력도 항상 부족하다고 말한다. 학생 수준에 딱 맞게 맞춤형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떤 수업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매 수업마다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미리 정리한 유인물을 만드는데, 여기엔 핵심 내용, 유형과 문제, 책 쪽수가 적혀 있다. 가르칠 단원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 유형을 파악한 후 교과서와 수학익힘책에서 유형에 맞는 문제를 찾아 따로 분류한 후 문서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업 시간에 사용한 자료를 모아놓은 게 벌써 캐비넷 한 칸을 가득 채운다(사진). 수업 한 시간에 적게는 유인물 한 장의 3분의 1, 많아야 한 장을 조금 넘길 정도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유 교사의 노력은 짧은 시간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가 가르치는 과학중점반(이과 8개반 중 4개반) 학생들 성적이 3개월 만에 눈에 띄게 향상됐다. 심중섭 서울고 교감은 “3월 모의고사에 비해 1등급은 2명, 2등급은 13명이 늘었다”며 “이과 수학은 하위권을 중위권으로 올리는 것보다 상위권을 최상위권으로 올리는 게 더 어려운 일인데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이과반은 유 교사를 비롯해 총 5명의 수학 교사가 있으니, 유 교사 혼자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심 교감은 “방과후 수업은 물론 토요일 수리논술 대비반에 참여하고 싶다는 학생도 늘었다”고 덧붙였다.


 유 교사의 유형 파악 교수법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유 교사가 중·고교를 거쳐 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는 “고교 시절 친구한테 수학 문제를 가르쳐줄 때 유형을 먼저 알려주고 설명하면 훨씬 쉽게 이해를 하더라”고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과고 부임 후엔 최상위권 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 했다. 수준 높은 과고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기출문제와 일본 본고사 기출문제를 구했다. 수업 준비엔 늘 2~3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학생이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는다. 무엇을 물어보든 뭐든 답할 자세가 돼 있어서다. 그는 오히려 돌발질문을 좋아한다. 2학년 9반 이강훈군은 “교과 과정 내 문제는 늘 그 자리에서 답해주신다”고 말했다. 수업에 방해된다고 여길 때만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데려가 알려준다. “내일 알려줄게” “다음에 가져와”라는 말은 절대 안 하는 게 스스로가 세운 원칙이다.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경력을 아는 사람들은 유 교사를 최상위권에게만 적합한 교사로 여긴다. 하지만 그는 “학생 수준에 따라 100% 맞춤형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1등부터 꼴등까지 모든 학생 수준에 맞게 가르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서울고에서 그는 이를 몸소 증명해 보였다.

전민희.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