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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유

문화벨트로 재미를 묶다

문화벨트로 재미를 묶다


 


서울은 문화적 구심력이 강한 도시다. 대부분의 중요한 문화 행사가 서울에서 열린다. 방학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만화영화, 대형 전시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 풍성하다. 그래서 서울시민들은 문화 활동을 위해서 주변 도시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서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적 원심력을 한번 발휘해보자.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은 독자적인 문화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을 컴퍼스의 중심으로 잡고 원을 좀 더 크게 그려보자.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서울의 위성도시는 베드타운에서 문화 거점으로 활발히 진화했다. 부천시는 만화의 도시가 되었고, 고양시는 꽃과 박람회의 도시, 광주ㆍ여주ㆍ이천시는 도자기의 도시, 국립과학관이 있는 과천시는 과학 체험의 도시, 수원화성이 있는 수원시는 전통문화의 도시, 대규모 공연장이 있는 성남시는 공연예술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모은다.

이런 특색 있는 수도권 문화도시를 연결하면 도넛 모양의 문화벨트가 형성된다. 올여름에는 이 문화벨트를 탐방해보는 것이 어떨까?

ⓒ안양문화예술재단 제공 안양에는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전문센터 ‘안양파빌리온’

먼저 만화의 도시 부천이다. 서울시 도봉구와 다툼이 있긴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인 둘리의 주소지가 부천이다. 부천시는 지난 2003년 둘리에게 명예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 둘리가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 연재된 1983년 4월22일을 둘리의 생일로 하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위치한 부천시 원미구 상동을 둘리의 주민등록상 주소로 정했다.

만화의 도시 부천은 여름에 가장 큰 잔치를 벌인다. 올해로 17회째인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주인공이다. 박재동 화백이 운영위원장을 맡은 이 축제의 올해 주제는 '만화, 시대의 울림'이다. 만화 하면 사람들은 오락을 먼저 떠올리는데, 시대의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현실에 참여하는 만화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가볍게 표현한, 그러면서도 깊은 여운이 있는 만화를 만날 수 있다.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올해 공식 트레일러(예고편)에서는 야근을 하는 회사원 주위에 <미생>의 '장그래', <신과 함께>의 '저승차사', <야옹이와 흰둥이>의 '야옹이와 흰둥이', <낢이 사는 이야기>의 '낢'이 놀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만화가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쪽에서는 박시백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왕과 중전이 웹툰을 감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만화의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젊은 작가의 밤'을 비롯해 작가들의 사인회가 많아 만화가들과의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장점이다. '코스프레 라운지' 등 관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그 어느 행사보다도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만화 OST 콘서트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8월13~17일, 한국만화박물관ㆍ영상문화단지ㆍ부천시 일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부천은 여름철 만화 축제로 유명하다. 위는 지난해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 축하 행진 모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는 부천은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영화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해 <또 하나의 약속>의 김태윤 감독을 초청해 특강을 열고 영상 제작기술 단기 강좌도 개최한다(부천영상미디어센터 홈페이지 참조).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는 20대 시인이 쓴 '성장'에 관한 시 8편에 맞춰 신진 미술작가들이 제작한 일러스트와 동영상을 전시하는 <소나기전>도 열린다(8월8일까지).

국내 최대 전시장인 킨텍스가 위치한 고양시는 박람회의 도시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박람회'가 열린다. 어린이 관련 학습지 등 교육 관련 상품, 키즈카페나 테마박물관 등 체험시설, 어린이 스포츠 용품, 어린이 안전 먹을거리, 어린이 패션 용품 등 어린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전시된다(8월7~10일, 킨텍스 전시홀 7A). 킨텍스에서는 '오감 톡톡 자연놀이 체험전'(9월10일까지), '또봇과 쥬쥬와 함께하는 시크릿 어드벤처'(8월24일까지) 같은 체험 행사도 진행 중이다.

성남아트센터와 쌍벽을 이루는 공연시설 '아람누리'가 있는 고양시는 공연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1000석이 넘는 대극장이 세 곳(아람극장, 아름음악당, 어울림극장)이나 있다. 특히 올여름에는 청소년들이 클래식과 만날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한 조윤범의 클래식 첫걸음'(8월7일), '청소년을 위한 팝스 콘서트'(8월9일)가 준비되어 있다(초등학생 이상 입장 가능).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가 낳은 보석 카라카스 어린이 오케스트라와 베를린필하모닉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이 지난해 잘츠부르크 축제 때 했던 말러 연주를 스크린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8월30일).

ⓒ성남시청 제공 성남에서는 <왕자 호동> 등 다양한 발레ㆍ클래식ㆍ미술 행사가 열린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용인에서 열리는 ‘시골 외갓집의 여름’에서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지휘자 장한나'를 만나고 싶으면 성남으로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첼리스트가 아닌 지휘자 장한나를 만날 수 있다. 오는 9월 BBC 프롬스에서 지휘자로 데뷔하는 장한나는 8월2일에는 콘서트홀에서, 9일에는 오페라하우스에서, 16일에는 성남 중앙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앱솔루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다(야외공연장 공연은 무료). 매 공연 전 30분씩 장한나가 직접 설명하는 공연 해설 시간을 갖는다. 장한나가 재해석한 드뷔시와 브람스와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국립발레단이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제작한 대작 발레 <왕자 호동>도 성남아트센터에서 감상할 수 있다. <왕자 호동>은 한국무용계의 권위자 국수호씨가 줄기를 잡고 해외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차진엽씨가 갈래를 쳐, 묵직하면서도 발랄하고 다채롭다는 평이다. 군무가 절도 있고 기품이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강수진 예술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8월29ㆍ30일, 오페라하우스).

올여름 성남아트센터에서 기획한 행사 중에 눈에 띄는 것은 현대미술 전시다. <현대미술 런웨이를 걷다>전은 현대미술에 패션을 접목했다. 미술은 패션의 스타일리시함을 차용하고 패션은 미술의 고고한 주제의식을 받아들였다. 구사마 야요이와 루이비통, 데미안 허스트와 리바이스, 키스 해링과 유니클로가 협업을 했듯이 11명의 현대미술 작가와 7명의 패션 디자이너가 '따로 또 같이' 작품을 제작했다(8월5일~9월28일, 큐브미술관).

ⓒ바람새마을 제공 평택에서 열리는 ‘논풀머드축제’는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국립과천과학관이 있는 과천은 과학적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여름방학 때 꼭 들러야 할 도시다. '원목 카프라 구조물 높이 쌓기 대회' '골판지 만화경 만들기 체험' 그리고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사이언스 캠프' 등이 준비되어 있다. 우주의 신비를 담은 창작 뮤지컬 <춤추는 태양계>도 공연 중이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이런 특별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상설전시가 워낙 규모 있게 진행되고 있어서 방학 때 아이를 꼭 한번 데려가볼 만한 곳이다.

안양은 공공예술의 도시다.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전문센터인 '안양파빌리온'이 최근 오픈했다. 2005년부터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서 선보인 작품 50여 점이 전시 중이다. 이 전시를 보면 공공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고 내일을 가늠할 수 있다. 안양예술공원 일대에 설치된 이 '지붕 없는 미술관'의 작품들을 전문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할 수 있다(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홈페이지 참조).

안양예술공원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옛 유유산업 공장 부지를 재활용해 만든 국내 최초 건축 박물관인 김중업박물관이다. 김중업 선생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꼽힌다. 박물관은 총 6개 건물로 이뤄졌는데 '김중업관'에 그가 생전에 남긴 건축도면과 모형 등 작품 100여 점이 상설전시 중이다. '문화누리관'은 김중업 선생이 직접 설계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편의시설도 잘 갖추었다.

양평군에서는 시원한 물의 축제가 악동들을 기다린다. 겨울 산천어축제나 송어축제처럼 직접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메기수염축제'가 양평군 수미마을에서 열린다. 낚시가 아니라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체험이다. 독살(일명 석방렴)을 활용해 잡을 수도 있다. 잡은 고기는 요리 코너에 가져가면 요리를 해준다. 메기를 못 잡아도 어죽은 얻어먹을 수 있다. 마을 식당에서 끓여주는 메기매운탕을 먹을 수도 있다. 물대포와 물바가지 혹은 물총을 가지고 참가하는 물싸움놀이도 준비되어 있다(8월31일까지, 양평군 수미마을 일원).

ⓒ성남시청 제공 성남에서는 <왕자 호동> 등 다양한 발레·클래식·미술 행사가 열린다.

양평 가기 전 클릭하면 좋은 '양평농촌나드리'

수미마을 외에도 양평군에는 물놀이 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 많다. 양평농촌나드리 홈페이지(www.ypnadri.com)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는데, 감자ㆍ옥수수ㆍ복숭아 등을 직접 수확해볼 수 있는 곳도 많다. 별내마을에서는 당나귀를 타볼 수 있다. 당나귀는 키가 작고 순해서 아이들이 말보다 안전하게 탈 수 있다. 당일 체험 프로그램도 있고 1박2일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데,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된다.

하남시 여름 행사 중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눗방울 체험전>이 관심을 모은다. 어린이들이 '버블랜드'에서 구름빵 만들기, 공으로 비눗방울 맞히기 등 비눗방울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비눗방울은 '자율 안전 확인'을 거친 것으로, SBS <스타킹>에서 비눗방울 묘기를 보여주었던 정일권씨가 전체 체험을 연출했다(8월24일까지, 하남문화예술회관 전시장).

경기도 이천시는 여주시ㆍ광주시와 함께 '도자기의 도시'로 꼽힌다. 격년으로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데 아쉽게도 올해는 행사가 없는 해다. 세 도시 모두 도자기로 알려졌지만 조금 성격이 다르다. 관요의 고장이었던 광주시는 전통 자기가 발달하고 여주시는 스타일 있는 현대자기가 발달한 것에 비해, 이천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자기가 발달했다. 이 이천시에 있는 '세라피아 토락교실'에서 여름방학 때 '빙글빙글 물레체험'이 열린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은 다른 곳에도 많다. 하지만 이곳은 실제 도자 작가들이 일대일로 지도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 50명씩만 체험한다(8월31일까지, 한국도자재단 홈페이지 참조).

한국민속촌이 있는 용인은 전통의 도시다. 여름에 용인에 가면 대부분 캐리비언베이에 가서 물놀이를 하지 민속촌에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민속촌은 다른 곳보다 3℃ 정도 기온이 낮다고 한다. 이 민속촌에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축제가 바로 '시골 외갓집의 여름'이다. 선비들이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풍류를 즐겼던 '탁족'이나 시원한 정자에서 죽부인을 안고 잠을 청하는 경험 등을 할 수 있다. 시원한 등목을 하고 차가운 얼음 평상에 앉아볼 수도 있다(한국민속촌 홈페이지 참조).

여름 축제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건 단연 보령머드축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가기에는 거리가 제법 멀다. 아쉬운 사람들이 주목할 조그만 머드 축제가 있다. 평택시 바람새마을에서 하는 '논풀머드축제'다. 말 그대로 논을 활용한 논풀장에서 실컷 노는 축제다. 피부 미용과 아토피에 좋다는 황토 진흙이 흥건하다. 트랙터 달구지 타기, 논 왕우렁이 잡기 체험, 맨손 물고기 잡기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고, 캠핑도 가능하다(http://www.balamsae.com 참조).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