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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대입 성적, 일반고 때와 비슷”… 입시명문 좇는 ‘귀족학교’로 //서울 자사고 1학년 전학률, 일반고의 3배


]“대입 성적, 일반고 때와 비슷”… 입시명문 좇는 ‘귀족학교’로

ㆍ(상) 내달 재지정 평가 앞둔 자사고에 무슨 일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일제히 수술대에 오른다. 서울에선 9일부터 4개 권역별로 ‘일반고 전성시대 실현을 위한 토론회’가 시작된다. 설립 후 5년 만인 올해 첫 평가가 실시되는 서울지역 자사고(14곳)는 2015학년도 고교 입시요강이 발표되는 다음달 13일까지 재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전국 자사고 49곳 중 25곳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 자사고의 운명과 정책 방향을 가늠할 신호탄이 올라가는 셈이다.

정부도 궤도 수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자사고의 문제는 무엇이고,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경향신문이 7월1~8일 자사고 학부모·학생·교사·입시전문가 등 20여명에게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취지도, 교육 내용도 일반고와 그리 다르지 않은 학교, 그렇지만 특목고 아래의 중·상위권 학생들을 선점해 지역 일반고엔 주름을 지우는 학교가 자사고”라고 말했다.

2012년 10월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 공동 입학설명회가 성균관대에서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후 자사고 입학설명회는 학교별로 이뤄지고 있다. | 연합뉴스


■ 학생수 부족에 재정난… 특성화 교육 없애

4~5년 전 자사고들은 건학이념을 앞세운 그럴듯한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현재의 자사고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비싼 학비로 입시명문을 만들어 보겠다는 ‘귀족학교’로 인식되고 있다.

자사고에선 모든 것이 대입에서의 성공을 위한 전략전술에 맞춰져 있다. 전학 이유마저도 성적이 상당수다. 강북의 자사고 교사 ㄱ씨는 “예전 일반고일 때보다 전학·전입이 훨씬 많다. 학년 초엔 모든 학급의 학생수가 거의 비슷한데 좀 지나고 보면 학급에 따라 10명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며 “일반고에선 전학 이유가 이사나 징계성 강제전학이 많지만 자사고에선 성적이 잘 나오지 않거나 경쟁적인 분위기가 싫어 전학 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지난해 자사고 1학년 통계를 보면 입학생의 8%가 전학해 서울지역 전체 고교 평균치(2.6%)를 3배 이상 웃돌았다. 그중에서도 일반전형 전출생 비율(7.2%)에 비해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 전출생 비율(11.3%)이 월등히 높았다. 자사고 전환을 허가받을 때는 사배자를 내세웠지만 성적 제한 없이 입학하는 이들의 학교 적응에 학교 측의 특별한 ‘배려’는 부족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사고에서 재정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줄이는 부분은 입시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특성화 프로그램들이다. 강북의 한 자사고는 지난해 상반기 교사 전체회의에서 90% 가까운 교사들이 일반고로 전환하자는 의견을 냈다. 학생수 부족으로 3억6000만원의 예산이 펑크나면서 학교운영은 초긴축 상태로 들어갔고 프로그램들을 줄이기 시작했다. 이 학교의 ㄴ교사는 “처음 자사고 전환 때는 과학중점, 논술중심, 국제화 인재반을 내세웠지만 긴축재정에 들어가며 과학실험 보조교사도, 원어민 교사도 다 내보내고 남은 것은 영어와 수학 중심의 프로그램뿐”이라며 “교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고 전했다.

한 자사고는 거듭된 정원 미달로 운영난을 겪다가 일반고 전환을 준비했지만 학부모 총회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고민에 빠진 상태다. 근처 자사고의 ㄷ교사는 “학부모들이 일반고로 전환하면 대입에서 자사고 메리트를 누리지 못하고, 학교 분위기도 일반고처럼 될 것을 우려해 반대한다고 들었다”며 “일반고 전환을 막고 있는 것도 결국 눈앞의 내 아이 입시만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욕망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 학생·학부모 모두 “등록금 3배 효과 의문”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 모두 “자사고 전환 후 특별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대입성적조차 별 차이가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남의 한 일반고 교사 ㄹ씨는 “강남의 여고들은 일반고가 더 입시성적이 낫고, 그 학교들은 자사고처럼 운영되고 있다. 자사고와 일반고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자사고 전환 후 ‘효과’에 불만이 많은 셈이다.

강북의 한 자사고 교사 ㅁ씨도 “자사고 전환 전후 대입성적이 거의 변화가 없다. 최상위권은 외고나 과고로 가고 중상위권 아이들이 들어오는 편이어서 중상위권 대학 합격은 조금 늘었지만 최상위권은 일반고일 때와 비슷하거나 떨어졌다”며 “오히려 성적 면에서 우수한 아이들을 받아 비슷한 성과를 낸 것이니 실패한 것이고, 동문회에서도 자사고 유지에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강남의 자사고 1학년 남학생도 “학교에서 특별히 해주는 건 없는 것 같다. 중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고, 학원만 더 많이 다닌다”고 말했다. 강남 학부모 ㅂ씨도 “학부모들 사이에선 자사고가 아닌 사교육의 힘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얘기”라고 말했다.

강북의 자사고와 같은 재단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ㅅ씨는 “입시 상담을 해보면 학부모들이 이미 자사고와 일반고의 차이가 별로 없고, 입시성적도 썩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학습 분위기 하나 보고 자사고를 택하는 것인데 등록금 3배의 효과가 있는지 점점 회의적이 돼 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사고 학생들은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별 상관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강남의 자사고 2학년 학생 ㅇ군은 “어차피 자사고가 집에서 가장 가까워 갔다. 공부할 애들은 어차피 지정 철회되든 말든 열심히 하니까 별 상관없다”고 했다. 또 다른 자사고 학생 ㅈ군도 “우리 학년이면 모르겠지만 3학년 때 바뀐다면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을 것 같다. 돈 때문에 일반고 가는 친구들이 없어져 그런 점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일반고, 기피학교 전락… 자사고 간 양극화도

자사고가 대거 등장한 이후 근처 일반고들이 황폐화됐다는 점엔 자사고와 일반고 학부모·학생·교사 모두 동의했다. 지난 4월 입시전문업체 진학사가 고교생 77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현재 재학 중인 고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특목고는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인 반면, 자사고는 “면학 분위기가 좋아서”가 가장 많았다.

강남의 한 일반고 교사 ㅊ씨는 “자사고가 생긴 후 몇 년 새 우리 학교가 기피학교가 됐다. 일반고 가면 망한다는 생각이 학부모·학생 사이에도 깔려 있다”고 말했다.

강북의 일반고 교사 ㅋ씨도 “요즘 아이들은 생활지도 문제가 심각하다”며 “자사고 아이들은 그래도 기본적으로 부모의 관리를 받는 애들이라는 생각과 면학분위기 때문에 아들을 자사고에 보냈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큰아이를 자사고에 보낸 ㅌ씨는 중학생인 작은아이는 가능하면 특목고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자사고는 특목고와는 다른 어정쩡한 상태”라며 “자사고는 교육의 질은 그리 높아지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멀쩡한 일반고만 나쁜 학교로 만들어 못 가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재단 고교가 자사고로 바뀐 강북의 사립중 담임 ㅅ씨는 “돈이 없거나 성적이 안되는 아이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더 나쁜 학교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학교가 자사고로 남고, 일반학교로 전환되느냐에 따라 자사고 간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입시전문가는 “어떤 학교를 어떤 기준으로 일반고로 전환시키느냐가 관건일 텐데, 그 결과에 따라 남은 자사고들은 운명이 달라진다”면서 “일부 학교는 경쟁률이 올라가며 더 특권학교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송현숙·이범준·김지원 기자 song@kyunghyang.com>

 

 

 

서울 자사고 1학년 전학률, 일반고의 3배

ㆍ전체 신입생 중 8%가 타학교로… 사회통합전형은 11% 달해

서울지역 자사고 입학생 100명 중 8명이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의 전체 고교 1학년 학생의 전학률(2.6%)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자사고 전학자의 대다수는 일반고 사이 전학과 달리 비싼 학비와 사교육·내신성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진로를 바꾸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서울지역 자사고 25개교에 입학한 8953명 중 1학년을 마치지 않고 전출한 학생은 712명(8%)으로 파악됐다고 8일 밝혔다. 일반전형 입학생 중에는 530명(7.2%)이 전학했고, 차상위계층·다문화가정 학생 등을 위한 사회통합전형(옛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입학생 중 전학생은 182명(11.3%)에 달했다.

미림여고는 일반전형 입학생 22.7%, 사배자 전형은 26%가 1학년 도중 전학했으며, 우신고 1학년 전학생도 일반전형(24.2%), 사배자 전형(24.6%) 모두 높았다. 대체로 사배자 전형 입학생의 전학률이 더 높았으며, 경문고·장훈고는 일반전형 8.2%, 사배자 전형 29%로 그 격차가 컸다. 강남의 세화고도 1학년 때 일반전형 7.4%, 사배자 전형 16.7%의 전학률을 보였다.

입학생이 정원을 못 채우는 미달 학교가 자사고 3곳당 1곳꼴로 속출하는 속에서 학비·내신 부담 등으로 1학년 때 일찌감치 떠나는 학생들로 자사고마다 홍역을 앓고 있다.

ㄱ자사고에 다니는 ㄴ군(18)은 “고1 때 내신이 너무 떨어져서 전학가려고 했는데 담임이 한사코 말려 남게 됐다”고 말했다. ㄷ자사고에 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 3개월 만에 일반고로 옮긴 ㄹ군(17)은 “사교육비 등 교육비가 너무 비싸 부모님이 힘들어하셨다”며 “일반고 등록금의 3배나 되는 수업료를 내고 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괜히 위축되는 기분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