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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도서관 중심 소논문반 운영 //새 입시 스펙 떠오른 ‘논문’…“한 편 지도에 300만원”

학교도서관 중심 소논문반 운영
서울 보성여고의 논문 교육 사례
한겨레

서울 보성여고의 논문 교육 사례

교내 논문 교육은 고사하고 편법 대회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논문 교육을 하려고 노력하는 학교도 있다.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소논문반을 운영하는 서울 보성여고는 그 한 사례다.

이 학교 2학년 정유진양은 지난해 소논문반에서 <학교 홈페이지 활성화를 위한 방안 연구: 보성여고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정양은 “여름방학 내내 논문 마감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교과 공부 외에 이렇게 관심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공부해본 건 처음이라 무척 뿌듯했다”고 밝혔다. 정양이 이렇게 논문 한 편을 스스로 완성할 수 있었던 건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소논문쓰기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매해 한 차례 소논문쓰기 활동에 관심 있는 학생을 선발해 소논문반을 꾸린다.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약 8회차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교육 장소는 학교도서관, 담당 지도교사는 학교도서관에 있는 유은혜 사서교사(<고등학생 소논문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의 공동저자)가 맡는다. 프로그램은 일상에서 논문 주제 잡기, 목차 잡아보기, 참고문헌 등 자료검색, 자료 검토하기, 논증적 글쓰기 해보기 등을 차근차근 해보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유 사서교사는 “논문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것만 생각하는데 학생 수준에서 주제를 잡고, 문헌연구 등 정보 활용을 해보고, 각자 세워둔 가설 등에 맞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쳐보는 게 청소년 대상 논문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통 학생들은 학교도서관에 와서 ‘훑어보기’, 즉 ‘브라우징’(Browsing)을 한다. 소논문쓰기 활동을 통해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자료 구하기’, 즉 ‘서치’(Search) 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러한 문헌연구가 탄탄하게 이루어져야 다양한 연구가 가능해진다. 자료 출처 언급하는 법, 각주 다는 법 등 논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알려주고, 연구자에게 필요한 윤리도 교육한다.”

이 학교 소논문반 학생 12명은 지난해 각자 논문 한 편씩을 준비하며 모둠활동도 병행했다. 모둠에서 친구들과 서로의 논문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일종의 ‘협동 프로젝트’를 했다. <청소년들의 화장품 사용실태에 대한 개선방안과 부작용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를 쓴 2학년 박혜정양은 “내 논문이 화학 관련 내용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 생소한 용어가 많았다”며 “친구들이 ‘각주로 용어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해줘 논문을 잘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논문 심사는 학생들이 한다. 그래서 박양이 쓴 논문의 심사위원 이름난에는 소논문반 학생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유 교사는 “다른 사람이 쓴 논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반대로 내가 쓴 논문에 대한 남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반론을 펴는 것 등도 논문 교육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 학교처럼 사서교사가 정보활용 교육을 맡고, 학생들이 쓰고자 하는 논문 주제 관련 교과의 교사가 첨삭지도를 해주는 ‘도서관 협력수업’ 체제까지 구축된다면 수업은 더욱 알차질 것”이라고 했다.

김청연 기자

 

 

 

새 입시 스펙 떠오른 ‘논문’…“한 편 지도에 300만원”
[함께하는 교육] ‘고교생 논문’ 컨설팅 성행

올해부터 대입 전형이 바뀌면서 논문 작성 경험 등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혼자서 논문을 쓰기에는 벅차다. 사교육업체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 실태를 알아본다.
한겨레
 

 

지난 6월30일 서울 보성여고 2학년 정유진(왼쪽)양과 박혜정양이 지난해 소논문쓰기 수업을 했던 학교도서관에서 소논문쓰기 활동을 할 때 봤던 참고자료 등을 펼쳐보고 있다. 보성여고는 일반고에서는 드물게 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소논문반을 운영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고교생 논문’ 컨설팅 성행

올해부터 대입 전형이 바뀌면서 논문 작성 경험 등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혼자서 논문을 쓰기에는 벅차다. 사교육업체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 실태를 알아본다.

“편당 최소 280만원입니다.”

지난 6월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논문 컨설팅 업체에 청소년 소논문 컨설팅 문의를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소논문 한 편 완성에 드는 시간은 약 3개월. 일주일에 두 차례 약 2시간 일대일 기본 교육을 하고, 온라인으로도 상시 지도를 해준다. 업체 쪽은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부 졸업생이나 석사학위 소지자가 아닌 박사학위 소지자가 지도한다는 점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했다. “우리 업체가 다루는 분야는 석·박사 논문, 학위 논문, 청소년 논문 등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주력 고객은 청소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 송파구 소재 또다른 논문 컨설팅 업체의 설명도 비슷했다. 학생이 소논문 한 편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업체가 받는 돈은 300만원. 업체 관계자는 “고교생뿐 아니라 특목고 입시 준비를 하는 중학생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교외 수상 실적 반영 금지하자
학생부 종합전형 변별요소로 부각
특목고생 위주서 일반고로 확산
‘교내 소논문 대회’ 여는 학교도
교육·평가 틀 없이 대회만 무성
또하나의 사교육시장 조장한 격

자기소개서에 논문 작성과정 담아

청소년 논문 시장의 주요 고객은 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다. 특목고생 중 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논문은 필수 스펙이기 때문이다.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면 합격에 더 유리하다. 그래서 컨설팅 업체는 “우리 쪽 박사에게 지도를 받으면 학술지에 실릴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논문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들어 사교육 시장의 ‘논문 장사’는 더 활발해지고 있다. 주요 고객층도 기존의 특목고생 위주에서 일반고생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이런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올해부터 논문 쓴 과정 등이 대입 자기소개서·추천서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의 다른 이름인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학생부와 함께 자기소개서·추천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송파구 소재 논문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올해부터 대학에 제출하는 서류에 교외 수상실적 등을 못 쓰게 되면서 내신 등급이 비슷한 학생들이 경쟁할 경우, 학업경험·관심 분야의 연구 이력 등이 변별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막연히 ‘공부를 열심히 잘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걸로는 부족하다. ‘이러이러한 연구 계획을 세워 어떤 과정으로 소기의 결과를 도출했다’는 구체적인 탐구 경험을 보여줘야 한다. 현실적으로 학생 혼자 준비하기는 어렵다.”

교내 수상 실적만 대입에 반영되면서 일반고에서는 전에 없던 교내 소논문 대회 등을 열기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교육은 없고, 대회만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기도 ㄷ고등학교에 다니는 신아무개양은 지난해 교내 소논문대회에서 ‘역사드라마’와 관련한 소논문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이 학교에서는 매해 1학기 중반부터 2학기 중반까지 신청자를 대상으로 약 4개월 동안 소논문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모둠을 이뤄 주제를 정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활동을 한다. 논문이 완성되면 소논문대회가 열린다.

하지만 신아무개양은 “대회가 열리는 건 좋지만 이와 연동해 학교가 논문 교육을 제대로 해주고 있진 않다”며 아쉬워했다. 모둠별로 소논문 주제를 정하면 주제와 관련이 있는 교과목의 교사가 논문지도를 맡는다. 하지만 학생이 먼저 찾아와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상 교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 신양은 “우리가 찾아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검토해주세요’라고 하면 오탈자 등을 봐주시는 정도였다. 오히려 논술학원 선생님을 통해 받은 도움이 더 컸다”고 했다.

학교 내 논문 교육과 평가에 대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대필 혐의’가 있는 논문이 수상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신양은 “‘국제 경제 문제’를 다룬 모둠이 입상했다. 학생이 썼다고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었다”고 평했다. “사실 내 논문도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기자·작가 등 전문가 코멘트가 많이 들어가서 좋게 평가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부선 교외 대회 실적 기입도 허용

교내 논문 스펙쌓기가 과열되는 상황에서 최근 두 개의 교외 학술대회가 신설됐다. 교외 수상실적 등이 대입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데 이런 대회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청소년사회과학연구소(spread.re.kr)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누리(경기 용인 수지고 3년)양은 “올해부터 대입에서 교외 활동은 절대 기록하면 안 되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상위권 대학의 몇몇 전형에는 그 원칙을 피해갈 수 있는 항목이 있다. 대회들은 아마 그런 학교 전형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양의 말처럼 연세대·고려대 등 상위권 학교의 학생부종합전형 서류를 살펴보면 이 학교들이 요구하는 서류에는 교외 실적을 얼마든지 적어낼 수 있다. 연세대 2015학년도 수시모집 특기자전형(창의인재계열·IT명품인재계열) 자기소개서 양식 중 ‘창의성/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항들’ 항목에는 ‘대외활동 경력’, ‘발표한 논문’ 등을 쓸 수 있게 해놓았다. 고려대 수시모집 학교장추천전형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에서 내놓은 자기소개서 양식 3번 항목을 보면 ‘교외 활동 중 학교장의 허락을 받고 참여한 활동은 포함한다’고 적고 있다. 학교장 입장에서 학생이 상위권 대학 합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런 대회에서 요구하는 논문 수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청소년사회과학연구소의 이세영 소장(경기 군포고 3년)은 “두 대회 모두 실제 석사 논문이랑 비교할 때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 수준의 논문을 요구한다”며 “심사기준이 이러하니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가 높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두 대회 가운데 한 대회는 K대학 연구소와 H인문연구단체가 주최한다. 한데 해당 대회의 누리집에 가보면 주최·주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누리집 첫 화면에는 C논술학원 누리집으로 갈 수 있도록 링크가 걸려 있다. H인문연구단체 쪽에서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단체에서 진행하는 학부모 세미나와 논술캠프 등에서 이 학원 강사들이 강의·첨삭 등을 진행한 적이 있어 후원 형식으로 소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논술학원 쪽 설명은 조금 달랐다. 학원 쪽에서는 “이 학술대회를 비롯해 논술대회 등을 H연구단체와 공동주최 한다”고 했다. 이 학원은 논술·자기소개서·논문쓰기와 관련한 수업을 개설 중이다. 학원 쪽에 “논문 수업을 들으면 대회 수상에 유리하냐”고 묻자 “일반적으로 논문을 써 본 학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수업을 들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학교 밖 행사인데 이 대회에 참여하거나 수상을 한 기록이 입시에 도움이 되겠냐”는 질문에 대한 단체 쪽과 학원 쪽 대답은 같았다. “학교에 따라 다르다. 학교장이 인정한 것은 가능한 걸로 안다.”

“과정보다 결과물만 중시할까 우려”

<고등학생 소논문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씨앤톡)의 공동저자인 소병문(서울 우신고 사서교사)씨는 “인문 연구 단체에서 주최한 대회인데 굳이 누리집에 학원 이름을 노출한 걸 보면 오해를 안 할 수 없다”며 “학원에서 주관했지만 사교육 업체가 했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대회는 논문을 온라인으로만 받아 평가한다. “평소 학술대회 등에 관심이 많아 대회 진행 방법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는 한 고교생은 “논문을 쓴 학생과 직접 대면해 논문을 본인이 집필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내용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이세영 소장은 논문쓰기와 관련해 각종 대회들이 나오는 건 반가워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고 했다.

“나와 친구들이 연구소를 차린 이유 중 하나는 ‘연구 중심의 올바른 연구’를 해보고, 다른 친구들에게 그 노하우 등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논문 관련 대회들이 많아지는 건 반갑지만 자칫 ‘과정’보다는 ‘결과물’에만 방점을 찍는 대회로 남을까 봐 걱정도 된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