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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2030 싱글族… '같이 밥 먹자' 열풍

2030 싱글族… '같이 밥 먹자' 열풍

샐러드와 갓 구운 빵, 티라미수 등이 놓인 우리나라 킨포크족의 식탁.
['셰어 라이프'에 빠진 도시의 젊은이들]

SNS서 만나 밥 같이 먹는 '킨포크족'

꽃꽂이·그림 그리기 등 취향도 공유… '따로 또 같이' 新개념 이웃살이


텃밭의 풀을 뜯어 샐러드를 만든다. 해진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한다. 가벼운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선다. 직접 해온 요리를 함께 나눠 먹고 차를 마신다. 요즘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이른바 '킨포크 족(Kinfolk 族·가까운 사람들이라는 뜻)' 풍경이다.

'킨포크'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출발한 작은 모임. 작가·화가·농부·사진가·디자이너 등이 모여 함께 요리를 하고 식사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잡지로 엮어냈고, 이는 곧 전 세계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이 잡지 속 삶을 따라 하는 킨포크족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여의도 공원 같은 곳에서 '번개' 모임을 하고, 다 같이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카페에 모여 소규모 가드닝을 배우기도 한다. 이들은 "도시에서의 삶은 외롭고 삭막하다.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따뜻한 모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30, '셰어 라이프'에 빠지다

웹 디자이너 이원진(34)씨도 자신을 킨포크족이라고 일컫는 사람이다. 페이스북에 종종 공지를 띄워, 낯선 사람들과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이른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이다.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이씨는 "음식의 맛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고, 먹는 행위보단 함께 나누는 것을 즐길 줄 알아야 하며, 자연스럽고 소박한 시간을 보내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맛있는 걸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왜 회식에서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고기 먹고 술 마시고 돌아오면서 살짝 허탈할 때가 있잖아요. 이런 모임에선 전혀 모르는 이들과 마주하지만, 나란히 앉아 천천히 밥을 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내가 누군지 돌아볼 수 있어요."

지난달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열렸던 '킨포크 워크숍' 모임도 비슷하다. 각기 다른 직업을 지닌 이 10여명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꽃으로 식탁을 꾸미고 그림을 그렸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문인영씨는 "집에서 만든 것, 따뜻한 것, 온기가 넘치는 것, 함께하는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현상 아니겠느냐"고 했다.

외로우니까! '따로 또 같이'의 욕망

몇 년 전만 해도 여행이나 미식업계를 움직이는 트렌드는 '나홀로족'이었다. 곳곳에서 홀로 움직이고 홀로 밥을 먹는 이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이젠 그 반대로 움직인다. 4명 중 1명이 1인 가구인 시대다. 요리사 박찬일씨는 "혼자 밥 먹는 게 항상 즐거울 순 없다. 외로울 때도 많다. 결국은 함께 나눠 먹을 누군가를 찾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킨포크족이 모든 것을 다 공유하는 소통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박씨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사실 힘들다. 누군가와 친해질수록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이렇게 SNS로 만나 음식을 나누고 헤어지는 건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각종 소셜 다이닝 카페 후기엔 "오늘 만남을 통해 내가 어떤 취향을 지녔는지 새삼 알게 됐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누군가와의 '인연 만들기'에 방점이 있기보단, 만남을 통해 찾는 '나'에 방점이 있다는 얘기다.

소박함과 허세 사이

킨포크족은 "자연스러운 식탁과 일상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일부에선 "자연스러움을 일부러 연출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 김보연씨는 "일부 킨포크족은 자연스러운 것과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은 것 사이에서 헤매는 것 같다"고 했다. "단순히 여럿이 모여 식탁을 차리는 것을 넘어, 진짜 온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죠."

[송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