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러시아에 푹 빠지니, 1년 만에 러 원서 술술

"러시아에 푹 빠지니, 1년 만에 러 원서 술술"

[외고 지망생에게 공개하는 나만의 공부법 | ⑥이영수(수원외고 3년)군]

면접서 '지역전문가의 꿈' 뚜렷이 드러내

노래 부르며 표현·단어 배워 어휘력 늘려


공자(孔子)는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이영수(수원외고 3년·사진)군은 러시아 민요 까츄사, 슬라브 여인의 작별 등을 대중가요처럼 흥얼거리고 러시아 원서를 국어 책처럼 읽는다. 러시아어 알파벳을 배운지 1년 만에 토르플(TORFL·러시아어 능력 인증 시험) 1단계(러시아 대학 입학 자격 요건)를 따낸 이군이 공부법을 밝혔다.

고려인 돕겠다는 생각으로 러시아어 공부 결정해

이영수군이 러시아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세계지도 때문이다. 한 나라가 아시아 대륙만 한 영토를 가진 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때 그는 일곱 살이었다.

호기심을 진로와 연결한 계기는 중학생 때 읽은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김재영 글)라는 책이다. "스탈린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잊어간다더군요. 민족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슬프다는 그들을 도우려고 러시아어를 배우려 했습니다."

뚜렷한 목표 의식은 외국어고 진학에 도움이 됐다. 그는 중 3 2월부터 외고 진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를 읽고 생긴 꿈과, 꿈을 이루기 위한 학습 계획을 자기소개서에 상세히 적었다. 수원외고 러시아어과 입학 면접에서 이군은 '고려인을 돕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고교 때 기본적인 러시아어를 배우고 대학에서 그 실력을 높인 뒤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지역전문가로 성장해 한·러 관계를 증진시키겠다'는 그의 꿈은 구체적이었다.

그 나라 문화에 관심 가지면 외국어 금세 늘어

이군은 고교에 입학하면서 러시아어 알파벳을 처음 접했다. 수원외고 입학 전 고교 생활 적응을 위해 학교가 연 캠프에서다. 러시아어 글자는 자음·모음 31개에 부호 2개까지 총 33개가 있는데 생김새가 복잡해 생소했다. 그는 2주간의 캠프 기간 중 1주 만에 알파벳을 익혔다. 그는 "러시아 영화나 문학, 노래의 원본을 이해하고 싶어 얼른 러시아어를 배웠다"고 말했다.

러시아어는 어미(語尾) 변화가 복잡해 배우기 어렵다고 알려졌다. 예컨대 형용사나 동사는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단어의 '끝'이 변한다. 러시아 노래를 좋아하는 그는 노래를 통해 러시아어 품사의 형태 변화를 익혔다. "노래는 문장으로 이뤄져 있죠. 이를 듣거나 따라 부르면서 여러 표현을 익혔습니다. 각 단어가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게 됐죠." 이군은 "러시아 노래를 부르며 표현이나 단어를 배워 어휘력을 늘렸다"고 말했다.

"현지인 친구 사귀며 회화 실력 키웠어요"

이군은 '브깐딱제'(VKontakte·vk.com)라는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애용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 현지에 있는 친구를 사귀고 그들과 화상 전화도 했다. "여기서 만난 친구 중 안나가 기억에 남네요. K-POP에 관심 있는 몽골계 러시아인인데 러시아어로 한국 대중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죠. 인터넷 전화인 스카이프를 이용해 듣고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군은 교내 원어민 교사 수업을 들으며 러시아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다. 실제 원어민과 대화를 해 보니 예상과 달랐다. 생활 러시아어는 말하는 속도도 빠르고 어휘도 처음 듣는 게 많았다. 그는 "처음엔 '쉬또(뭐라고)?'를 연발했지만 점차 소통이 원활해졌다"며 "덕분에 회화에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군은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러시아인 10여명을 맞았다. 한국을 찾는 러시아인이 의사소통 문제를 겪는다고 해 그들의 관광을 돕기 위해서였다. 이군은 교내 러시아 문화 동아리 '에따라씨야' 부원들과 함께 페이스북과 브깐딱제에 홍보글을 작성했다. 숙소를 잡는 일에서부터 △인사동 △청계천 △명동 △수원 화성 등 서울과 수원의 명소를 무료로 소개해준다는 글에 호응이 뜨거웠다. 안나를 포함해 약 10명의 러시아인이 실제 이들을 찾았다.

"닭곰탕이 맵다면서도 땀 흘리며 먹는 그들의 모습에서 민간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죠. 언어를 배우는 게 그 나라의 문화·사회·역사 등을 배우는 거라고 느꼈던 계기입니다. 러시아어를 배울 때 언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러시아의 모든 것에 진정으로 빠졌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러시아어 실력을 늘렸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박기석 맛있는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