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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후배 교사들아, 모여서 이야기하자

"후배 교사들아, 모여서 이야기하자"

[오마이뉴스 이창열 기자]

 

 

▲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 ▲ 이상석 교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교조를 과격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전교조란다. 해직 이후 한 번도 전교조를 떠난 적 없는 이상석 교사는 올해로 정년퇴임이다.
ⓒ 안옥수

이상석(부산 신도고) 선생이 책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를 새로 선보였다. 이 책은 이 선생이 2004~2007년 부산 경남공고에 있을 때 쓴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선생은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의 작가로 더 유명하다. 이 책은 최근 1·2권을 묶어 다시 출간할 만큼 교육 분야의 스테디셀러다. 무려 5판 30쇄나 찍었다. <사랑으로 매긴~> 1권이 1988년에 나왔으니 <도대체 학교가~>는 25년여 만에 다시 만나는 이 선생의 신작인 셈이다. 앞의 책이 30대 교사의 교단일기였다면 뒤의 책은 50대 교사의 교단일기다.

"30대 교사 때는 내가 아이들에게 푹 빠져 있었어요. 사랑을 듬뿍 주고 또 받으면서 사랑에 겨웠던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탄압을 받았어요. 아이들과 연극 하나 보러 가려고 해도 학생부에서 조사를 했으니까요. 50대의 이야기를 쓴 <도대체 학교가~>는 아이들을 조금 관조한 이야기를 썼어요. 사랑에 푹 빠지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그대로 다 이해하고… 이젠 아이들 때문에 내 감정이 흔들리진 않아요."

이 책에는 이 선생이 말한 '관조한 이야기'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건 버릇없는 것도 못된 것도 아니다. 내게 보내는 사랑의 표시다. 그래 이런 아이도 내쫓기지 않는 교실이 좋은 교실이지. 한 번 더 웃고 공부해도 늦지 않으니까."(책 294쪽) 

삶을 가꾸는 글쓰기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간다/정말 배고플 시간/저녁 밥상이 차려지길 기다리며 티비를 보고 있다/"밥 먹자"/티비를 끄고 밥상 앞으로 가 앉는다/오늘도 어김없이 밥상 위엔 네 가지가 올라와 있다//밥, 김치, 수저, 그리고 물//순식간에 상 위를 스윽 훑어보고 난 뒤 밥을 먹기 시작한다/'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을 텐데'/없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나를 달랜다"(김찬우 '제목 없음')

<도대체 학교가~>에 나오는 경남공고 학생의 글이다. 밥상엔 밥과 김치, 수저, 물, 네 가지만 올라온다. 이 시에 감동받은 아이들은 야유와 냉담 대신 찬우에게 격려를 보낸다. "오우! 찬우!" "오! 찬우! 굿! 파이팅!" 격려를 한다.

3학년 안영진은 '급식비'라는 제목으로 산문을 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이 가난해서 급식을 먹고 남은 반찬을 싸서 가져가다가 담임에게 들켜 모욕을 당한 아픈 상처를 드러낸 글이다. 친구들 앞에서 울며 이 글을 읽은 영진이에게 친구들은 "괜찮아! 괜찮아!" 소리치며 위로해준다. '감동이 흐르는 교실'이다.

"글쓰기에는 자기의 부끄러움과 못난 점을 마음대로 드러내야 해요. 자기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마음속에 숨기고 있으면 썩어서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먹게 되요. 부끄러움을 드러내게 하고 자기 삶을 변화시켜야 해요. 남의 아픔을 상상하고 남을 돌아보고 내 스스로 추스르면서 그걸 글로 쓰고 공감을 얻는 일이 중요해요. 제가 글쓰기에 정성을 다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쓰기', 노동자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이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 가난한 이웃을 볼 수 있고, 스스로 당당해지게 하는 일. 이게 내가 교단에서 해야 할 일이었어요."

거리의 교사, 이상석

이 선생은 정년이 1년 남았다. 1979년에 야간공고(대양공고)에서 처음 교단에 섰다. 올해로 교직경력 35년을 맞았다. 아니다. 1989년 전교조를 결성하고 해직돼 '거리의 교사'로 살았던 5년을 빼면 올해로 꼭 30년이다.

이 선생은 참교육의 열정 하나만 가슴에 품고 스스로 '거리의 교사'로 살았다. 거리에서 노동자들과 어깨를 결었고, 대학생들을 만나 밤을 새워 이야기했다. 그때 경험을 쓴 <굴종의 삶을 떨치고>로 이 선생은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다.

"전태일 문학상은 어느 문학상보다 영광된 상이었어요. 하지만 <도대체 학교가~>를 내면서 저자 소개에서 전태일 문학상 수상경력을 빼자고 출판사에 말했어요. 우선 수십 년도 전의 오래된 일이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 자신이 전태일 정신을 간직하면서 올곧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했으니까요. 그렇지 못하거든요."

이 선생은 '거리의 교사'로 살았던 5년을 "말과 삶이 일치했던 시절,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게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이 선생의 나이가 서른아홉 살이었다. 이 선생에게 '서른아홉'은 "흔들림 없이 자기 삶에 책임을 질 나이,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절, 늙지도 젊지도 않은 시절"이었단다. 그래서 이 선생은 '영원히 서른아홉'이란다.
 

전교조 반드시 지켜달라

이상석 선생을 흔히 '전교조 1세대'라고 부른다.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된 1500여 명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도종환 의원과 안도현 시인, 이수호, 이영희, 윤영규 선생이 바로 '전교조 1세대'다. 이 선생이 살았던 부산에서만 79명이 전교조 결성을 이유로 해직됐단다. 이 선생은 '전교조 1세대'란 말을 못내 부담스러워하면서 쓰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영 부담스럽습니다. 그 말에는 운동의 기득권을 가진 느낌, 운동의 시초라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하지만 전교조 결성이 참교육운동의 시초는 결코 아니지요. 오히려 1989년 당시 교단에 막 선 1~2년차 새내기 교사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대학 입학년도로 따지면 84학번 쯤 되겠네요. 그 선생님들은 교사로서 당연한 참교육의 열망을 품었다는 이유로 해직됐고, 해직된 뒤에도 사무실에서도 온갖 궂은 일을 헌신적으로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교사집단의 소금'인 전교조를 반드시 지켜달라고 말한다.

"선생 일은 편하게 할 수도 있고 24시간이 모자라게 빡세게 할 수도 있어요. 전교조는 앞서 나가서 싸우는 집단이에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 '이게 아니야' 할 때 앞으로 나가는 게 전교조입니다. 물러서면 죽기 때문입니다. 물러설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못 느끼는 사람도 있어요. 벼랑으로 떨어지면 오히려 편합니다. 굴종의 단맛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꼭 전교조 조합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모여서 이야기해야 해요. 모여서 교사모임을 만들고 어떻게 할지 의논해야 합니다. 전교조는 귀하고 아름다운 집단인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희망>에도 함께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