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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 다니기 싫다는 중2, 이렇게 다독이고 있어요

학교 다니기 싫다는 중2, 이렇게 다독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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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은균 기자]

"무슨 일 있었니?"
"······."
"늦잠 잔 거야?"

명수(가명)는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머릿속에 퍼뜩 '드디어'가 떠올렸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명수는 우리 반에서 손꼽히는 장난꾸러기들 중 하나다. 입학식 날, 명수는 제 단짝인 승철이(가명)와 우리 반 줄 맨 뒤쪽에 앉아 있었다. '허세 쩌는' 중2 특유의 포즈를 취한 채로였다. 두 다리는 쩍 벌린 채 엉덩이는 의자 끝에 대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시건방지게 보이는 자세였다.

교사석에 앉아 있던 나는 명수와 승철이에게 몇 번이나 눈길을 주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앉음새를 살짝 고쳤다. 조금 있다가 돌아보면 원래 모습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저 두 녀석 있잖아."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님 하나가 내 옆구리를 살짝 건드렸다. 나보다 중학교 근무 경력이 몇 년 많은 또래 교사였다.

"맨 뒤에 앉은 녀석들?"
"응. 2학년 복도파들 중 하나야."
"복도파?"

아직 '복도파'를 알기 전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휘젓고 다니며 떠들고, 얘들에게 장난 거는 놈들이지. 말썽쟁이들이야. 잘 봐 둬."

그가 실실 웃었다. 명수와 승철이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바라보았다. 앞만 바라보는 둘의 표정이 차갑다 싶게 무덤덤해 보였다. 살짝 긴장감이 들었다.

명수는 등교 후에 책상에 엎드려 잘 때가 많았다. 아침 책읽기 시간에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깨를 주물러 주며 깨우면 고개를 드는 듯하다가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거의 널부러진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명수 모습은 마치 물에 젖은 얇은 휴짓장 같았다.

그런 명수는 1, 2교시 수업이 지나서야 겨우 기운을 차렸다.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면 부리나케 복도로 튀어나갔다. 그러고는 2학년 교실과 복도 전체를 휘잡고 다녔다. 오가는 아이들을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그런 명수가 무단 지각을 했다. 2학년 들어 처음이긴 했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기색 하나 없는 게 불안했다. 명수 가방을 들어 보았다. 가붓했다. 지퍼를 열었다. 책이며 공책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텅 빈 가방이네?"
"······."
"필통도 없어?"
"네."
"어쩌다가 늦은 거야?"
"그냥···, 친구들이랑 함께 있었어요."
"친구들 누구?"
"시현(가명), 종규(가명)요."

모두 우리 학교 2학년에서 한 말썽 부리는 말괄량이 녀석들이다.

"함께 뭐했는데?"
"그냥 시내 돌아다녔어요."
"······. 명수 학교 공부 하기 싫은 거야?"
"······."
"학교 다니기 싫어?"

명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네' 하고 대답했다. 낮은 목소리였으나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명수가 솔직히 대답해 줘서 고맙다. 그래도 이렇게 학교 오기 싫다고 네 맘대로 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거 잘 알지?"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마음대로 할 테니 제발 가만 놔 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아이들에 비하면 명수는 그대로 말귀는 통하는 편이다.

나는 명수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조그마한 손이 내 손아귀 안에서 살짝 꿈틀거렸다. 아침을 거르다시피 하면서 오는 명수는 체구가 왜소했다. 손목도 가늘디 가늘었다. 안타까움이 일었다.

명수는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게 아니었다. 텅 빈 가방이 그 뚜렷한 증거였다. 공부나 배움의 즐거움을 알 리 없었다. 그런 경험을 전혀 가져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명수에게 학교는 공부하거나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을 만나 장난 치고 노는 곳일 뿐이었다.

"방과후,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하자"

그래서였을까. 명수는 크고작은 일들에 연루될 때가 많았다. 3월 초, 체육 시간에 레슬링 장난을 치다가 친구 손가락을 다치게 한 싸움도 그중 하나였다. 갑작스레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학부모들도 서로 크게 이해해 주었다. 다행히 심각한 학교폭력 사건으로까지 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년 초의 학급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3월 중순경에는 수업 중에 한 선생님에게 대든 일도 있었다. 교무실로 내려와 자초지종을 전하는 인성인권부(옛날 학생부) 선생님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교무실로 명수를 불러들였다. 전후 상황을 들었다. 예의 선생님이 명수가 학습지 인쇄물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냅다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고 한다.

하지만 명수는 인쇄물을 나눠주던 그날 다른 일로 인성인권부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전후 사정도 묻지 않은 채 다짜고짜 때리는 선생님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야기를 전하는 명수는 그때까지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목소리가 떨렸다. 명수가 대든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었다.

"명수야, 선생님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나는 명수의 자그마한 손을 더 꽉 쥐면서 말했다. 명수는 지금 몇몇 선생님들에게 미운 털이 박혀 있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 수업 시간에 원만한 시간을 갖기는 힘들다.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더 공부와 배움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명수에게는 진심 어린 시선이나 따뜻한 관심이 그 무엇보다 필요해 보였다.

"······?"
"명수 너 달리기 좋아한다고 했지?"

명수는 학년 초에 써낸 자기소개서의 '취미' 칸에 '달리기'를 적어 넣었다. 명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랑 달리기 하자. 선생님도 달리기 좋아하거든. 1주일에 하루 날 잡아서 함께 뛰자고. 방과 후에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되지 않을까. 어때?"

한 2~3초 머뭇거렸을까. 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번 주까지 어느 요일이 좋은지 내게 말해 줘. 알았지?"

명수는 다시 한 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끝내고 명수를 돌려보냈다. 그 주 마지막 날까지 명수를 기다렸다. 명수는 찾아오지 않았다. 잊어버렸을까?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새 주일이 시작되고 나서도 명수는 내게 오지 않았다. 그것이 지난 주였다. 며칠 전, 복도를 지나는 명수를 불러세웠다.

"명수 너 선생님께 해 줄 말 있지 않아?"
"네."
"그럼 말해 줘야지. 선생님이랑 함께 하는 거 싫어?"
"아니에요."

명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럼 다음 주부터 하자. 시간은 월요일에 함께 잡아보자. 알았지?"
"네."

목소리가 밝고 힘찼다.

야단부터 치지 않고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어준 덕분이었을까. 명수는 '묻지 마' 지각을 한 뒤부터 제 시간에 맞춰 등교하고 있다. 나를 볼 때는 살짝 미소를 띤다. 복도에서 놀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다가와 일부러 인사를 하고 갔다. 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데, 지금 명수가 딱 그런 것 같다.

지난 주, 명수는 그간 받은 과다벌점으로 교내 봉사를 했다. 복도와 교실 바깥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이사이, 명수는 내가 수업하고 있는 교실 창문 쪽으로 와 한참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해맑은 미소를 띤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 명수의 얼굴에서 학기 초의 차가운 무덤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명수는 여전히 아침 등교 후에 젖은 휴짓장처럼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다. 수업 중에도 멍한 표정으로 졸 때가 많다. 복도를 오가며 노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배움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아직 멀어 보인다.

하지만 명수는 학교로부터 벗어나지는 않았다. 명수와 공부 사이에는 여전히 높은 담이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그걸 빌미로 책가방을 내던져 버리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나는 명수가 앞으로도 학교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명수는 지금 자기 나름대로 학교 생활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주면 명수와 함께 첫 달리기를 한다. 명수가 나와 함께 땀을 흘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 보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배움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다른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진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는 걸 깨닫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