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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실패해도 곧 일어나는 아이에겐 비밀이 있다

실패해도 곧 일어나는 아이에겐 비밀이 있다
[함께하는 교육] 내 아이 회복탄력성 키우기

지난겨울 한 교사 대상 세미나에서는 ‘회복탄력성’ 강의가 큰 인기를 끌었다. 회복탄력성이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키워주는 자녀교육법이 주목받고 있다.
한겨레
 

 

회복탄력성이 있는 가정의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기보다는 감정을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평소 “지금 기분 어떠니?” “엄마는 너희들이 항상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는 이성실(사진 가운데)씨가 아들 신영도(잠실중 2년)군, 딸 신소빈(잠실여고 1년)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함께하는 교육] 내 아이 회복탄력성 키우기

지난겨울 한 교사 대상 세미나에서는 ‘회복탄력성’ 강의가 큰 인기를 끌었다. 회복탄력성이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을 가리키는 말로, 이를 키워주는 자녀교육법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한때는 정말 힘들었다”며 몇 년 전을 회상했다. 고3, 고1, 중3. 딸 셋. 둘째는 초교 4학년 때 풍(風)이 와서 왼쪽 몸을 잘 못 썼다. 둘째가 운동, 모래놀이 치료(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만지고 노는 모래를 매개로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파악하면서 하는 치료) 등 각종 치료를 해보는 과정에서 중2에 올라간 큰딸의 문제가 보였다. 딸은 “엄마, 나도 우울하다”고 이야기했다. 중3이 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감정을 잘 추스르지 못했다. 사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사에 너무 부정적이었다. 학교에 가도 공부를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자퇴를 고민했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상상하고 불안해했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팔목에는 이상한 흉터가 보였다. 급한 불은 꺼야 한다는 생각에 각종 상담 등을 받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과정에서 딸이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심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뜻한다. ‘회복력’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등을 쓴 에이치디(HD)행복연구소 최성애 박사는 “과거에는 회복탄력성을 역경, 도전 상황에서 딛고 일어나는 힘이라고만 이야기했지만 요즘엔 도전적인 상황에 미리 대처하고 준비하는 능력까지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생명체에는 자기조절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몸속 위를 예로 들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위가 팽창하고, 배가 불렀을 땐 소화를 하면서 수축하죠. 이미 팽창이 충분히 됐는데도 과한 자극을 주고 욕심을 내면 조절능력이 상합니다. 감정도 이미 포화상태가 됐는데 계속해서 과한 자극을 주면 수축과 팽창의 자연스러운 조율에 무리가 생깁니다.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지나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 상황이 반복되어도 회복탄력성은 떨어진다. 예를 들어, 아이 입장에서는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했는데 “그런 거나 물어보고 있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거나 자기 나름대로 공을 들여 뭔가를 했는데 “이것도 한 거냐?”라는 소리를 들으면 관심은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고 수축된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아이들은 특징이 있다. 모든 면에 부정적이다. 자유롭지 않다. “날 좀 내버려 두라”는 말을 자주 한다. 뭘 봐도 감동이 없다. 친화력이 떨어진다. 시험을 잘못 보거나 누군가와의 관계 맺기가 힘들어질 때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실패’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가 자녀가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점에 이런 반응을 보이면 ‘중2병’을 의심하지만 실은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앞에 등장한 김씨의 딸은 회복탄력성을 찾은 상태다. 엄마는 회복탄력성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감사일기 쓰기, 운동하기 등을 실천했다. 대화법도 바꿨다. 아이의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자기조절능력을 상실했고 과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돼 있었다는 뜻이다. 엄마는 자신이 그동안 ‘억압형 부모’였고, ‘닫힌 대화’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는 엠비티아이(MBTI) 검사를 하면 은행가형, 군인형 등으로 나옵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부모죠. 지금 내가 아이를 잘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고 있는지에만 신경을 썼고, 그렇게 했으니 다 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든 생명체엔 자기조절 능력
하지만 지나친 자극 반복되면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 어려워

약점보다 강점 발견해 알려주고
성과 자체보다 노력 칭찬해주고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자
마음건강 찾으면 공부도 저절로

부모와 아이의 대화는 어느새 ‘열린 대화’로 바뀌었다. “넌 동생한테 왜 양보를 안 해?”라는 말은 “너도 이거 갖고 싶었구나”로 바뀌었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많이 밝아졌고, 공부에 대한 의욕도 생겼다.

전문가들은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할 때 ‘카우아이섬의 아이들’ 사례를 소개한다. 1954년 하와이군도 서북쪽 끝에 위치한 카우아이섬은 대대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주민 대다수는 범죄자, 사회부적응자, 정신질환자였다. 학자들은 이 섬에서 1955년에 태어난 모든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30살 이상 성인이 될 때까지 궤적을 추적했다. 대부분 사회부적응자가 됐을 것 같지만 아니었다. 심리학자 에미 워너 교수는 833명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고위험군’ 아이 201명을 추려 성장 과정을 다시 분석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 가운데 3분의 1인 72명이 판단력이 있고, 자율적이며 도덕적인 인물로 잘 성장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부모, 조부모, 친척, 성직자 등 주변 인물 가운데 단 한 어른이라도 그를 무조건 사랑해주고 지지해줬다는 점이다. 최 박사는 “기본적으로 지능이 너무 낮으면 환경에 대한 자기통제권이 떨어지기 때문에 평균 정도의 지능이 있고, 누군가 한 사람의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줬다면 환경적으로 어려워도 회복탄력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이 낮아 일어나는 문제상황을 어른들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이 행동들은 부모나 아이 주변의 가까운 어른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도 있다. 최 박사가 교사 대상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티처빌 원격교육연수원(teacherville.co.kr) 등에서 회복탄력성 관련 강의를 할 때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들과 가까이 생활하는 교사 등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최 박사는 “아이가 초등 4, 5학년 때까지 별문제가 없다가 갑자기 너무 힘들어하거나 스트레스 강박을 호소하면 아이가 아니라 부모의 부부관계, 부부를 둘러싼 직장, 지인들과의 관계 등을 살펴보라고 한다”고 했다. 부모가 겪은 스트레스 상황이 아이에게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모가 어린 시절에 겪은 심리적 외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성인이 됐을 경우, 자신의 상처를 아이에게 대입해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낮추는 발언을 할 수도 있다. “아빠 어릴 때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근데 너는 왜 그래?”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회복탄력성>을 쓴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김주환 교수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이 두 가지를 길러주는 게 바로 긍정적 정서”라고 손꼽았다. 약점보다는 강점을 발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시 송파구에 사는 이성실씨는 고1 딸, 중2 아들에게 평소 “우리 아이들은 참 고마워”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우리 딸’, ‘책도 열심히 읽고 엄마 설거지도 자주 도와주는 우리 아들’이라며 아이마다 장점을 구체적으로 손꼽으며 칭찬도 자주 한다.

회복탄력성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부모와 아이 사이의 대화법도 매우 중요하다. “네까짓 게 뭐라고 대들어”, “넌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안 봐도 알아. 싹이 노랗지.” 사춘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런 식의 인격모독 대화는 아이를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고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니까…’라는 생각을 내재화시켜서 아이의 우울과 일탈을 부르기 쉽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진아무개씨에게는 초등 6년, 초등 3년 아들 둘이 있다. 큰아들은 또래와 노는 것보다는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1학년 때 한 친구가 본인을 비롯해 반 아이들을 여러 명 때리고 다니는 걸 보고 아들은 그 친구에게 침을 뱉었다. 엄마는 아들이 힘든 상황에서 그런 방식의 대처를 했다는 게 속상했다. 공부는 잘했지만 관계 맺기, 문제해결에는 서툴러 보였다. 진씨는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결혼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거의 끊고 지냈다. 이런 상황이 아이에게 전달된 것 같다”고 했다.

대화법도 문제였다. “몇 번을 얘기하니! 책가방을 싸놓은 다음에 이 닦으라고 했지!” 지시형 대화가 많았다. 아빠는 “다른 건 몰라도 수학만큼은 100점을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어려운 수학문제 앞에서 그 문제만 놓고 늘 뱅뱅 돌았다. 엄마는 쉬운 문제부터 풀고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어려운 문제 하나만 놓고 계속해서 틀리면서 시험 시간만 보내는 아들이 답답했다. “이 문제는 왜 이렇게 안 풀고 이렇게 풀어?” 아이의 성적은 어느새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감도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실력이 안 되면서도 스스로 수학 경시대회에 도전해보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의욕을 보인다.

진씨는 “회복탄력성 공부를 하면서 남편과 ‘아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노력을 했을 때 성과 자체보다는 노력에 대해 칭찬을 하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또래 문제에 대해서도 ‘왜 이런 식으로 행동했어?’가 아니라 ‘어떤 기분이었기에, 왜 그렇게 했을까?’로 감정을 묻는 ‘열린 질문’을 한다. 아이가 어느새 긍정의 대화를 하더라. ‘엄마. 내가 이거 틀렸는데 이걸 표시해놓고 보니까 이 부분만 잘하면 성적이 오를 것 같아.’ 아이가 다시 해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회복탄력성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회복탄력성은 성적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도 인성교육의 하나인데 보통 인성교육은 학업성취도와 관련이 없거나 학업을 희생해야 하는 부분으로 여긴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면 스트레스, 우울 등이 사라지고 성적도 오른다. 마음건강을 잘 챙겨야 공부도 된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최 박사 역시 “학습은 호기심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데 호기심이 생기려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기조절이 가능한 상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회복탄력성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아이들에게 꽃, 애완동물 등 내가 보호해주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생명체를 길러볼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생명체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감사하고, 긍정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사소하지만 5초 동안 숨을 깊게 마시고 5초 동안 다시 내쉬는 심장 호흡법도 스트레스를 낮춰줘 회복탄력성을 높여준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