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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3월 한 달에 처리해야 할 공문 천건... 너무 합니다

3월 한 달에 처리해야 할 공문 천건... 너무 합니다

[주장] 교사잡무를 없애는 게 우리교육 정상화의 첩경이다

14.03.17 15:18l최종 업데이트 14.03.17 15:18l정도원(dutscheong)

2014년 신학기로 들어온 지 2주가 지났다. 어느 지역 어느 학교든 매년 초 새 학년을 맞이하는 교사들에게 '3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새 학년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선생님들과 친해지고 생활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서먹서먹하고 다소 불안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게다가 교실도 바뀌고 교과서도 참고서도 다 바뀌니, 다들 긴장하여 '신학기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학교 내에서도 각종 협의회를 하고 계획을 짜고 기안을 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니, 눈코 뜰 새 없다. 그러니, 잠깐씩 짬을 내어 수업을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하지만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교육청에서 보내오는 불요불급하고 교육적 의미나 가치도 없는 각종 공문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3월 한 달 전국 모든 학교마다 처리해야 하는 공문은 천 건은 훌쩍 넘을 것이다. 신학기 두 주가 지난 지금 벌써 접수공문이 4백 건을 훌쩍 넘겼다고 하고, 학교 내 자체 공문도 이미 수 백 건을 넘게 생산했으니, 잘 하면 이 달 내로 2천 건에 육박할 지도 모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는 39학급에 교사가 모두 80여 명인 대도시 대규모 학교 인데도 불구하고(36학급 미만의 중·소규모 학교야 두 말 해 무엇하랴), 맡은 부서와 때에 따라서는 하루 두세 건 이상의 공문을 처리해야 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런 날엔, 방과 후 보충수업을 포함하여 줄잡아 하루 수업을 다섯 시간 한다고 치면, 밥 먹고 양치할 시간도 없다. 가히 살인적 격무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어요. 입에서 단내가 났어요."

신학기 테이블메이트가 된 삼십대 중반의 이아무개 교사가 "지난해엔 올해보다 더 힘들었죠?"라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바뀐 교과서와 참고서를 집에 가져가서 교재 연구를 하고 수업자료를 만들고 시연을 해보지 않은 이상, 3월 수업은 아무래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신학기 담임을 맡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에 대한 상담은커녕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숨길 수 없는 오늘의 학교 모습, 우리교육의 초상이다.

이번에 경기지사로 나선 김상곤 교육감은 교육감후보 시절, 경기교육청 산하의 모든 기관의 공문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두 번의 교육감 재임 후 실제로 공문이 옛날보다 많이 줄어든 것으로 듣고 있다. 올해 들어 필자가 근무하는 이곳 대구교육청도 '수요일은 공문 없는 날'로 정했나 보다. 이것은 잡무경감 아이디어를 모아달라는 공문과 싱크로율 90%다. 부디 교사들이 교재를 연구하고 수업자료를 만들고 조용히 전공관련 독서라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가만히 좀 뒀으면 좋겠다. 오늘날 학교와 교무실엔, 교사는 안 보이고 교육청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