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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특별한 김웅용의 평범한 행복 찾기

특별한 김웅용의 평범한 행복 찾기

한국의 천재, 김웅용. 4세에 4개 국어를 하고 5세 때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도쿄대 교수가 낸 미적분을 풀어 세간에 화제가 됐다. 8세 때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원 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평범한 삶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현지 적응 실패 후 귀국한 그는 검정고시로 정규교육을 대신하며 평범한 삶을 택했다. 그런 그에게 들려온 소식, 대학교수로 임용이 됐다는 것. 그를 만났다.

 

실패한 천재? 실패하지 않았고 천재도 아니다
“제가 꿈을 이뤘다고요? 아닙니다.” 충북개발공사 사업처 처장으로 재직해왔던 김웅용씨(52)는 최근 의정부에 위치한 신한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됐다. 그런데 그는 근황을 전하는 뉴스 중 ‘그가 교수의 꿈을 이뤘다’라는 제목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대학교수가 꿈이었다면 이미 이뤘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건가요? 제 꿈은 교수가 아니에요. 일단 제자들을 번듯하게 가르쳐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하나의 꿈이고, 또 연구 실적을 좀 더 쌓고 싶어요. 나아가 노벨상에도 도전해보고 싶고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천재’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따라다니고 있다. 많은 오해도 있었고,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김웅용씨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충북개발공사에서 일해왔다. 아파트, 공장, 도로 부지에 대한 인허가를 받고 직접 토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종종 단체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내용을 들어보면 제게 영재교육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거예요. 제 전공은 토목인데 말이죠. 전 영재교육 전문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실패담을 토대로 강의하라고 하더군요. 그건 들추기 싫은 과거의 상처일 수 있는데 참 당연하게 부탁하더라고요.”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느냐”는 것도 사람들의 단골 질문이다. 그는 한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을 ‘공부’로 삼는 것은 무척 편협한 시각이라 지적한다. 또 “천재가 그것도 못하느냐”라는 농담도 불편할 따름이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천재라면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제가 길치예요. 길을 헷갈려 하면 옆 사람이 ‘천재가 길도 몰라요?’라고 농담하듯 이야기해요. 모든 것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보세요. 자신의 재능을 알고 부단히 노력해 피겨 천재가 됐잖아요.”

그는 ‘모든 것을 다 잘해야 천재, 영재’라는 우리의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오히려 숨겨진 영재들을 발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정부가 기존 상위 5%에 대한 영재교육의 폭을 넓혀 10%의 아이들에게 영재교육을 시키겠다고 발표했죠. 영재교육을 하면 그 애가 저절로 영재가 될까요? 그럼 하는 김에 20%로 늘리지요? 영재는 발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개발하는 것이 진짜 영재교육이죠.”

우리의 영재교육은 과도하게 과학과 수학에 편중돼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영재교육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 모든 과목에서 높은 등급을 받아야 일류 대학에 갈 수 있는 지금의 교육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저는 15년 동안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강의를 해왔어요. 그때 학생들의 학점 관리라는 걸 알았어요. 90점만 맞으면 A플러스예요. 깊이 공부해서 100점 맞을 필요가 없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90점이 되도록 공부하는 게 낫죠. 100점과 85점을 맞은 학생보다 두 과목 모두 90점을 맞은 학생이 높이 평가받고 장학금도 타죠. 내신 등급도 마찬가지죠. 이런 제도가 더 파고들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골고루 잘해야 잘하는 거지, 한쪽만 특별히 잘하는 건 의미가 없는 거죠.”

그는 특화된 적성을 살려 교육시키는 것이 영재교육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아이를 영재로 만들고 싶다면 ‘특화된 재능’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한 가지 재주는 타고났으니 말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도 소중하다
어릴 때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김웅용씨.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장 평범했던 ‘대학 시절’이라고 고백한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높은 위치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늘 특별한 걸 찾으려 하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을 버리려 하죠. 아이를 1천만원짜리 유치원에 보내기도 하고요. 남들보다 특별하고 싶어서요. 그렇지만 당연하게 주어지는 평범함의 소중함도 아셔야 해요. 저는 누구나 저절로 얻을 수 있는 초·중·고 학창 시절 동창생이 없어요.”

그는 미국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이수했고, NASA 연구소의 경력증명서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했다.

“국내 대학에 입학하면서 내심 나에게도 동문 친구가 생긴다는 생각에 기뻤어요. 그런데 입학하고 보니 대학교 친구보다 친한 것이 고등학교 친구더군요. 학내에 고등학교 동문회가 따로 있었죠. 저는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소소한 행복…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르실 거예요.”

그는 비교적 인원이 적었던 원주고등학교 동문회에 문을 두드려보았다. 모교에 대한 지식 없이는 받아줄 수 없다는 말에 그는 원주고까지 찾아갔다.

“교가 부르기와 수학선생님 별명을 맞추는 테스트를 거친 뒤에 ‘성의가 괘씸하다’라는 이유로 원주고 동문 모임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금도 후배들이 제가 원주고 출신인 줄 알고 각종 학교 우편물을 보내줘요(웃음). 남들이 저절로 얻는 것들을 저는 노력해서 얻어야 했죠.”

또 제일 가보고 싶었던 것이 학교 소풍과 수학여행이었다. 교복도 입어보고 싶었다.

“친구들이 ‘소풍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한참 걸어갔다가 밥 먹고 오는 거야’라고 하지만 저는 경험해보지 못한 거잖아요. 그런 게 행복이죠. 아이가 학원을 전전하며 1등을 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지요.”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놀아보지 못한 아이가 과연 나라의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협동심을 모르는 아이들은 커서 동료들과 공동연구를 할 수 없다. 요즘 이공계 분야 노벨상은 공동연구가 아니면 수상이 불가능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동아리 가입도 잘 안 한다고 해요. 그룹 과제도 잘 못하고요. 조를 짜놓으면 뭉치지 못해서 하는 사람만 한다더군요. 앞으로 학생들의 이런 취약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교수법이나 규칙을 만들려고 해요.”

처음이란 단어는 설렘과 함께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운을 북돋아준다. 대학교에서 첫 제자를 맞는 그의 첫걸음도 마찬가지다.

공부시키는 것, 부모의 역할이 아니다
김웅용씨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작은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다. 큰아들은 운동을 좋아하고 작은아들은 춤과 노래에 관심이 많다. 둘 다 특출하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임원이 될 정도로 리더십과 사회성이 좋다. 아이들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교육이다.

“아내와 맞벌이하는 동안에 키운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예방접종도 못 맞춰 병이란 병은 다 걸렸죠. 그래서 어린이집 대신 스포츠 클럽에 보냈어요. 애가 운동을 하고 건강해지니 성격까지 변하더라고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요. ‘사회성을 더 키워주면 좋겠구나’ 생각했죠.”

12세 무렵 큰아이는 이탈리아에 사는 고모 댁에 놀러 가자고 떼를 썼다. 축구를 좋아해 유럽 프로리그를 직접 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엄마, 아빠는 돈이 없으니까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혼자 가겠다고 하더군요. 이탈리아까지 직항이 없던 시절이라 프랑크푸르트 경유를 해야 했어요. 결국 이름표 하나 달고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 고모 품에 안겼어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으로 아이는 한 단계씩 성장하는 거죠.”

그는 휴대전화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당시 아들이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축구선수 차두리를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이는 친화력이 좋고 리더십이 있어요. 그쪽으로 키워야지요. 공부만 시키면 뭐 하겠어요. 부모는 아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도와줘야 해요. 시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에요.”

부모들이 아이를 사설 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 애가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 우리 아이가 평균은 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는 안절부절못할 시간에 ‘우리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해요. 잘 모르겠다 싶으면 아이에게 경험이라는 자극을 주면서 소질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특별한 사회 권력층이 되길 바라기보다 아이가 삶의 보람을 찾는 것, 그것에 주목하면 됩니다.”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면 김웅용 교수의 첫 강의가 시작된다. 제자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 그는 먼 길을 돌아서 이제야 자기에게 꼭 맞는 자리를 찾은 듯 보였다. 범사의 소중함을 아는 그는 바로 ‘행복 천재’였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