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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이야기

연세대, 이해 측정력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

2014 기출문제로 바라본 2015 논술의 변화 

 <2014 연세대 인문계열 기출문제분석>  

연세대학교는 2014년 수시모집에서 기존의 논술 유형에 변화를 주었다. 특히 사회계열 문제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사회계열에서는 기출 유형인 삼자비교나 기준점비교의 유형이 아니라 특정 기준에 의거해 네 제시문의 순서를 정하는 문제를 출제하였다. 제시문으로 출제되던 도표나 그래프도 2014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한편 인문계열에서는 기존의 삼자비교와 견해서술 유형을 출제하였으나 이 문제들도 기존의 유형과는 달랐다.

  평가 항목의 측면에서 보면, 창의력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향은 이해분석력 측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문제의 난이도는 낮아진 셈이다. 그러나 기존 유형을 탈피한 문제를 접한 수험생들이 무척 당황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논술의 변별력은 높아졌다.

 

 [2014 연세대학교 인문계열 문제의 특징 ] 

  2014년 연세대 수시논술 인문계열 문제는 창의력보다는 추상화능력을 요구했다. <문제1>에서 고도의 추상화 능력과 비교 능력을, <문제2>에서는 답안의 구성 능력과 전개 능력을 특히 중시했다. 모든 제시문이 사례문으로 구성된 탓에 제시문 사이의 변별점을 추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시문의 분량이 줄고 유형의 난이도가 낮아진 점은 바람직해 보인다. 또한 제시문의 구성원리가 기출문제의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답안 작성에 애를 먹었다. 사전 예고 없이 문제의 유형을 바꿨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 측의 이러한 처사는 매우 불공정하며 부당하다.

  대학들이 모의논술고사를 통해 해당 학년도의 문제 유형을 미리 안내하고 수험생들이 이에 맞추어 입시 준비를 하는 것이 공정하다. 그런데 연세대학교는 2011 모의 이후 논술모의고사를 치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수험생은 연세대학교가 큰 틀에서 기출문제의 유형과 경향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 측은 예고하지 않은 채 유형에 변화를 주었다. 그러면 논술고사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시험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 측은 입시논술을 유지해야 하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술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대학들이 기출문제와 출제의도를 최대한 성실하게 발표하고 모의논술고사를 치러 수험생들에게 논술을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논술고사의 변별력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2014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고사(인문계열) 문제 및 해설] 

 제시문 (가)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책임자인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사: 피고인의 본명은 칼 아돌프 아이히만,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스 계획의 집행 책임자로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증인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증인: 제가 본 피고인은 유태인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태인 이민자들을 위해 직업학교도 세우는 등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검사: 그렇다면 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까?

 아이히만: 저는 단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것은 저의 임무였으며, 저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을 뿐입니다.

 검사: 수백만 명의 아이들과 남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아이히만: 제가 만약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나치 수용소들 중 하나였던 독일 동부의 부헨발트수용소 터에서 지난 2011년 4월 생존자들이 해방 66돌 기념식을 열고 있다. 1937~1945년 사이 이 수용소에서 유대인, 집시, 여호와의 증인신도, 동성애자 등 5만여명이 살해당했다. AFP 연합

 

 제시문 (나)

 

 포스터 속에 들어 앉아
 비둘기는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포스터 속에 오래 들어 앉아 있으면
비둘기의 습성(習性)도 왠만치는 변한다.
비둘기가 노니던 한때의 지붕마루를
나는 알고 있는데
정말이지 알고 있는데
지금은 비어 버린 집통만
비바람에 털럭이며 삭고 있을 뿐이다.
포스터 속에는
비둘기가 날아 볼 하늘이 없다.
마셔 볼 공기(空氣)가 없다.
답답하면 주리도 틀어 보지만
 그저 열없는 일
 그의 몸을 짓구겨
 누가 찢어 보아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불 속에 던져 살라 보아도
 잿가루 하나 남지 않는다.
 그는 찍어낸 포스터
 수많은 복사(複寫) 속에
 다친 데 하나 없이 들어 앉아 있으니
 차라리 죽지 못해 탈이다.

터키의 소도시 트루바의 고대 트로이성 유적지에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는 ‘트로이의 목마. 조 현 기자

  

 제시문 (다)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뤼카온은 아킬레우스에게 사로잡힌 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에게 아킬레우스가 이렇게 말한다.)

 “자. 친구여, 그대도 죽을지어다. 왜 이렇게 비탄에 빠져 있는가?

 그대보다 훨씬 훌륭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나 또한 얼마나 잘 생기고 큰지?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여신이시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누군가가 창이나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로

 나를 맞혀 싸움터에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갈

 아침이나 저녁이나 한낮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자 뤼카온은 무릎과 심장이 풀어져

 잡았던 창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날카로운 칼을 빼어

 목 옆 쇄골을 내리쳤다.

 ……[중략]……

 검은 피가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다.

 

 *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트로이아의 영웅인 헥토르에게 살해당했다.

 

 제시문 (라)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인 에버렛 워딩턴은 1955년 어느 날 어머니가 무단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용서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학자인 워딩턴이었으나 그는 사건 현장을 보고 몸서리를 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하고 소리쳤다. 그는 분노 속에서 강도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폭력적 본성과 죄성(罪性)을 깨달았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워딩턴 교수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딱한 아이들도 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그 후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깊은 고뇌와 연구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교육과 연구, 저술과 상담을 통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세를 갖도록 돕고 있다.

  

 <문제 1> ‘공감’ 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제시문 (가), (나), (다)를 읽을 수 있다. (가)의 아이히만 및 (나)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해 보이는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밑줄은 필자가 강조한 것임

 * ‘공감’(sympathy)이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본래 ‘타자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문제1>은 차이점 비교 유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감, 공감 능력과 관련하여 주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태도의 차이점을 변별적으로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 각각의 의미만을 독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제시문의 내용들이 이루고 있는 구조(제시문 구성원리)를 파악하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출제의도에 부합하는 답안을 쓸 수 있다.

  물론 모든 수험생은 자기 나름대로 제시문의 구성원리와 출제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대학 기출 문제를 통해 출제의도의 일관된 흐름이나 성향을 이해하면 좀 더 합격에 가까운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일이 언급하기 어렵지만 연세대학교는 모순이나 역설, 전복적 사고, 또는 변증법적 구조를 내포한 제시문을 즐겨 출제했다. 이를 알고 있는 학생이라면 <문제1>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수고를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

  논술의 출제의도는 추상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논제와 제시문 구성을 통해 구체화된다. 따라서 논제를 매우 꼼꼼하게 독해해야 출제위원들이 숨겨 놓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문제1> 역시 논제에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논제에서는 (가), (나)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의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라고 요구하였다. (다)는 (가), (나)와 무언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선 (다)가 (가), (나)와 대립되는 지점이 있는지 주목해 읽어야 한다. (가)와 (나)가 유사한 내용이라면 문제 해결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나 (가)와 (나)는 유사한 내용이 아니라 대립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는 타자에 공감하지 못하는 주체를 보여준다. 이는 ‘타자의 감정이나 상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혹은 받아들이지 않은 주체 중심적 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 (나)에서 시적 화자는 비둘기에 공감하고 있다. 이는 생명력을 잃은 비둘기의 비참한 상태에 주체가 감정이입을 통해 공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가)와 (나)가 매우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수험생은 (다)가 (가)와 (나)의 내용을 동시에 포함하는 역설적 구조를 취하고 있거나 변증법적으로 극복·종합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읽어야 한다.

  요컨대 (다)에서 아킬레우스의 폭력은 공감에 대한 (가)와 (나)의 일면적인 태도를 지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아킬레우스는 뤼카온의 공포, 비탄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전쟁터에서 인간이 서로 죽일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설해 뤼카온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한 아킬레우스는 죽음 앞에서 타자와 주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인식에 이르고 타자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이는 타자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의 배타적 주체, 타자에 동일화되어버린 (나)의 타자 지향적 주체와 다른 태도이다.

 

 

 

 <문제 2> ‘상상’, ‘주체’, ‘폭력’ 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공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제시문 (가), (다), (라)의 사례를 활용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문제2>는 견해 서술 유형이다. 연세대 논술에서 낯선 유형은 아니다. 하지만 제시문의 사례를 활용하라는 요구사항은 그동안의 기출문제와 다른 점이다. 수험생은 이런 생경함에도 적응해야 하지만 논제에 등장하는 ‘개념’이라는 용어에도 유의해야 한다.

  ‘주체(subject)’라는 개념이 지니는 철학적 함의를 고등학생이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체가 단순히 ‘행위의 주인공’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근대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무거운 개념이며, 철학사적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즉 ‘주체’란 사유의 중심을 의미하며 대상, 세계 인식의 담지자를 말한다는 점은 숙지해 두는 것이 좋겠다. 출제진은 <문제2>에서 ‘주체’의 개념을 실천철학의 영역에까지 확장해 다룰 것을 요구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의도를 수험생이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답안의 뒷부분에서 ‘바람직한 주체의 모습’을 언급하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상상’과 ‘폭력’이라는 개념은 ‘주체’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을 단순히 축자적(逐字的)으로 활용하거나 단어 차원에서 활용하면 곤란하다. 논제에서는 ‘용어’가 아니라 ‘개념’을 사용하라고 했으므로 답안 작성 전에 수험생은 세 개념을 나름대로 정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답안 전체에서 일관된 의미로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득력을 잃게 된다. 개념을 정의한 뒤에는 이들을 어떤 순서대로 활용할 것인지 세심하게 배치해야 하며 이때 글 전체의 논리적이고 개성적인 구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대략적인 답안의 방향을 정리해 보자.

  ‘공감’은 (가)에서 문제시되는 ‘주체’의 폭력성을 극복하는 기제가 된다. 나아가 주체와 타자의 분리·대립을 지양하여 이들이 연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주체가 타자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주체의 상상이 타자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론 연민과 동정이 (가)의 폭력적 주체의 태도보다는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주체의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나약한 주체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나)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만 머물렀다면 그 자신이 파멸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성의 끊임없는 점검과 반성을 거쳐 주체의 냉철한 인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 안의 타자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라)처럼 주체 역시 타자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때 주체의 오만함을 뛰어넘어 타자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2015학년도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연세대학교 논술은 어렵다. 지면 관계상 사회계열 문제를 다루지 못했지만 사회계열 1번 문제는 논제가 선명하지 못했다. 즉 정합성에 오류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에 오류가 있어도 수험생은 출제진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그 요구에 맞게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 수험생은 ‘을(乙)’이기 때문에 논제를 부정하거나 문제의 결함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 간혹 논제의 결함까지 극복하고 창의적인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예외사례에 해당한다. 수험생은 어떤 경우에라도 출제진의 의도 안에서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평소 독해 훈련에 힘써야 한다. 출제의도 파악은 논제와 제시문을 전체적으로 통독한 이후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제시문들이 어떤 지점에서 연결되고 충돌하는가에 주목한다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님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일 년 동안 연재했던 <수시논술 숨은 해법>은 이번 회로 마무리한다. 논술고사는 장점이 많은 시험이다. 그 의미도 크다. 앞으로도 논술이 대한민국 수험생들의 사고력을 신장하는 데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술고사의 존재 의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논술 유형이나 평가 영역에 관한 신속하고 투명한 공개도 보장되어야 한다. 만약 이 시험이 수험생에게 고통만을 준다면, 또는 대학 서열화와 계급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폐지해야 할 것이다.

  모든 수험생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