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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전시 해설 준비하며 공부법 배우고 발표 자신감도 얻어

전시 해설 준비하며 공부법 배우고 발표 자신감도 얻어

(왼쪽부터) 황인규군·문경도군·한이준양./이경민 기자·부산 수산과학관 제공
청소년 도슨트 3인을 만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전시회에서 이를 해설해 주는 전문가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도슨트가 바로 그들. 관람객과 작품의 소통을 담당하는 만큼 이들에게 전시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수다. 그런데 주요 전시회장에서 청소년들이 도슨트 역할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으로 도슨트 활동을 하며 자기계발에 나선 중·고생들을 만나봤다.

◇발표력 키우고, 자기주도공부습관까지 길러

"처음인가 두 번째 해설이었어요. 한 복지관에서 초·중학생 20여명이 왔는데 선생님이 설명을 해 보라고 권유했어요. 제 또래나 그 이상이었죠. 두 눈 딱 감고 '설명을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묻고 제가 맡은 분야인 '하얀마을'로 데리고 가 무사히 설명을 마쳤어요. 박수도 많이 받았고요. 선생님께서 '처음인데 뒷짐까지 지고 자연스럽게 아주 잘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뒷짐지는 건 제가 당황할 때 나오는 버릇인데요.(웃음)"

황인규(경기 성남 보평중 1년)군은 지난 2012년 여름방학부터 판교생태학습원에서 도슨트 활동을 하고 있다. 생태학습원에는 동식물과 자연환경, 온실에 관한 전시장이 있다. 그 중 황군은 환경오염에 관한 전시를 맡아 한달에 한번 2시간씩 봉사한다. 그는 "해설 준비를 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황군은 책,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하나의 개념을 습득할 때 이를 머릿속에서 계속 가지치는 '마인드맵' 방식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하고 있다.

황군은 "설명하는 법도 배웠다"고 덧붙였다. "학교에서 모둠 발표를 하면 거의 제가 맡아요. 다른 친구들은 발표할 때 청중의 반응이 없을까봐 두려워하는데 저는 아니거든요. 제가 발표했을 때 호응이 더 좋기도 하고요."

부산 수산과학관(이하 과학관)에서 전시해설을 맡고 있는 문경도(부산 대연고 2년)군도 도슨트 활동을 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 문군은 과학관에서 도슨트 활동을 위해 A4 수십 장 분량의 연구노트를 만들었다. 자기가 전시해야 할 분야를 직접 조사하고 친구들과 공유하니 자연스레 지식이 쌓여갔다고 한다. "저는 쉽게 볼 수 없는 수산생물이 박제돼 있는 박제실에서 해설을 해요. 처음에는 긴장해서 해설도 딱딱했을 거에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재밌고 신기한 내용이 많더라고요. 청새치는 시속 100㎞까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물고기며, 개복치는 한번에 알을 3억개 정도 낳는데 모성애가 없어 어른으로 성장하는 알은 손에 꼽힌다는 등의 내용이죠. 이렇게 설명하면 '재밌다' '이해가 쉽다'는 반응이 왔어요."

그는 고래, 지질학, 전통 어업, 해양 생물, 독도관 등 10여 개의 전체 전시실에서 해설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12월부터 매월 1회 이상 4시간씩 꾸준히 해설한 덕분이다. "전시해설은 평소에 할 수 없는 색다른 활동이라 기분전환, 스트레스 해소에 좋아요. 관람객들이 좋아하면 정말 뿌듯해요. 가만히 앉아서 과학 책을 읽는 것보다 배우는 것도 많아요."

◇꿈·진로 찾고, 성적 향상까지 이뤄

전시 디자이너가 꿈인 한이준(서울 계성여고 2년)양. 한양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자주 다녔다. 덕분에 그는 자연스레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어렴풋이 미술과 관련된 진로를 정했지만 사춘기를 보내며 여느 학생들처럼 꿈에 대한 고민이 커져 갔다.

"미술 분야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일은 화가나 작가 정도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미술 실기도 많이 생각했지만 실기 준비는 부담스러웠죠. 꿈을 접어야 하나 싶었어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다 도슨트를 경험했어요."

지난해 한양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도슨트를 시작으로 아트선재센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차례차례 활동 했다. 그는 "관람객 입장에서는 몰랐는데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박물관에도 다양한 분야의 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며 "덕분에 꿈을 전시 디자이너로 좁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양은 "전시 디자이너가 전시실 내부의 구체적인 공간 배치를 맡는 반면, 큐레이터는 그 전시 자체를 기획한다"며 전시 디자이너와 큐레이터의 차이를 설명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자 학교 생활도 충실해졌다. 한양은 "도슨트를 하며 학교 밖 활동만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건축에 관심있는 친구들 셋과 함께 건축동아리도 만들었다. 아직은 동아리원이 네 명뿐이라 모여서 건축 관련 책을 읽는 정도지만 학교의 자율동아리로 당당히 등록했다. 학교 성적도 한양의 의지에 부응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 100등이 넘었던 수학 석차가 기말고사 때에는 15등까지 올라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뭐든 열심히 하게 돼요. 저는 도슨트 활동이 그 단초였어요."

청소년 도슨트제

박물관과 미술관, 과학관 등 다양한 전시기관에서 청소년 도슨트제를 운영한다. 무료 봉사이고 실제 해설을 하기 전에는 최소 3회에서 6회 이상의 이론, 실무 교육을 받는다. 대부분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선발요건은 참여 학생의 동기와 의지다.

[박기석 맛있는공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