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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고교시절 실패 교훈 삼아 수학 가르칩니다

“고교시절 실패 교훈 삼아 수학 가르칩니다”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수학공부방 연 공무원 이형욱씨
한겨레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 8층 미소지움관에서 서대문구청 교육지원과 이형욱씨가 수학공부방을 열어 학생들에게 수학 수업을 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수학공부방 연 공무원 이형욱씨

“오늘은 기본적인 함수에 대한 정의와 의미를 살펴보고 합성함수와 역함수에 대해 배워봅시다.”

빔프로젝트에 자료를 띄우고 마이크를 든 이형욱(36)씨가 수학 강의를 하고 있다. 독특한 기교나 뛰어난 말솜씨는 아니지만 차분하게 이론을 설명해 나갔다. 이씨의 앞에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13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틈틈이 선생님의 답변에 대답하며 진지한 모습으로 수업에 집중했다. 여기까지는 영락없는 입시학원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장소는 생뚱맞게도 보건소 건물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 8층에 위치한 미소지움관. 바로 길 건너 맞은편에는 영재학원 간판이 보였다. 현재 서대문구청 교육지원과에 근무하는 이씨는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두 시간씩 수학 강의를 한다.

“2010년에 ‘청소년 자기주도학습 지원업무’를 담당하던 중 재능기부를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처음에는 동주민센터 복지과 직원에게 부탁해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소개받아 동주민센터 강의실에 수학공부방을 열었어요. 아이들이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으로 수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이었죠.”

일부에서 공무원은 무조건 ‘칼퇴근’하고 일하기 편하다는 선입견도 있다. 이씨는 “동료들이 본인 업무도 수행하기 바쁜데 재능기부까지 한다며 흠칫 놀라워하면서도 대견스럽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퇴근 뒤나 주말에 직접 수업자료를 만들었다. 시중 교재로는 그가 원하는 문답형식의 수업이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미리 읽어오면 저와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개념과 문제풀이 방식을 스스로 도출해내는 수업을 진행하려 했어요. 한데 시중에 나온 교재는 너무 어려워서 학생들이 미리 예습하기 힘듭니다. 학원에 가서 강사한테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는 교재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제가 직접 알기 쉽게 내용을 정리해서 나눠줬어요.”

딱딱한 문제풀이 반복 대신
삽화 곁들여 이야기식 설명
수업자료 모아 교재도 펴내
“퇴직 후 교육재단 만들고파”

이씨가 내주는 과제는 일주일 동안 100쪽 분량을 세 번 읽어오는 것이다. 설명을 그대로 글로 써서 분량이 길어졌지만 소단원 세 개 정도의 범위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몇번 읽다 보면 조금씩 이해될 거라 생각했다. 이씨의 수업을 듣는 중앙여고 김초은양은 “단순히 수학 공식을 암기하는 방식의 학교수업과는 다르다”며 “먼저 공식이 만들어지는 원리에 대해 깊이 설명해준다. 또 하나를 물어봐도 이 공식과 연결되는 다른 공식이나 풀이 방식까지 알려준다. 그래서 문제 풀 때 이해가 잘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씨의 원래 꿈은 교사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과 공유하는 걸 좋아했다. 대학에서 대기과학을 전공한 그는 2007년 공무원이 되기 전 3년 정도 학원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누군가에게 가르쳐주고 또 그 과정에서 저도 배우는 것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수학공부방도 열게 됐죠. 바빠서 아내가 서운해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일 하는 거니까 응원을 더 많이 해줍니다. 그 덕분에 저도 시간 날 때마다 집안일을 더 신경 쓰려고 해요.(웃음)”

그는 지난해 3월 수학공부방 수업자료로 만든 유인물을 모아 <혼자서 단숨에 깨치는 기특수학>(지성사)이란 교재까지 펴냈다. 이후 구청에서도 관내 중·고등학교에 안내문을 보내 공부방을 홍보해줬다. 그의 교재는 기존 개념정리와 문제풀이식 수학책과는 달리 다양한 삽화와 함께 이야기식으로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고등학교 때 수학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열심히 개념 외우고 문제도 여러 번 풀면서 열심히 했는데 내신 성적에 비해 수능을 망쳤어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론은,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많이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개념이 필요하고 그걸 어떤 식으로 도출해낼 것인지 아는 게 중요했어요.”

현재까지 이씨의 수업을 들은 학생은 총 230명 정도다. 그들 중 몇몇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처음 공부방에 오자마자 사전테스트를 하고 수업이 모두 끝난 뒤 똑같은 내용으로 한 번 더 테스트를 해요. 처음 30점을 맞았던 학생이 최종 테스트에서 90점까지 뛰어올라서 둘 다 놀랐어요. 다른 학생들도 평균 15~20점 정도가 올랐죠.”

한성고 강민규군은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공부방에 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용이 점점 어려워져서 학교 수업만으로는 버거웠어요. 이 수업을 들으면서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줘서 막연히 어렵던 수학에 대해 실마리가 잡히는 거 같아요.”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현재 고등학교 1학년 교재만 만들었는데 업무가 많아서 2, 3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재가 늦어지고 있다. 꾸준히 교육기부를 하다 퇴직 이후 교육재단을 만들어 바른 교육을 펼쳐보고 싶다”고 밝혔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