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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겨울왕국’ 공주는 한국인 ‘색맹’ 디자이너 작품

  • ‘겨울왕국’ 공주는 한국인 ‘색맹’ 디자이너 작품
    • 입력2014.02.18 (09:42)
    • 수정2014.02.18 (13:49)
  • 단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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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0만 관객 돌파로 애니메이션 영화는 물론, 역대 외화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하며 날마다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한국인 '색맹' 애니메이터의 손에서 탄생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주인공은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최초의 한국인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56)씨. 김 씨가 '겨울왕국' 속 주인공 자매인 안나와 엘사의 어린시절과 자매의 부모인 왕과 왕비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많은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수석 애니메이터로서는 이례적으로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색맹'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미대 진학을 꿈꿨던 김상진 씨는 고2때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 판정을 받고 미대 진학을 포기했다. 뜻과는 달리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디자인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렸던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한 광고회사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업을 했다. 하지만 곧 색맹인 사실이 들통나 회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방황을 거듭하던 김 씨는 색을 쓰지 않고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한국의 애니메이션 회사와 캐나다 소규모 TV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며 미국의 주류 애니메이션 기법을 배워나갔다. 그 후 일하던 스튜디오가 문을 닫아 프리랜서로 일하던 김상진 씨는 그동안 작업해온 작품들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디즈니에 보냈고, 결국 지난 1995년 디즈니에 입사해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터이자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의 나이 37살 때의 일이다.



      김상진 씨는 그 후 20년 동안 <라푼젤> <볼트> <공주와 개구리> <치킨 리틀> <타잔> 등 디즈니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활약했다. 이번 <겨울왕국>에서는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수석 애니메이터)를 맡아 디즈니 최초의 자매 캐릭터이자 서로 닮은 듯 다른 상반된 매력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과 자매의 부모님인 왕과 왕비를 디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주연 캐릭터들의 자연스럽고 다양한 얼굴 표정들 역시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김상진 씨는 '겨울왕국'이 특히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놀라워하며 매우 기쁘고 보람차다고 감상을 전해왔다. 소니 픽처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는 김상진 씨가 '겨울왕국' 캐릭터들의 궁금증에 대해 대답해주는 Q&A 영상을 공개했다.



      Q. 소개를 좀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상진이라고 합니다. 디즈니에서 19년째 일을 하고 있고, <겨울왕국>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어린 엘사와 안나를 디자인했고, 왕과 왕비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캐릭터들도 디자인했습니다.

      Q. 엘사와 안나는 서로 닮은 듯 다릅니다. 중점을 둔 점은?

      엘사와 안나 표정을 디자인하는데 여러가지 고민한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둘이 자매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그려야 했고, 비슷하지만 너무 똑같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엘사가 좀 더 나이가 들어보이게 하면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많은 생각과 노력을 했습니다.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엘사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안나는 과장된 모습과 표현을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Q. 엘사와 안나의 주근깨가 심한 이유는?

      네, 그건 제가 결정한 부분은 아니구요, 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가 이미 디자인을 한 상태에서 저는 좀 더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서, 제가 작업을 시작했을 땐 이미 엘사와 안나가 주근깨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약간의 주근깨가 있으면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주근깨를 넣은 것 같습니다.

      Q. 왕의 실제 모델이 월트 디즈니인가요?

      처음에 그런 생각을 왜 안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전혀 월트 디즈니를 생각하고 디자인한 건 아니고, 상상으로 만들어 낸 캐릭터입니다. 콧수염 때문에 많은 분들이 월트 디즈니를 떠올리시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Q. 캐릭터 모두 상업적 의도를 가지고 예쁘게 디자인한 것인가요?

      좋은 질문인데요, 모든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할 때 상품화되는 과정을 생각해서 ‘이 캐릭터를 예쁘고, 잘생기게 만들면 상품이 잘 팔리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스크립트를 읽고, 스토리에 맞는 캐릭터, 형태를 생각하면서 디자인합니다. 캐릭터를 단순히 외모적으로만 아름답고 잘생기게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굉장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상품화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Q.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 표정들을 디테일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드나요?

      메인 캐릭터인 경우에 캐릭터를 만드는데 1년 가까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당연히 준비하고 연구하는 기간도 굉장히 오래 걸리구요. 캐릭터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배우들이 더빙할 때 표정과 연기를 녹화해서 참고하고, 제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제 주변의 사람들이나 배우들의 표정이나 사진을 찾아서 참고하고 연구합니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 근육의 움직임 등 해부학적인 연구를 통해서 미묘하고 섬세한 표정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따로 공부합니다.

      Q.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려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역사도 오래된 스튜디오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오고, 일을 하고 싶어하는 곳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력을 그런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키우지 않는다면, 디즈니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스튜디오에서도 일을 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지름길이 없고, 어렸을 때부터 길게 보고 기초부터 실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다 보면 디즈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을 겁니다.

      Q. 꿈을 이루기 위한 마음가짐은?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제가 많은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얘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 중 하나는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꿈꾸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서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히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는 태도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Q. '겨울왕국'이 특히 한국에서 인기인데요,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한국에서 놀랄만큼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한국인 아티스트들도 아주 좋아하고 굉장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많이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