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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사교육비 줄여 아이들과 여행… 꿈이 자랐죠"

사교육비 줄여 아이들과 여행… 꿈이 자랐죠"


 

두 아이와 함께한 유럽 배낭여행기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를 펴낸 류한경(왼쪽)씨와 하은수(12·가운데)·준수(11) 남매./이신영 기자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 펴낸 류한경씨

아이와 함께 떠나는 유럽 배낭여행.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류한경(42)씨는 방학 한 달간 초등생 남매를 데리고 베네룩스 3국을 누볐다. 엄마와 두 아이의 소박하고 따뜻한 여행기 '아이들은 길에서 배운다(조선북스)'를 펴낸 류씨는 "사교육을 줄이면 더 살아있는 교육을 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사교육 대신 '산교육' 여행

아이들과의 배낭여행은 류씨의 오랜 꿈이었다. 어릴 적 가족여행을 많이 다녔던 그는 여행의 경험과 추억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주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여행 경비'. 세 사람 왕복 비행기표에 숙박비, 식비 등 대충 계산해봐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러다 영영 못 가는 거 아닐까?' 한숨만 푹푹 쉬던 어느 날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바로 남매의 '학원비'였다.

"은수와 준수는 영어나 수학, 논술 학원을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어요.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악기나 운동은 한 가지씩 배워도 공부만큼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스스로 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었어요. 남들 보낸다고 무작정 시키고 싶지도 않았고요."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영어 학원의 한 달 학원비가 최하 30만원. 두 명이니 일 년에 720만원이나 절약하고 있었던 셈이죠. '이렇게 아낀 돈을 좀 더 멋지고 가치 있는 일에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경비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죠."

큰 마음 먹고 떠나는 여행, 엄마와 남매는 석달간 함께 고민한 끝에 유럽에 있는 '베네룩스'를 목적지로 정했다.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3국을 이르는 베네룩스는 세 나라 면적을 다 합쳐도 남한보다 작다.

류씨는 "넓게 보다는 깊게 보자는 생각에 베네룩스를 택했다"고 했다. "대개 유럽 여행 간다고 하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많은 나라를 돌아보는데, 그게 얼마나 마음에 남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베네룩스는 작지만 각각 다른 개성을 갖고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어요."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2012년 여름. 방학 시작과 함께 셋은 배낭을 메고 베네룩스로 향했다. 도시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신기한 풍경 중 하나는 길에서 남의 집안이 훤히 보인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다른 집 창문을 기웃거릴 때 보지 말라고 말렸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 사람들이 집 꾸미기를 좋아해 남이 들여다보는 걸 개의치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다음부터는 나도 같이 끼어 구경했어요. 룩셈부르크에서 들렀던 수영장에는 '가족 탈의실'이 있었는데 그것도 참 기발하단 생각을 했어요."

다른 나라의 도서관과 서점들을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일정이었다. 놀이터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 3000권의 한국 책이 있는 600년 전통의 벨기에 루뱅대학교 도서관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행 중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음식'이었다. 류씨는 "열흘 정도 지나자 신호가 왔다"며 웃었다. "딱딱한 빵과 치즈만 먹다 보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어요. 시험 삼아 집에서 챙겨온 고추장을 빵에 발라 먹어봤는데 의외로 맛있었어요. 준수도 한입, 싫다던 은수도 한입. 밥 생각날 때마다 '고추장 빵'을 먹었답니다."

여행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겼다. 학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귀한 것들도 배워왔다. 차진 밥 한 그릇에 감사하는 마음, 부족하고 불편해도 참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낯가림이 심하던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은수·준수는 "여행 내내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세상에는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언어와 나이가 달라도 마음만 열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행 때 사귄 베이터, 시몬, 누라와는 말이 안 통해도 정말 재밌게 놀았거든요."

류씨는 "예전에는 '영어 공부를 왜 해야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이젠 스스로 책을 펴든다"며 기특해했다. "모든 공부에는 동기가 중요해요. 여행도 즐기고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됐으니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경쟁 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이죠."

그는 "조금만 용기 내면 누구나 우리처럼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물건 살 때 꼭 필요한지 생각해보죠? 사교육도 따져봐야 해요. 아이에게 꼭 필요한 건지 잘 따져보면 줄일 게 있을 거예요. 거기 들어가던 돈과 시간을 더 가치있게 쓰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김시원 맛있는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