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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차별하는 교사에서 소통의 대가로 거듭났다 -내 봉급의 절반은 치욕을 견딘 고통수당,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CBS 방송 프로그램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작년 가을의 일이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15분 정도 짧게 요약해서 강연해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마침 '차별'이라는 주제로 강의안을 작성하고 있던 터라 대강 그 이야기를 했더니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대화가 오고간 뒤에 강연 제목이 '차별의 대가에서 소통의 달인'으로 정해졌다.

나는 한 때 아이들을 차별하는 교사였다. 그로 인해 많은 일을 겪기도 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어둡고 불행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내 자신이 자초한 일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기 초만 해도 나랑 사이가 무척 좋았던 반인데 갑자기 수업분위기가 나빠져서 반장 아이를 교무실로 데려와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 이런 아이들 아니었잖아. 아무래도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은데 얘기해주지 않겠니? 잘못이 있다면 내가 고치려고 그래."

처음에는 그런 거 없다고 딱 잡아떼던 아이가 두 번 세 번 간절하게 묻자 뭔가 결심한 듯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애를 바라볼 때만 눈이 빛나요!"

그 애라고만 했는데도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른 걸 보면 내가 '그 애'를 편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 애가 얼굴이 유난히 예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적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교사인 나에게 가르치는 보람을 안겨주는 그런 아이였다.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솔직히 조금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억울함과는 상관없이 아이들과의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다행히도, 그날의 충격은 나로 하여금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해주었다. 학교는 차별이라는 룰로 운영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우대하고 공부를 못하거나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학생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질타가 바로 그 예다. 물론 차별은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다. 예쁘고 인성이 좋은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차별한 내 자신을 용서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었으리라.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자신을 용서하고 안 하고는 상관없이 아이들과의 사이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깊어지면서 다행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수렴해서는 안 되겠구나! 어쩌면 이런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역행하고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해주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일 수도 있겠구나!"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어떻게 하면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만날 수 있을까? 요즘도 나는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의 이름으로 출석을 부른다. 그것도 그들의 눈을 3초가량 들여다보면서. 처음에는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그랬던 것인데 차츰 재미가 붙었다. 내가 영어 선생이라 출석을 부를 때는 아이들이 영어문장으로 대답을 해야 한다. 영어 문장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그냥 "I love you!"하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일수록 나에게 사랑의 고백을 자주 하는 식이 되었다.

대다수 아이들은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호명되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나와 내밀한 소통을 즐기는 아이들도 생겼다. 이런 식으로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아이들 이름이 다 외워졌다. 또 한 달 쯤 지나자 아이들 하나하나 그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가진 인간적인 조건이 아닌 생명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좋아진 것이 기적이라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학교에는 좋아하고 싶어도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교사가 받는 봉급의 절반은 치욕을 견딘 고통수당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감정노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눈 속을 들여다보는 너무도 작고 소박한 실천이 나에게 준 값진 선물인 셈이다.

방송을 준비하면서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감정 노동자로서의 교사'라는 자각을 갖도록 해준 바로 그 장본인들이었다. 나는 마무리로 그 아이들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저는 졸업한 제자들을 우연히 길에서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어느 날인가는 천변을 산책 하다가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너무 반가워 서로 손을 잡고 껑충껑충 뛰다가 근처 벤치에 앉았습니다. 30분가량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자 저는 산책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한사코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기어이 걸어가겠다고 하니까 한 아이가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저에게 전화를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여기를 누르시면 돼요. 그럼 최근에 통화한 사람과 연결이 돼요. 제가 방금 선생님께 전화를 했으니까 제가 받을 수 있어요.

전화를 받고 저를 구하러 오겠다는 것이었지요. 나이 어린 처녀애들이 말입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감히 제가 소통의 달인이 된 양 건방을 떨었지만 솔직히 저는 아직도 학생들 앞에 쩔쩔매는 교사입니다. 그리고 차별이 구조화된 학교 현실에서 제가 한 일은 초라할 만큼이나 미미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고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했던 그 작고 소박한 행위가 저를 캄캄한 절망에서 구해내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나는 정년을 불과 2년 남짓 앞두고 있다. 첫 교단을 밟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새롭게 만날 아이들에 대한 설렘이 곧 두려움으로 변할 가능성이 100퍼센트지만 나는 아직 교사로서 행복하다. 남은 두 해를 아껴가며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