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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치마길이부터 급식방법까지…우리들이 결정해요

치마길이부터 급식방법까지…우리들이 결정해요


 


[한겨레] 경기 파주 해솔중의 학생참여

학생자치 통해 생활규정 만들고

학부모·교사와 협의해 최종결정

수학여행·체육대회 준비도 척척

자치회에 연간 예산 500만원

권한만큼 참여의식·책임감 강해

“상점 제시하자 남발이라며 제외해”


“등교 때 복장 불량에 대해 벌점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복장 점검은 계몽적 활동으로 하는 것인데, 벌점을 주면 그 취지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명예학생회에서 선도 활동을 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지 참가자가 잘 없는데요.” “그렇다면 재치 있는 패널 등을 붙여 모집하도록 합시다.”

지난 25일 낮 12시, 경기도 파주시 해솔중 학생자치회실. 17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복장 지도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교사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자치회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의견을 밝혔다. “치마 길이나 바지통 너비도 학생들이 회의를 통해 스스로 정한 거예요.” 이 학교 학생인권부장 오경희 교사가 웃으며 말했다.

2010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학생 자치’가 활발한 곳으로 이름이 높다. 2학년 김민희(14)양은 “우리는 교문 선도도 우리 스스로 서고, 학생생활규정도 다 같이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모두가 지키려고 노력한다”며 “선생님들이 우리를 많이 믿어주기 때문에, 우리가 진짜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열리는 학생자치회에선 축제, 환경미화,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 계획과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예산도 검토한다. 학생들이 행사 예산을 직접 짜겠다고 교장에게 요구해서 시작된 일이다. 학생자치회는 환경미화대회 1등 학급에 5만원, 축구대회 ‘해솔컵’ 우승은 5만원 하는 식으로 촘촘하게 계획을 세운다. 학생자치회실 운영비, 스승의 날 카네이션·카드 구입비와 행사진행비 등을 포함해 학생자치회에 배정된 연간 예산은 500여만원이다. 양식에 따라 계획서를 제출하고, 교장의 결재를 받아 집행한다. 자치회장인 2학년 나신영(14)군은 “예산이 있어서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기 수월하고, 자율 집행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1학년 동생들의 탈의실 배치 등 자치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선 해마다 학생생활규정을 바꿀 때도 학급총회와 1·2차 대의원총회를 거쳐 학생대표 6명을 뽑고 학부모와 교사들도 각각 6명, 3명의 대표를 뽑은 뒤, 서로가 마련한 시안을 놓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만든다. 오 교사는 “작년 협의 때는 교사와 학부모가 상벌점제와 관련해 상점 항목을 많이 제시했지만, 오히려 학생들이 상점 남발이 비교육적이라고 주장해 많은 부분이 제외됐다”고 말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아이들이 학급회의를 통해 여행코스를 만들어 학생회에 제출하면, 이를 반영해 날짜와 시기 등을 반별로 조정한다. 급식 방법도 학생들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해엔 학생들이 ‘급식문화 대토론회’를 열어 ‘자율질서 급식’을 실시했다. 나신영군은 “다른 학교는 점심 급식 때 반별로 먹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지만, 우리는 학년별 순서만 정해놔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며 “다른 학교 친구들이 특히 부러워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자치회장이 영양교사에게 면담을 요청해 학생들이 원하는 메뉴로 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매달 한 번 여는 대의원 총회 의결사항은 학교에서 거의 대부분 수용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제안하는 데 익숙하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한다.

이처럼 학생 자치권을 인정하는 정신은 ‘자유로운 개인들이 더불어 사는 배움의 공동체’라는 학교 비전에도 담겨 있다. 자치의 기반인 자율성과 양심을 기르기 위해 매일 ‘마음속 천사를 불러내는 아침 명상’을 하고, 중간·기말고사 때는 ‘무감독 시험’을 실시한다. 학생들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생활 외국어로 프랑스어 특성화 과정도 만들었다. 정권용 교장은 “무감독 시험이나 학생자치는 참여의식과 자부심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며 “개교 전부터 지역사회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학급회의나 토론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점을 공유하고, 학생자치의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학생들은 미숙하기만 한 존재’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아이들도 스스로 토론하고 결정한 사항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지켜봐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쌍둥이 아들 둘을 이 학교에 보내려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인근 동네로 이사를 왔다는 학부모 정경수(46·회사원)씨는 “학교에서 키운 의사소통 능력과 자치 경험이 앞으로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갔을 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파주/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