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총점 높은데 등급 떨어져… 수험생 '기현상' 에 분통

총점 높은데 등급 떨어져… 수험생 '기현상' 에 분통

한국일보|기사입력 2007-11-19 20:27 기사원문보기


작년 연고대 지원자, 등급제로 뽑았다면 30%가 합격 당락 바뀌어

변별력 없어 대학도 혼란

재수생 이모(19)군은 요즘 마음이 복잡하다. 며칠 전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른 그는 외국어(영어) 영역에서 94점을 받았다. 입시 기관들이 내놓은 등급 구분점수(96점)가 정확하다면 2점차 때문에 2등급으로 떨어질 판이다. 두 차례 모의평가에서 전 영역 1등급을 받았던 터라 내심 연세대와 고려대의 수능 우선선발 전형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제 자신할 수 없다.

이군은 “모의평가 보다 원점수는 6점이나 올랐다”며 “딱 한 문제를 실수했을 뿐인데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력 왜곡하는 등급제

‘수능 등급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가채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서 등급제의 모순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점이 높은 지원자가 등급에서는 뒤지는’ 납득하기 어려운 제도라는 것이다. 서울 K여고 한모(18) 양은 “현행 입시 구조에서는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학생들만 유리하다”며 “아무리 점수로 줄을 안 세우겠다는 취지라지만 100점을 맞은 사람과 92점을 맞은 사람의 실력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수능 등급제 실시로 합격자 30% 가량의 당락이 뒤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청솔학원평가연구소가 지난해 연세대ㆍ고려대에 모의 지원한 2,297명의 수능 성적을 토대로 올해 신설된 ‘수능 우선선발 전형’의 합격가능권을 추정한 결과, 등급제 적용 여부에 따라 10명 중 3명꼴로 자리 이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지난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지원한 A군의 경우 표준점수를 적용했을 때는 무난히 합격권에 들었으나, 등급제에서는 수리 ‘나’와 탐구 2과목에서 2등급을 받아 탈락했다. 반면 B군은 표준점수에서 A군보다 4점이나 뒤지고도 전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아 합격했다. 이런 방식으로 올해 등급제가 시행될 경우 작년이라면 합격했을 45명의 수험생 가운데 14명(31.1%)은 우선선발 전형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등급제에 따른 ‘실력 왜곡’ 현상은 모의평가 수치에서도 확인됐다. 6월 치러진 모의평가 성적 표본조사 결과, 수능 영역별 평균 등급에 따른 원점수(4개 영역 500점 만점) 차이는 최대 83점, 평균 55점에 달했다. 전 영역에서 똑같이 1등급을 받은 최상위권(인문계)이라도 점수 분포는 446점에서 494점까지 큰 편차를 보여 등급에 따른 유ㆍ불리가 심각했다.

변별력 확보 비상

대학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상위권 대학들은 ‘내신 무력화’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능 등급간 격차 확대 ▦영역별 가산점 차등화 등을 통해 변별력 확보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비슷한 등급의 지원자가 대거 몰릴 경우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논술 등 대학별고사가 사실상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수능 등급제를 적용해 지난해 합격자를 재산출해 보니 20% 가까이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밀리미터(㎜) 자로 뽑아야 할 것을 미터(m) 자로 뽑도록 했으니, 등급제 도입을 결정할 때부터 혼란은 예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선해 성균관대 교수는 “등급제 체제에서 최상위권은 실력차이를 가늠하기 힘들고, 중위권은 점수대 폭이 넓어 학교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진짜 실력과 무관하게 얼마나 배짱 지원하느냐에 따라 대학과 학과가 결정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