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계획도 공부도 스스로…“힘들지만 자신감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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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에 진학하지 않은 채 ‘언스쿨링’을 하고 있는 정채건군이 어머니 김주희씨와 손을 맞대 하트 모양을 그려 보이고 있다. 거실 한쪽 벽면에 5명의 가족이 각자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적어놓은 벽보가 보인다. |
[사교육 탈출] 정채건군의 ‘언스쿨링’ 도전기
“‘난 대학 가서 다 할 거야’란 말이 싫어요. 지금 못할 게 뭐가 있나요?” 추석 며칠 전, 고교 2년 또래 친구들이 입시학원에 있을 시간에 ‘착한 참치캔을 사자’며 환경운동 캠페인에 참여했던 정채건(18)군이다. 중학교 졸업 뒤 안식학년을 거쳐 현재 ‘언스쿨링’(Unschooling)을 하고 있다. 언스쿨링이란 학생이 그날 무엇을 배울 건지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교육방식이다. 부모가 집에서 교사 구실을 대신하는 홈스쿨링과는 차이가 있다. 무모한 교육경쟁 속에서 내 아이를 남과 똑같이 줄 세우고 싶지 않았던 채건군의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잠시 옆으로 비켜서 있기를 택했다고 한다. 그 비켜선 시간 속에서 그는 매일 무엇을 배우고 과연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 걸까. 고교 진학 대신 언스쿨링을 선택한 채건군과 어머니 김주희씨를 지난 8일 인천에서 만나봤다. 안식학년과 언스쿨링을 왜 시작하게 되었나? 김주희(이하 김) “학교 제도나 체제를 반대해서 시작한 건 아니다. 주변 아이들이 사교육이나 성적에 대한 압박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걸 많이 봤다. 우리 부부는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사려 깊은 아이로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아이들이 힘들어할 땐 언제든 1년 정도 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자고 미리 의논을 해뒀다. 안식학년은 뭔가를 꼭 해야 한다는 것보다 그냥 규모 있게 논다는 개념이었다. 살다 보면 휴학이나 재수도 하는데 조금 먼저 1년을 쉬어서 아이가 더 다져진다면 그게 더 나을 수 있을 성싶었다. 중학교 3학년 10월께 졸업 뒤 1년쯤 안식학년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선택은 아이가 했다.” 중학교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김“그런 건 아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인 두레자연중학교에 다녔는데 생활을 잘했다. 부모와 떨어져 대안학교에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해본 게 안식학년과 언스쿨링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됐을 거다. ” 보통 안식학년이 끝나면 학교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김“안식학년 중이던 작년 8월쯤 아이가 먼저 언스쿨링을 제안해 왔다. 1년쯤 쉬고 학교로 돌아가는 걸로 알고 있던 터라 솔직히 고민이 안 될 수 없었다. 아이가 게을러지지 않고 생활을 스스로 잘 조절해나가는지 좀더 지켜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그래서 답을 주지 않고 4개월 정도 더 관찰했는데 나름대로 생활을 흐트러뜨리지 않아서 12월께 언스쿨링을 해보자고 동의했다.” 정채건(이하 정) “제가 먼저 언스쿨링 제안을 했는데 부모님이 답을 안 주셔서 그냥 고교에 진학하는 걸로 생각했다. 할 수 없이 고입 원서를 쓰려고 했는데 원서 쓰는 당일에야 언스쿨링을 허락받았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 처음엔 왜 굳이 고교에 가지 않으려 하느냐며 대부분 언스쿨링을 반대하셨다. 이제는 모두 잘했다고 격려해주신다.” 안식학년과 언스쿨링을 하면서 어떤 일들을 하나? 김“홈스쿨링이 아니기 때문에 좀 쉬면서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일과 부모가 보기에 아이에게 부족해 보이는 공부 한 가지, 이렇게 딱 두 가지만 처음에 정해 두고, 나머지는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했다. ” 정“이것저것 많이 손을 대보고 싶었는데, 사실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게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거였다.(웃음) 내가 영어를 잘 못했으니까, 부모님은 영어 공부를 원하셨다. 문법처럼 딱딱한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재미나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어회화를 선택했다. 꾸준히 날마다 하는 것은 이렇게 딱 두 가지였고, 지금까지 쭉 해 오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진다. 운동으로 살을 15㎏ 정도 뺐다. 우연한 계기로 그린피스 자원활동을 시작했고,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이라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에서 청소년 인권에 관한 글을 쓰는 기자단 활동도 한다. 몇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도 벌고 있다.”
정채건군이 ‘세이브더칠드런’이란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운영하는 청소년 인권 기자단 임명장을 내보이고 있다. |
사려 깊은 아이로 키우자’
안식학년 거친 뒤 고민끝 결단
주3일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원, 운동, 독서 등 병행
“자기 컨트롤엔 시간 걸리지만
내가 변해가는 모습 느껴질 때
참 잘했다는 생각 들어요” 구체적으로 하루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정“일주일에 3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에는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고 근처 학교에서 운동도 한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나 남는 시간엔 집에서 책 읽고 공부하고 그냥 쉬기도 한다. 일요일엔 교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고 틈나는 대로 홍대 앞 카페 공연도 보러 다닌다.” 언스쿨링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정“갑자기 시간이 조금 남을 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때 생각이 많아진다. 가족들은 아침에 다 어디로들 나가는데 집에 혼자 남아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땐 계획을 세워서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수밖에 없더라.(웃음) 또래와 함께할 수 있는 게 적어서 좀 외롭다. 밖에 나가면 온종일 어른들을 상대해야 한다. 만나는 어른마다 왜 학교에 안 다니는지 이유를 많이 물어본다. 처음에는 놀라는데 설명을 듣고 나서는 주로 기특하다거나 대단하다면서 칭찬을 한다. 근데 어른들의 칭찬이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 김“부모인 우리도 아이와 비슷한 부담을 느낀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라고 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아무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더라. 큰아이는 일반 고교를 졸업했는데 둘을 비교해보면 별로 다르지 않다. 채건이는 상대적으로 사고가 자유롭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풍성한 편이다.” 나중에 언스쿨링을 후회하지 않을까? 정“내가 변하는 모습을 스스로 느낄 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살이 빠진 내 모습이 좋다.(웃음) 영어를 정말 싫어했는데 이제는 자막 없이도 영화를 보고 그린피스에서도 외국인과 대화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내가 하게 돼 즐겁다. 처음부터 큰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닌데 꾸준히 해나가다 보니 뭔가가 조금씩 쌓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힘이 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 혼자 뭔가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또 바뀌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힘들어도 계속 갈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학교에 다니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맞다. 하고 싶은 공부나 과외 활동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안식학년을 보내면서 학교의 틀에서 가는 것보다 내 틀에서 가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그런 활동들까지 하려면 좀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거다. 친구들이 하는 말 중에 ‘나는 대학 가서 다 할 거야’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 친구들이 대학 가서 다 해보고 싶다는 일들을 들어보면 기껏 자전거 여행을 한다든가 홍대 앞에 가서 공연을 본다든가 그런 것들인데 그걸 지금이라고 못할 게 있나. 친구들이 그런 말 하면 ‘그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야’라면서 데려가 준다.(웃음) 친구들이 대학 가면 하고 싶다는 일들이 생각보다 넓지 않더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친구들에게는 어른이 되어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친구들한테 사회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김“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 그리고 정해진 곳만 갈 수 있는 작은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들의 통을 크게 벌려 줄 수 있는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은 참아라, 이것만 하면 그담엔 뭐든 할 수 있다’고 계속 가르치니까 아이들도 겁이 나는 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생각을 부모님이나 선생님 누구도 지지해 주지 않으니까. ‘괜찮아 한번 해봐’, 이렇게 떠밀어서 내보낼 수 있는 것도 서로 겁을 내고 움츠러들고, ‘그냥 3년만 참아’, 그러고 있는 거다.” 누군가 이렇게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정“학교에 다닐 때와 달리 본인이 일정과 할 일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자기를 컨트롤할 수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가족 모두가 그런 과정을 참고 기다려 주실 수 있어야만 가능할 거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건 환상을 품고 있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학교 안 가고 하고 싶은 걸 한다고 하면 되게 행복하고 매일 즐겁고 새롭고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엔 편안하니까 좀 좋지만 ‘내가 뭐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 학교 가는 애들을 보면 내가 저기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야 할 고민은 학교 다니는 아이들보다 어쩌면 더 많다.” 김“가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문화를 만들고 시작해야 힘들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갈 수 있다. 남의 케이스 따라 무작정 따라 하는 건 절대 반대한다. 그 집에 맞는 것과 그 아이에게 부족한 것을 고민하고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 ” 가정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이 있나? 김“특별한 걸 한 것은 아니고, 서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다른 가족들이 항상 함께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 다 함께 산에 가고,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하는 엄마를 따라 다 함께 이색카페를 찾아간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어릴 때부터 많이 만들었다. 또 아이들의 요구에 항상 민감하게 귀를 열어두고 그걸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한다. 채건이가 어릴 때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잡지를 구독해 줬더니 아이는 그 안에 있는 온갖 정보들을 섭렵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더라. 그런 일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뭔가를 행동하게 하는 추진력과 동력이 되는 것 같다. ” 정“세상을 살면서 뭐든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것이 가족들이랑 함께하는 거 같다. 내가 엄마 손잡고 어디를 가봤으면 나중에도 내가 다시 혼자 가거나 누구를 데리고 가는 것도 쉽고 편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족들에게 지지받았던 경험도 되게 중요한 듯하다.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찾아서 갈 수 있고 경험하고 거기에서 또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난 야구를 안 좋아해도 야구를 좋아하는 동생을 따라서 야구장에 함께 가고, 동생이 신나게 해설해 주는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준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정“올 초에 하겠다고 마음먹고 두 달 정도 준비해서 고교졸업 자격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영어회화와 운동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거고 나머지는 또 그때마다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갈 작정이다. 대학에 진학을 할 생각인데 구체적인 진로를 확실하게 정한 건 아니다. 지금은 일단 좀 천천히 가고 싶다.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한다. 음악 공연이나 페스티벌 같은 것을 기획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페스티벌을 기획해 보고 싶다.” 김 “아이들에게 진로나 하고 싶은 일은 늘 바뀔 수 있고, 언제라도 그렸다 지웠다 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아이들에게 미리 ‘나는 무엇이 될 거야’라든가 ‘네가 좋아하는 것을 빨리 찾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고 싶을 때가 되면 하라고 한다. ” 어른들의 눈에는 어려 보이기만 한 채건이는 무모한 경쟁에서 한 걸음 비켜선 그 자리에서 오히려 자기만의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한 말처럼, 내 아이의 ‘성공할(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다음으로 유보해 놓은 소소한 행복의 목록들 중에서 ‘지금 못할게’ 정말 있는 걸까? 오히려 그 소소한 행복의 목록들이 아이들의 미래에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