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떨어져도 학원 대신 제 스스로 부딪쳐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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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이 학생이 서울 중구 정동의 한 북카페에서 직접 만들어 쓰고 있는 ‘핸드 메이드 플래너’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어머니 최승연씨.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
[사교육 탈출] 사교육 없이 특목고 간 김태이양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시내 한 북카페로 가는 길이다. 중학 시절 동안 방송댄스를 즐겨 배우고 클래식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으면서도, 학과 사교육 한번 받지 않은 채 외고생이 되었다는 김태이 학생, 어머니 최승연씨와 잡은 약속이다. 사교육 안 받고도 특목고 갈 수 있다며 태이처럼 ‘엄친딸’이 되는 비법을 소개하고 싶은 건 아닌지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있는 내 마음속 뻔한 사심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카페 탁자 위에는 태이가 초등학교 때 가족들과 여행하고 나서 만든 소책자들, 중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해 고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기록해 온 플래너, 편집부원으로 활동하며 만든 교지가 놓여 있었다. 아이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준’ 엄마, 최승연씨의 생각이 제일 궁금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의 원칙이 늘 분명했어요. ‘가지는 쳐 주되, 분재는 만들지 말자’는 거였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의 의견이고, 아이의 생각이 얼마나 절실한지 존중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힘들어할 때 옆에서 격려하며 위로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지요. 설령 아이가 실패와 좌절을 겪는다 해도 그 삶은 아이의 몫이지 부모가 옆에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말에 저도 동감했어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스스로 공부를 잘 해나가는 아이들 부모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준다’. 아이를 믿지 않고서는 기다려줄 도리가 없고, 기다림과 믿음 속에 자란 아이는 어느덧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태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어느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 만들기’ 체험학습을 하고 나서 책 만드는 재미에 쏙 빠지더니, 방학 때마다 여행을 다녀오고 브로슈어 형태의 작은 책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주에서 지리산까지’ 남도여행을 다녀와서도, 가족끼리 외국여행을 다녀와서도 책자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 학습지를 포함한 그 어떤 사교육도 받지 않았던 건 남편의 교육관도 컸지만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사교육을 받지 않으니 수업시간에 더 집중한다는 담임선생님 말씀이 그냥 하시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초등학교 시절엔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학원 보낸다 생각하고 매달 꾸준히 모은 돈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외국여행도 갔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에서 좌절이 찾아왔다. 수학 점수를 받아들고 우는 아이 앞에서 최씨는 주변 엄마들의 경고가 맞았구나 싶어 암담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해보겠다고 하는 아이를 불안하지만 믿기로 했다. 굳이 혼자 가는 길을 택한 아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수학은 공부 시간에 비해 점수가 너무 안 좋아 스트레스가 컸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혼자 스스로 해왔는데, 이제 와서 학원에 가면 그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거든요. 혼자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친구들한테 물어보곤 했어요.” 그렇게 혼자 공부한다고 성적이 금세 오르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와 엄마가 벽에 부딪힌 적은 없었을까 궁금했다. “태이는 수학문제가 안 풀리면 오래 고민하는 편인데, 학원은 숙제도 많고 고민할 시간을 안 주잖아요. 아이가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다시 낮은 성적이 나왔을 땐 자신감을 상실한 것처럼 보여서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서 학원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래도 스스로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흔들리고 불안했던 것은 오히려 엄마였나 봐요. 한번은 태이가 수학 문제집의 심화단계 몇 문제만 틀리고 모든 문제를 거의 다 맞았는데도 시험 점수가 낮게 나오기에, 유심히 살펴보니 앞에 나온 개념의 유형 설명과 예제를 보면서 그대로 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을 가리고 풀어보라고 했더니 100점을 맞기도 했어요.” “아, 맞다. 중학교 2학년 때 그런 적도 있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시험문제가 쉬웠어요.(웃음)” “하루 할 일 정해 꼭 지키자” 다짐중2때부터 4년째 플래너 작성
일과 후 자체 평가하고 느낌 적어 부모와 어릴 적 다양한 체험
스스로 길 찾는 데 큰 도움
“즐겁게 보낸 어린 시절
부모님께 제일 고마운 점이죠” “가지는 쳐 주되 분재는 만들지 말자”
부모 자녀교육 원칙 끝까지 지켜 태이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하루에 꼭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메모를 기록하며 ‘핸드 메이드 플래너’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과물로 만들기 좋아하는 적성을 발휘해 처음엔 하루 일과 형식을 표로 만들어 매번 프린트해 썼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자기한테 가장 알맞은 형태로 간소화시켰다. 학교에 가면 그날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대로 목록을 만들고, 일과 후 그 일을 소화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기록하면서, 제대로 진행했는지 ○, △, ×로 평가한다. 제일 아래 칸에는 집에 돌아와 하루의 느낌과 반성을 간단하게 적는데, 요즘은 그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다고 한다. 입시가 멀지 않은 태이는 학과 공부로 바쁘지만, 용돈을 모아서라도 꼭 가고 싶은 록 페스티벌 티켓은 사고야 만다. 딸이 고교생활이 아니라 대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부모는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성적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 아이를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게 되고, 그런 여유 속에서 아이도 자기 탐구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중요하지, 아이가 지금 무슨 활동을 하느냐, 어떤 공부법으로 하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아이가 동일하게 1등을 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아이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거죠.” 자기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태이의 꿈은 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멋진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 교수님을 보고 로봇공학자를 꿈꾸었다가, 중학생이 되고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적성을 확인하면서 방송작가를 꿈꿨고, 지금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 피디가 되고 싶어한다. 다양한 체험을 쌓은 덕분인지 태이는 직접 부딪치며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터득했다. 올해 교지 편집팀장을 맡으면서 ‘모델계의 아이돌’ 안재현을 섭외하기 위해 소속사에 직접 메일을 보냈고 성사시켰다.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을 진짜 즐겁게 보낼 수 있었거든요. 그 점을 제일 고맙게 생각해요. 친구들이 초등학교 때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주변에 ‘나는 어린 시절을 왜 그렇게 공부만 하면서 보냈을까’ 하고 후회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요즘 핸드폰 들고 학원 가는 초딩들 보면 ‘아, 불쌍해.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중등까지도 놀아야 하는데!’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해요. 외고 왔으니까 하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정작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 중학교 때만큼도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공부가 그냥 기계적으로 ‘습관’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요.” 일반 학부모나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특목고 학생, 그 학생 한 사람의 실종된 어린 시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좋은 대학을 가기만 하면, 그 모든 것들이 보상되는 것일까.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초, 중등 시절을 보낸 태이의 말이 이어졌다. “특히 제가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부모님께서 크게 반대하지 않으시고 허락해주신 점이 제일 좋았어요. 뭘 배우는 게 아니라도 어딜 가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씀드리면 좀더 생각해보라고 시간을 주시고, 그래도 제가 절실하게 원하는 이유를 설명해 드리면 대부분 수용해주셨거든요. 다른 친구들 부모님은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절 믿고 허락해주신 점을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어요.” 역설적인 말이지만, 태이의 친구들은 부모님이 하시는 말 중에 ‘나는 너를 믿어. 넌 잘할 거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런 격려도 한두 번이지, 너무 자주 들으면 오히려 부담만 늘어난다고 한다. 부모가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 아이들에게 애써 강조하는 ‘난 널 믿는다’는 말은 저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면 되는 것이었다. 정말 내 아이를 믿는다면, 열다섯살짜리 딸아이가 요즘 흥얼거리는 지드래곤의 ‘쿠데타’를 엄마랑 같이 들어보자고 슬쩍 말을 걸어 보거나, 저녁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태이가 전해준 작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힌트를 얻고 돌아오는 길, 학원 다니지 않고 공부 잘하는 방법이 궁금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채송아/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ddalkibus@gmail.com
계획표 작성 5원칙 따라 해보세요 자기주도학습 어떻게 시작할까 자기주도학습을 초등학교 때 적용하기란 쉽지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의 생활 및 학습 습관을 서서히 잡아주고 격려해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습관의 힘을 이용해 중학교 때는 자신만의 학습법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의 시도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은 고등학교 이후부터 이뤄질 것입니다. 자기주도학습을 하기 위해 계획부터 세우기 시작하는데, 이때 아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의 강요로 시작하면 또다른 숙제가 될 뿐 오히려 자기주도성을 해치게 됩니다. 플래너 작성을 시도할 때 다음 다섯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첫째, 아이의 성향에 따라 플래너 작성이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므로 플래너 작성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둘째, 시중에 판매하는 플래너 양식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의 플래너를 경험해보고 자신만의 양식을 찾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처음 시작하는 경우 완벽하게 플래너를 사용하기보다는 작은 단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 계획부터 천천히 시작해보고, 한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기보다 ‘한 걸음씩’ 경험하도록 합니다. 넷째, 아이가 스스로 해보겠다고 해도 오래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작심삼일’ 운운하며 면박을 주지 않고, 꾸준함이 쉽지 않음을 인정해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세요. 마지막으로, 플래너 작성이 자기주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향에 따라 플래너 작성이 자기주도성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 플래너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