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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국어 고수들, 비결은…

국어 고수들, 비결은…
한겨레 | 기사입력 2007-10-07 18:00 | 최종수정 2007-10-07 18:21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커버스토리 /

‘무엇이 국어 능력을 키우는가?’

청소년의 국어 실력이 매년 하향세다. 교육부가 발표한 2003년~2005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분석 결과를 보면, 초등 6학년의 국어 우수학력자 비율은 2003년 22.8%, 2004년 19.5%, 2005년 16.1%로 해마다 줄고 있다. 같은 해 영어 우수학력자 비율은 33.1%, 46.6%, 59.2%로 늘었다. 중학교 3학년의 경우 수학(13.5%, 16.9%, 19.5%)과 영어(15.7%, 18.6%, 20.1%) 성취도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국어는 2004년 14.1%였던 것이 2005년에 12.8%로 떨어졌다.

영어 학습법이 넘쳐나지만 국어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쉽게 찾기 어려운 현실 탓일까. <함께하는 교육>이 국어 학습법의 공백을 메꾸고자 한국방송(KBS) 한국어능력시험 성인 1등급 10명과 청소년 1등급 16명을 심층 조사했다. 한국방송 한국어능력시험은 2005년부터 시행돼 왔으며 1등급은 매회 14~15명 꼴로 배출된다.

국어 실력의 뿌리는 역시 ‘독서’였다. ‘독서 습관’은 26명 모두가 공통적으로 꼽은 고득점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독서는 뭔가 달랐다.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관심을 필요로 하는 ‘대하소설’류의 독서에 강했다. 신유정 양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토지> 등을 읽었는데 그런 무지막지한 열정이 국어 실력의 토대가 된 것 같다”며 “지금도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이면 무조건 독파해 내겠다는 정복욕에 불타오른다”고 했다. 같은 내용의 다른 판본을 비교하며 읽거나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은 것도 국어 실력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고진호 군은 <삼국지>를 좋아해 여러 판본을 비교하며 수차례 읽었다고 했다.

특정한 분야의 책을 ‘편식’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김현아 양은 “중학교 때 판타지 소설에 빠져 사는 바람에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고 했다. 방학 때 김양은 하루에 5~6권의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고 한다. 고진호군은 “인문계열로 진학할 생각이지만 독서는 각종 잡지, 역사, 과학, 철학, 사회과학 분야 서적이나 대학 교재까지 폭넓게 한다”고 했다.


장르불문 ‘닥치는 대로’ 읽지만

삼국지 등 대하소설 특히 즐겨

생활속 잘못된 말 ‘교정습관’도

주목되는 점은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국어 생활과 관련해 ‘교정 습관’을 품고 있다는 점이었다. 성인 10명 중 4명, 청소년 16명 중 8명이 표준어 규정이나 맞춤법에 어긋나는 말이나 글을 고치려는 습관이 있다고 답했다. 잘못된 말이나 글에 대해 다른 사람에 비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김영근 씨는 “가게에 붙여 놓은 메모의 맞춤법을 늘 검사하고 대화 도중 친구들이 단어를 잘못 사용하면 직접 고쳐준다”고 했다. 지소영 양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잘못된 어휘나 비문법적 활용이 나오는 지 잘 살피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휘력이 느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일상 생활에 국어 ‘학습’이 녹아든 셈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등 다양한 국어 관련 활동을 ‘습관화’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조기교육’이 손꼽혔다. 초등학교 시절 ‘한자학습’이 도움이 됐다고 답한 것이 8명(30%)이었다. 이은호 군은 “초등학교 높은학년 때 한문서당에서 <사자소학>과 <계몽편>을 공부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9명(34%)의 응답자는 어릴 때 부모님의 구실을 특히 중요하게 언급했다. 송현민 군은 “아버지가 만화책이나 판타지 소설도 읽는 주체에 따라 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형과 내가 언제든 책을 빌려 볼 수 있도록 근처 만화대여점에 선금을 맡겨 놓으셨다”고 했다. 신민기 씨의 아버지는 성적이 떨어질 때보다는 오히려 일기를 쓰지 않은 날에 매를 들었다고 한다. 일기 쓰기만큼은 습관이 되도록 가르쳤다는 얘기다. 지소영 양의 부모님은 ‘네가 이 책을 읽고 소외된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등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속지에 적어 줬다고 했다.

청소년 응답자들은 이렇게 쌓은 국어 실력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수능 언어영역에서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1등급을 받는다고 했다. 이다영 양은 “언어영역 성적은 꾸준히 1등급으로 유지하고 있어서 다른 교과 공부할 시간이 넉넉하다”고 했다.

“저 정말 이번에 2학기 수시 지원하면서 한이 맺혔어요. 내신이고 수능이고 정말 못하지만 외국어 하나로 소위 명문대를 가는 애들이 속속 생기잖아요. 그런데 국어를 무시하는 건지 국어만으로는 갈 대학이 없어요. 이건 좀 아니다 싶어요.” 2008년 수시 2학기 전형에서 영어 관련 어학특기자를 뽑는 21곳의 대학은 1627명을 뽑지만 한국어 능력 시험을 전형요소로 활용하는 건 고작 두 곳 뿐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