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미 최고 ‘대입 자소서’는 스펙 아닌 삶을 담았다

미 최고 ‘대입 자소서’는 스펙 아닌 삶을 담았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ㆍ뉴욕타임스, 지원자 투고글 231건 중 4편 선정
ㆍ“집안의 첫 대학생…두렵다” 등 진솔한 경험담

매년 미국의 고3 학생들은 대학 입학을 위한 일종의 자기소개서인 ‘에세이’를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한국의 취업준비생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뚫기 위해 ‘자소서’ 쓰기에 골몰하는 것과 비슷하다. 에세이는 입시의 여러 심사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입학 여부는 물론이고 장학금 등 입학 조건을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선정한 ‘올해의 최고 대입 에세이’들은 얼핏 보기엔 평범하고 솔직하다. 해외여행, 경시대회 입상, 자격증 같은 스펙을 줄줄이 나열하거나 명망 있는 인물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대신에 삶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경험을 담백하게 서술했다. 뉴욕타임스는 매년 지원자들에게서 에세이를 투고받아 최고의 글을 선정한다. 올해는 231건 중 4건을 뽑아 소개했다.

최우수작에는 올가을 버지니아공과대학에 입학하는 사라 벤슨의 글이 뽑혔다. 벤슨은 가난 탓에 공예가의 꿈을 포기한 아버지에 얽힌 추억을 풀어냈다. “여섯 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을 물었다. 나는 조지아 오키프 같은 예술가라고 답했다.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가 몇 달 동안 작품 한 점 팔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으므로.” 이 에세이를 검토한 랄프 존슨 전 브라운대 입학사정관은 “경제적 고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글”이라고 평했다.

뉴욕의 도미니카 이민자 가정 출신인 이사벨라 드시몬은 “돈을 아끼는 행위,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담대함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남들과 다른 점”이라고 적었다. 드시몬은 어렸을 때부터 놀이를 하듯 근검절약을 익혔고, 물질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견뎌내면서 감사와 회복탄력성, 노력의 가치를 내면화했다고 고백했다.

조셉 리지오는 식구들 중에서 처음으로 대학 문을 두드렸다. 그는 집안에서 ‘튀는 사람’이 된 것,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부모와 조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짊어지게 된 것에 대한 부담을 털어놓으며 “솔직히 말해 두렵다”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대학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공부하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자부심이 더 크다”고 적었다.

에리카 마이스터는 미시간의 부유한 교외 지역 노스빌에서 중산층으로 자랐다. “노스빌에서는 아버지들의 돈과 인맥이면 모두 해결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개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판한 그는 한 동급생에게 AP 과목(미국 고교에서 제공되는 대학 과정) 시험 응시 계획을 물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비싼 응시료를 내지 못할 형편임을 알면서도, 친구에게 응시할 것이냐 물었다는 것이다. 마이스터는 “나 역시 노스빌을 잠식한 질병, 내가 그토록 싫어한 경솔함에 감염됐던 것”이라며 대학에 진학해 노스빌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