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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서울대 논술폐지, 박근혜 정부 눈치보기

서울대 논술폐지, 박근혜 정부 눈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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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혁제 기자]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A씨는 공부 잘하는 아들 키운 재미로 산다. 그리고 은근히 아들이 서울대에 들어가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2012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서울대 입시에 맞추어 입시전략을 세웠다. 2013학년도에는 수시가 확대되어 수능보다는 내신과 비교과활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정시에서는 논술이 합격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A씨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주말을 이용하여 논술 과외를 시켜왔다. 그리고 글재주가 있었던 아들은 논술실력이 부쩍 향상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난 14일 서울대의 2015학년도 입시기본계획안 발표를 접한 A씨는 충격에 빠졌다. 지역균형선발을 내심 기대했지만 현재 내신 등급상 보통 문과·이과 전교 1등에게만 주어지는 추천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오로지 수능과 논술로 합격자를 결정하는 정시를 기대했던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의 강점인 논술을 폐지한다고 하니 이제는 서울대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울분을 토했다. 그동안 들어간 논술 과외비며, 천금 같은 시간을 생각하니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내년에 고3인데 전년도 11월에 갑자기 대입정책을 바꿀 수 있냐고 정부의 대입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현행 고등교육법을 살펴보면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이 발표한 대입 개정안은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말장난에 불과한 1년 6개월 전 예고제

다음 연도 대학입학전형과 관련 일정은 대학교육협의회(아래 대교협)가 8월경에 대입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대학들은 대교협의 기본계획에 맞추어 다음 학년도 대입전형 주요사항을 확정하여 11월에 대교협에 제출한다.

대교협에서는 이렇게 제출받은 대학별 주요사항을 종합하여 다음 연도 1월에 '대학입학 전형계획 주요사항'을 확정 발표한다. 이와 같이 대교협과 대학들이 기본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2조와 제33조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2조와 33조는 다음과 같다.

제32조(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
② 학교협의체가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을 정하는 경우에는 이를 매 입학연도의 전(前)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의 6개월 전까지 공표하여야 한다.
제33조(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의 수립 등)
① 대학의 장은 법 제34조 제1항에 따라 학생을 선발함에 있어 입학전형을 공정하게 시행하고 응시생에게 입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수립하여 매 입학연도의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의 3개월 전까지 공표하여야 한다.

위 32조와 33조의 취지는 무엇보다도 수험생들에게 대입에 관한 주요정보를 미리 제공하여 대입 주요 방안이 갑작스럽게 바뀜으로써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32조에서 대교협은 1년 6개월 전에, 33조에서 각 대학은 1년 3개월 전에 주요사항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어 수험생들이 최소한 1년 전에 원하는 대학의 전형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이 1년 3개월 전이지 실제는 고3에 올라가기 3개월 전에야 대학들의 변경사항을 알게 된다. 고등교육법의 기준일을 살펴보면 현 고2 학생의 경우 대학 입학년도는 2015학년도이고 그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은 2014년 3월 1일이다. 그러므로 2014년 3월 1일의 3개월 전인 올 11월까지만 발표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 입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게임의 룰도 모르는 채 있다가 결승점에 이르러서야 호루라기 신호에 맞추어 뛰는 꼴이다.

대학들 권력과 돈 앞에 조급함 보여

서울대를 시작으로 각 대학들이 큰 폭의 대입 변경안을 발표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입간소화 방안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정권이 바뀌면 입시도 바뀐다는 과거 전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 대학들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권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경쟁하듯 정권에 화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다. 당시 고교 현장에선 준비도 안 된 입학사정관제를 정권의 요구에 대학들은 경쟁하듯 받아들였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을 성과주의에 급급한 정권과 권력의 힘 앞에 자기주도성을 상실한 대학들이 결합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반드시 돈이 따라왔다. 정권들은 대학을 길들이기 위해서 지원금을 동원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의 대표 교육정책인 입학사정관제를 빠르게 도입하기 위해서 '입학사정관제지원사업'을 통해 매년 수백억을 대학들에게 지원하였다(2012년 391억 원). 각 대학들은 이 돈을 타기 위해 경쟁적으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각 대학들의 조치는 박근혜 정부가 유도하는 대입간소화방안에 따른 '공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함으로 보인다. 또한 다양한 대학지원금을 타기 위해서는 정권의 눈 밖에 나지 않아야 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피해자는 발생하지 않아야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대입 정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각 정권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다양한 입시정책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그 취지는 최대한 많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이 역력해 보였다. 입학사정관제 경우에도 수능 위주의 순위 중심에서 벗어나 공교육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한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획기적인 방안이었고 내심 기대도 컸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대입간소화 방안도 복잡한 입시정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논술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서울대의 논술 폐지는 학부모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대입정책에 관해서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특히 신설된 제도와 달리 기존의 제도를 폐지할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서울대 등 속칭 주요대학들뿐 아니라 지역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일부 지역대학의 2015학년도 입시안을 보면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국립 목포대는 지난 6년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시행했던 입학사정관제를 당장 내년부터 폐지하기로 결정하여 고1 때부터 해당 대학을 목표로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했던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설사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더라도 현 고1까지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백년은 아니더라도 3년 뒤는 내다볼 수 있는 입시정책이 조속히 실행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