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동영상 번역하고 친구 강의도 제작해요”
지난 4일 학교 방송반에 모인 유진우(왼쪽부터), 유경민, 구찬모, 정근영 학생. 이들은 외국 동영상 강의 사이트를 번역하거나 교내 학생들을 강사로 모집해 짧은 동영상 강의를 찍어 올리는 지식 나눔 사이트인 ‘오픈놀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
[함께하는 교육] 교육 정보
고등학생들이 만든 ‘오픈놀리지’
경기도 가평군의 청심국제고 2학년에 재학중인 유진우군은 우연한 기회에 언론에 소개된 ‘칸 아카데미’(www.khanacademy.org) 기사를 접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졸업 후 헤지펀드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살만 칸이 만든 칸 아카데미는 수학·과학·역사 등의 강의 콘텐츠를 무료로 올려놓았다. 공짜지만 품질이 좋아 이용자가 전세계 1000만명이 넘는다. 유군은 사이트를 둘러보며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보기 힘들다고 느꼈다. 이에 직접 번역 사이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지난해 초 친한 친구 2명과 구상에 들어갔다.
지난 5월, ‘오픈놀리지’(www.openowledge.com)는 그렇게 탄생했다.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유군과 같은 학교 친구들 7명이 각각 법적인 문제와 사이트 운영, 자막 검수, 홍보 등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유군은 “처음 동아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업자등록까지 냈다. 좀더 다양한 자료를 올리기 위해 번역단을 모집했는데 그들에게 봉사 시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기 위해서는 법인이나 단체로 등록이 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번역단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까지 40명이 활동하고 있다. 오픈놀리지 학생들은 번역단이 보낸 번역본을 보고 자막 검수를 해서 올린다. 지금까지 ‘칸 아카데미’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학생들이 수학·과학·기술·공학 관련 동영상을 제공하는 비영리 온라인 강의사이트 ‘MIT+K12’의 콘텐츠를 번역했다.
현재 수학, 과학 등 오픈놀리지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들은 총 2만6300여회 재생됐다. 유경민양은 “초기에는 친구들만 반응을 보였는데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격려의 메시지도 보내주고 어떤 강좌를 올리겠다고 하면 기대한다거나 조언해주는 댓글도 달린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구찬모군은 “번역 외에도 지난해부터 철학, 수학 등에 뛰어난 학생들을 모아 인터넷 강의를 제작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고 했다. 교내에 재능 있는 친구들을 강사로 모집해 짧은 강의를 찍어서 사이트에 올리는 것이다. 국제철학올림피아드대회 한국 대표로 출전한 학생이 서양철학 분야를 가르치고,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해당 분야에 대한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식이다. 일본어와 음악 이론 관련 강좌도 준비중이다.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자신이 필기한 노트를 남에게 절대 안 빌려준다는 학생들도 있다. 오픈놀리지는 이와 정반대다. 자신이 아는 지식을 널리 알려 무료로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정근영양은 “기숙학교이다 보니 따로 과외를 받을 수 없어서 선배들이 방과 후에 후배들에게 알려줬다”며 “모르는 게 있으면 서로 물어보면서 알아가는 분위기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정양은 교내 선후배 지식나눔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1학년 학생들에게 모의법정에 참여해 발언하는 것에 관해 강의하고 있다.
고등학생 8명이 뭉쳐 지식나눔 사이트를 만들었다
40명의 번역단이 보내온
글을 검수해 자막으로 올린다
철학·수학 등 뛰어난 교내 학생
강사로 섭외해 인강 만든다
지식은 나눌수록 커지니까 구찬모군은 사실 처음부터 지식 공유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애들이 강의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한다고 했을 때 ‘돈 받고 하지 왜 그래’라고 했어요.(웃음) 그러다 우연히 한 친구가 우리가 올린 걸 보고 도움받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한테 다시 지식을 퍼뜨리면서 지식의 선순환이 이뤄질 거라 얘기했어요. 그 말을 들으며 많이 생각해보게 됐어요.” 유경민양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주말이면 친구들은 집에 가지만 유양은 학교에 남았다. 유양은 “처음 들어왔을 때 수학이 너무 어려웠다. 수도권에 집이 있는 친구들은 주말에 학원에 가서 부족한 공부를 하는데 나는 집이 안동이라 학원에 다니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칸 아카데미 사이트를 알게 됐다. “한국의 유명한 인강 사이트가 과목당 한 학기에 20만~40만원까지 하는 데 비해 칸 아카데미는 무료라 좋았어요. 덕분에 수학 공부하는 데 도움을 진짜 많이 받았죠.” 이들의 계획은 강좌의 정기적인 업데이트와 다양한 콘텐츠의 발굴이다. “지난달 말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방한했을 때 저희도 구글의 초청을 받아서 행사에 참석했어요. 그곳에서 만난 많은 분이 저희의 지식 나눔에 대해 공감해주고 격려해줘서 힘이 됐어요. 학생이다 보니 학교 일정에 맞춰야 하지만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싶어요. 또다른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직업인들까지 강사로 섭외해 좀더 질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어요. 지식은 나눌수록 커지니까요.”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