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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행복한 책읽기

학습심리학③ 우리 집은 아이가 책 읽기 좋은 곳인가?

학습심리학③ 우리 집은 아이가 책 읽기 좋은 곳인가?

 

 
독서는 학습의 바탕이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란 쉽지 않다. 풍부한 책읽기 경험은 공부 잘하는 아이의 저력이자, 실질적 학습기반이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라도 아이들의 학습에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책을 잘 읽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 아이들은 책을 잘 읽지 않고 또 읽기를 싫어한다. 아이들과 대화해보면 상당수 아이들은 책이 귀찮은 존재이며, 독서는 학습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 형성된 스크린미디어의 득세가 이런 심성을 부채질했다. 최근 성인의 독서율 하락에 발맞춰 아이들의 독서율도 하락하고 있다. 사실 성인의 독서 실태는 원래 좋은 편이 아니었고, 최근에는 더 심각해졌다. 1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10명 가운데 3명 이상 된다. 아이들의 독서율 역시 90% 이상이던 것이 최근 80% 초반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하루 평균 46분 정도 독서한다. 이는 높은 수치가 아니다. 대신 영상매체 보기는 74분, 학교생활 이외의 공부와 숙제, 학원에 할애하는 시간은 61분이나 된다. 인터넷게임 시간은 31분까지 추격하고 있다.

문제는 초등학교의 독서율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로까지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고생의 독서 실태는 성인에 가깝다. 참고서는 봐도 책은 읽지 않는다. 초등학생의 독서실태가 그나마 건강한 편이지만 위험 요소는 산재한다. 각종 스크린미디어의 득세 말고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독서시장 자체의 문제도 크다. 요즘 아이들은 소위 명작이나 고전이라고 하는 분야의 독서를 멀리한다. 출판업계도 이런 추세를 따른다. 우리 아이들의 독서생태계는 학습만화나 인스턴트 지식을 탑재한 흥미성 서적들이 득세하고 있다. 그리고 교과학습연계 지식을 담은 기능성 서적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이나 인간성과 철학, 가치와 의미를 알려주는 교양서의 자리는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고, 건강한 독서를 하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연유가 있다. 아이들 스스로 책을 멀리했다기보다는 책과 친할 환경이나 처지가 못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책과 놀고, 책을 벗 삼아 살아가는 환경을 ‘독서생태계’라고 부른다. 다양한 문제들이 아이의 신성한 독서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만나는 부모들마다 나는 아이들의 독서생태계, 책세상을 복원하는 법을 알리고 실천을 당부한다.

실제 내 치료에도 독서친화프로그램을 만들어 접목하고 있다. 내 상담실에는 스크린미디어에 찌든 아이들이 자주 방문한다. 그들은 대개 책이라면 질색을 한다. 처음 내가 독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몹시 부담스러워한다. 이런 현실에 발맞춰 내가 고안한 심리치료, 독서친화치료가 ‘미디어저널치료’이다.

기존 독서치료와는 매체를 사용하는 폭이나 방식이 다르다. 궁극적 목표는 아이의 독서친화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영상매체와 복합장르를 대거 활용한다. 아이가 책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면 이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내 아이의 독서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물리적 환경이 문제다. 한국인은 새로운 물건들을 집안에 들이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반드시 생활에 요긴한 것도 있지만, 해악이 더 크거나 득실에 별 반 차이가 없는 물건도 많다. 우선 아이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물건들을 꼽자면, TV,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기, 학습만화 순이다. 이들의 절대 양이나 절대 사용시간은 아이의 독서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주원인이다.

책과 이들 물건은 공존하기 어렵다. 앞서 초등학생의 매체사용시간을 봤지만, 집에 이런 미디어들이 비집고 들어오면 아이들이 독서시간은 반비례해 줄고 만다. 따라서 책과 마찰을 일으킬 매체나 물건 유입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두 번째 가족의 독서문화를 긍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아이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가 지났다면,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고, 가운데 큼지막한 토론용 탁자를 놓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하루 한 시간 정도 가족이 함께 대화와 독서를 즐기는 시간을 갖고 독서대화를 진행하기 바란다. 정 힘들다면 일주일에 두서너 차례 진행하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부모 상담에서 핀란드식 가족독서문화를 자주 추천한다. 독서선진국들은 장기적인 지적 발달을 위해 토끼몰이식 공부보다는 자연스러운 독서능력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가족독서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몇 가지 안성맞춤 실천이 있다. 우선 필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은 집 근처 가까운 도서관을 내 집처럼 느끼도록 자주 방문하고 이용하는 일이다. 나는 부모 상담에서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문화체험들에 아이를 자주 참여시킬 것을 권한다. 질적인 면이나 실질적인 이득이 어떻고 얼마나 되는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도서관을 자주 오래 이용해 도서관을 친숙한 공간으로 느끼는 것이 주목적이다.

또 하나는 자주 서점에 들르는 것이다. 반드시 대형서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옛날 냄새나는 헌책서점을 이용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아이에게 책을 사고, 다양한 책의 모습들을 확인해주는 것 역시 책을 통합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동기부여 책이다. 아이에게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사고 싶은 책을 찾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E-book을 사주고 다운로드 받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다.

또 인터넷에 존재하는 각종 독서관련 블로그나 사이트에 접속해 풍부한 콘텐츠를 접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때로는 책 파생 상품들-영화, 연극, 뮤지컬-을 가족이 함께 감상하는 것도 좋은 책친화 자극이다. 책을 좋아할 수 있는 환경과 경험들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좋아할 수 있는 책, 아이 수준과 흥미적성에 맞는 책을 찾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몫이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르다. 많은 독서전문가들은 편식 없는 고른 독서를 권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100년을 이어갈 긴 독서여정에서 영유아기나 초등학교 시절의 편중적 독서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령 만약 아이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결코 말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추리소설작가들을 섭렵할 수 있게 부모가 북가이드 노릇을 하는 편이 낫다.

나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은 온통 추리소설 읽기만으로 도배했던 경험이 있다. 100년을 이어갈 독서여정에서 이는 그리 큰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이게 책에 대한 신비로운 애착과 독서몰입을 깨닫게 하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유전적, 선천적 요인도 작용한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다를 수 있다. 또 좌뇌형 아이, 우뇌형 아이, 중뇌형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다중지능 프로파일 무엇이냐에 따라 관심이 가는 분야의 책이나 저널이 다를 수 있다.

나는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남자 아이에게는 자주 다소 어렵지만 축구매니아나 축구팬이 즐겨보는 축구전문잡지를 읽도록 권한다. 독서를 싫어했던 아이가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절묘한 찬스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격적 기질에 따라 좋아하는 책이 갈릴 수도 있다. 내성적인 아이와 외향적인 아이가 좋아하는 책은 전적으로 다르다.

내성적이었던 나 역시 유년기에 즐겨보던 책은 결코 공평하고 폭넓은 장르가 아니었다. 다소 어려웠지만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보들레르나 랭보의 시집을 열심히 탐독했던 경험이 있다. 반면 외향적인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 또한 따로 있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성격과 기질, 흥미적성, 두뇌유형, 다중지능프로파일, 현재의 관심사항 등을 고려해 최적의 독서가이드라인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때로는 부모 혼자서 이런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전문적인 독서코치나 리터러시 코치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책을 잘 읽도록 설정되어 있지 않다. 사냥하고 먹고 신체적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들 가운데는 스스로 깨어나는, 타고난 유전형질도 있지만, 책을 읽고 즐기는 일에 대해서만은 그 잠재적 씨앗만 주어질 뿐, 아이가 비료나 육성 기술까지 함께 가지고서 태어나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독서씨앗을 잘 틔워 싱싱한 묘목으로 자라게 하고 큰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와 관계하는 주변 환경과 인적 네트워크의 정성과 노력에 힘입어 완성되는 일이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 퇴계문학치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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