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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놀 시간 충분히 줬더니 공부, 할 일도 알아서 척척"

"놀 시간 충분히 줬더니 공부, 할 일도 알아서 척척"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중만씨와 딸 가람양, 아들 광진군. /광주(경기)=염동우 기자

나의 자녀 교육법 ②이중만 (44·경기 광주시)

지난달 17일,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이중만(44)씨 집에 들어서자 베란다 유리에 붙은 세계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태평양 상공엔 하얀 종이 비행기 한 대가 아메리카 대륙을 향하고 있었다. 이씨가 아이들과 함께 갈 여행지를 표시해 놓은 것이었다. 이씨는 "최근 몇 년 새 자녀 교육관이 크게 바뀌었다"며 "요즘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교육은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해주는 것, 그리고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대화 나누며 여행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법 1 │ 아이 '심리 건강' 위해 취미까지 바꿨다

이씨가 자녀 교육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첫째 광진(경기 광주 벌원초등 6년)군이 5학년에 올라가던 지난해부터였다. 아들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기 때문. 이씨는 "성적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심리적 건강이란 사실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취미까지 바꿔가며 아이에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이전엔 혼자 이삼일씩 훌쩍 낚시 여행을 떠나곤 했어요. 지난해부턴 그 시간을 '가족 캠핑'으로 돌렸죠. 한 달에 한두 번씩 야외로 나가 좁은 텐트에서 함께 자고, 밥 지어 먹고, 밤늦게까지 얘기 나누며 가족 간 유대감이 더 강해졌어요. 아이들에겐 공부 스트레스 없이 놀 수 있는 기회가 됐고요."

지난해 1월엔 아들과 단둘이 보름 동안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초등생 시절 내내 영어학원에 다니면서도 영어라면 질색하는 아들에게 학습 동기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영어권 국가에 직접 가보면 아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힘들 걸 각오하고 배낭여행을 계획했죠. 공항에서부터 감기약을 '드럭(drug)'이라고 표현했다가 마약 소지자로 오해받아 조사받는 등 실수 연발이었지만 얻은 게 훨씬 많았어요. 여행 초반, 입도 벙긋 못하던 아이가 조금씩 영어 사용법을 익히더니 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까지 달라지더군요."

교육법 2│ 제대로 놀게 하니 성적 오르더라

호주 여행 직후 이씨는 광진군의 '영어 공부 파트너'로 나섰다. 다니던 영어학원도 그만두게 했다. 대학 졸업 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영어책을 손에 잡았고, 매일 밤 잠들기 전 한 시간씩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문법이 어렵다는 아이를 위해 인터넷 문법 강의를 먼저 들어본 후 좋은 강의를 추천하기도 했다. 아이 연령대보다 한두 단계 낮은 수준의 원서를 구입, 읽기에 대한 흥미도 되살려줬다. 원서는 '페이지당 모르는 단어가 3개 미만'인 수준으로 골랐다.

회화는 화상영어 프로그램으로 지도했다. 이씨는 "학원을 그만두면서 광진이가 영어 공부를 즐기게 됐다"며 "그렇게 학원 가길 싫어하더니 요즘은 잔소리하지 않아도 화상영어 수업을 챙겨 수강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학원을 끊은 후 가장 좋은 점은 아이에게 '놀 시간'이 생겼다는 거예요. 요즘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1시간 30분 정도는 꼭 밖에서 놀게 합니다. 놀아야 할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이씨가 바뀌자 광진군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제일 큰 변화는 활달해진 성격. 지난해 1학기 땐 학급 부회장을 맡아 맹활약하기도 했다. 학원을 끊고 노는 시간이 늘었지만 성적은 오히려 올랐다. 지난달 초엔 2박 3일간 섬으로 캠핑을 다녀온 직후 치른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이씨는 "아이에게 놀 시간을 충분히 준 후 공부는 자율에 맡겼더니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더 노력하더라"고 귀띔했다.

교육법 3│ 함께 공부하다 보니 '자기계발' 저절로

아이의 학습 부담을 줄이는 대신 이씨가 가장 신경 쓴 건 독서였다. '공부의 연결 고리는 모두 책에 있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씨네 집 거실 책장엔 광진군과 동생 가람(경기 광주 벌원초등 1년)양의 독서 목록이 붙어 있다. 남매는 목록에 각자 읽은 책 제목을 기록하며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

이씨는 이번 겨울방학 때 광진군과 나관중 소설 '삼국지연의'를 독파한 후, 주요 내용과 등장인물에 대해 얘기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수준 차를 감안해 광진군은 '만화 전략 삼국지'(전 60권, 요코야마 미쓰테루 글·그림, 대현출판사)에 도전하고 이씨는 소설가 황석영이 번역한 '삼국지 세트'(전 10권, 창작과비평사)를 읽을 예정이다. "아빠가 직장 생활 틈틈이 자녀와 시간을 보내며 교육에 관심 갖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자녀 교육에 들이는 시간을 '희생'이라고만 여겼죠. 하지만 아이 덕분에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책을 읽으며 저 역시 자기계발에 눈뜨게 됐어요. 가장 만족스러운 건 제가 관심을 갖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결과, 아이의 생각이 깊어지고 그걸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에요."

[광주(경기)=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