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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

'아주 특별한 바리스타' 혜현이를 소개합니다

'아주 특별한 바리스타' 혜현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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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스페셜 바리스타 대회' 대상 받은 여고생 조혜현양

-중 3 때부터 뇌전증 앓아... 열정으로 '발작 공포' 극복


"제가 앓고 있는 병은 뇌전증이에요. 다른 말로 간질이라고도 하죠. 경련과 의식장애를 일으키는 발작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이랍니다." 조혜현(경기 시흥 은행고 2년)양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우유 거품을 만드는 그의 모습에서 무서운 병으로 고통 받는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지난 3일, 부천상록학교(경기 부천 원미구)에서 '2012 스페셜 바리스타 대회'가 열렸다. 바리스타 직업 교육 과정을 수료한 장애 학생의 직무 능력 향상과 동기 부여를 목표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서 조양은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었다. 대회 엿새 후인 지난 9일, 조양의 사연을 듣기 위해 시흥으로 향했다.

◇커피야말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커피 세계를 접하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바리스타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픈 몸을 비관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수도 있겠죠." 실제로 조양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뾰족한 장래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바리스타를 꿈꾸게 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그가 재학 중인 은행고는 지난해부터 특수 교육 대상 학생을 대상으로 바리스타·제과제빵·사무보조 등 3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 오고 있다. 바리스타반에 들어가 난생처음 커피 제조법을 배운 조양은 금세 커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작년 11월 학교에 에스프레소 기계가 들어왔어요. 기계가 없을 땐 커피 관련 이론부터 배웠죠.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하나하나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어요. 커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좋아하는 걸 배우다 보니 욕심도 생겼다. 조양을 지도하고 있는 한인희(25) 은행고 특수교사는 "바리스타로서 혜현이의 최대 강점은 커피 제조 기술 못지않은 열정과 승부욕"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는 '실습'도 시작했다. 매주 월·수·금요일 가톨릭대 내 커피 전문점 '커피동물원'에서 바리스타 어시스턴트 역할을 맡아 일을 배우고 있는 것. 이번 대회 준비도 학교 일과와 실습 일정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틈틈이 짬을 내어 진행했다. "힘들었냐고요? 전혀요! 커피 만드는 일과 관련된 거면 전부 재밌고 신나요. 하루 중 커피 만들 때가 제일 행복한 걸요."(웃음)

◇"장애가 제 꿈까지 방해하진 못해요"

조양은 중 3 되던 해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 증세를 보인 후 이전 기억을 모두 잃었다. 그 일로 병원에서 뇌전증 3급과 지적 장애 3급 판정을 받으며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발작이 두려워 매일 떨어야 했고, 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한때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게 바리스타의 꿈을 갖기 전 얘기다. 그는 "(바리스타란) 꿈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처럼 웃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대회에 출전할 용기를 갖게 된 것도 꿈이 생긴 덕분"이라고 말했다.

스페셜 바리스타 대회에선 준비·시연·정리 등 커피 제조에 관한 전 과정을 심사한다. 준비 단계에선 기계 점검과 예비 추출, 컵 예열 등이 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시연 단계에선 직접 만든 커피를 심사위원에게 차려내야 한다. '미션 커피'는 예선(에스프레소·카푸치노)과 본선(카푸치노·캐러멜마키아토·아이스카페모카)이 조금씩 달랐다.

"원래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 약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대회 당일 너무 긴장한 나머지 네 번이나 약을 먹었지 뭐예요. 너무 긴장하거나 피곤하면 약이 잘 듣지 않거든요." 약 투여량을 늘려가며 '투혼'을 발휘한 보람은 있었다. 긴장한 나머지 순서를 잊어버려 낭패를 겪었던 예선 때와 달리 본선에선 제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

조양은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부터 매일 걷기 운동을 한다. 약 의존도를 줄이고 기초 체력과 정신력도 계발하기 위해서다. 그는 "장애가 내 꿈까지 막을 순 없다"고 말했다. "몸이 아픈 친구들이 절 보며 용기를 내주길 바라요. 누구나 저마다의 장기가 있게 마련이잖아요.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리다 보면 길은 열리게 돼 있습니다. 장애가 있다며 매사 주춤대는 사람, 장애우의 꿈을 비웃는 사람... 저보다 그런 분들의 장애가 더 크고 깊지 않을까요?"

[맛있는교육 edu.chosun.com]

[시흥=남미영 조선에듀케이션 기자 wille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