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앞두고 벼락치기 봉사활동…봉사 자리 '품귀' 코미디
[CBS 오지예 기자]
20시간. 전국 중고등학생이 내신 만점을 받기 위해 1년에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봉사 활동 시간이다. 일부에서는 '365일 동안 겨우 하루 24시간도 안되는 시간인데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이 클까'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정짓는 건 오산. 개학을 코 앞에 두고 부랴부랴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봉사활동의 수요와 공급 실태를 살펴봤다.
◈개학 앞두고 벼략치기 봉사활동…자리 품귀
지난 16일 청소년과 기관 간 봉사활동을 연계 지원하는 청소년자원봉사활동서비스 홈페이지 접속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유아 스포츠단 캠프 보조교사' '저소득층 영어 멘토링 봉사활동' 등 서울 지역에 5만 6천여개의 청소년 봉사활동을 공지하자 마자 신청자 3천 여명이 동시 접속해 서버가 다운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학교장 재량에 따라 빠르면 지난 17일부터 늦은 24일까지 개학을 하면서 부랴부랴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이 관공서와 각종 사회복지 시설 등에 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방학이 시작될 때 자원봉사 모집 공고를 띄웠는데 소식이 뜸하다가 개학을 앞두고 최근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며 "대뜸 봉사거리를 달라는 학생들을 보면 무례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벼락치기 봉사 활동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봉사 활동 가면…찬밥 신세, 봉사 인정 안되는 기관도"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다르다.
경기 하남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 모(15)양은 "지난 주 경찰서에 봉사활동 문의 전화를 했더니 아침 일찍 나오라해서 왔는데, 경찰 아저씨가 막상 할 일이 없다며 나중에 오라고 하니깐 어이없다"며 불쾌함을 나타냈다.
이 양은 이어 "개학은 다가오고, 봉사활동 시간은 채워야 하는데 우체국이나 경찰서, 동사무소 등 관공서에 문의하면 싸늘한 답변만 돌아온다"고 푸념했다.
서울에 사는 박 모(15)양은 이 양과 달리 일찌감치 봉사활동을 했지만 알고보니 시수가 인정되지 않아 개학을 앞두고 다시 봉사활동을 구하고 있었다.
박 양은 " 동네 어린이집에서 3일 동안 17시간 봉사활동을 하고 확인서를 받아갔는데, 봉사활동 인증이 안되는 기관이었다"며 "미리 알려주든지 시간도 없는데 두번 고생하게 됐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여성 가족부 청소년 정책 분석 평가센터가 지난 6월 전국 중고생 1451명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5.8%는 정부나 학교, 지역 사회에서 청소년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활동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마땅히 시킬 것도 없고…" 일부 기관들, 청소년 봉사활동 부담"
학생들의 봉사 활동을 받는 기관도 할 말이 많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학생들이 오면은 적극적으로 시킬 게 없다"며 "청소는 용역 아주머니가 있고, 그나마 교통 지도를 시키는데 행여나 교통 사고 등 안전상의 문제에 노출돼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학생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알지만 봉사활동 인증서를 발급해주기엔 양심에 가책을 느껴 꺼리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경기 지역의 한 우편 집중국 관계자는 "학생들이 오면 우편물 분리 작업을 시키고 있는데 일손을 덜어주니 좋긴 하지만 봉사활동 성격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따르면 이른바 '터전'이라 불리는 자원봉사활동 인증 기관 수는 올해 기준 전국 16개 시도에 8천 53개로 봉사활동 시수를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전국 중학생 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상진 참여봉사부장은 "시도 광역시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나은데 지방으로 갈수록 청소년들이 봉사활동 거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서도 "청소년들이 성인이 아닌만큼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만큼 봉사활동 인증 기관(터전) 수를 무턱대고 늘릴 수만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우러나야할 봉사 마저도 점수화 시키고, 이에 어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개학에 임박해 벌어지는 '봉사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calling@cbs.co.kr
[관련기사]
20시간. 전국 중고등학생이 내신 만점을 받기 위해 1년에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봉사 활동 시간이다. 일부에서는 '365일 동안 겨우 하루 24시간도 안되는 시간인데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이 클까'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정짓는 건 오산. 개학을 코 앞에 두고 부랴부랴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봉사활동의 수요와 공급 실태를 살펴봤다.
◈개학 앞두고 벼략치기 봉사활동…자리 품귀
지난 16일 청소년과 기관 간 봉사활동을 연계 지원하는 청소년자원봉사활동서비스 홈페이지 접속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유아 스포츠단 캠프 보조교사' '저소득층 영어 멘토링 봉사활동' 등 서울 지역에 5만 6천여개의 청소년 봉사활동을 공지하자 마자 신청자 3천 여명이 동시 접속해 서버가 다운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국 대부분의 중고등학교가 학교장 재량에 따라 빠르면 지난 17일부터 늦은 24일까지 개학을 하면서 부랴부랴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이 관공서와 각종 사회복지 시설 등에 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방학이 시작될 때 자원봉사 모집 공고를 띄웠는데 소식이 뜸하다가 개학을 앞두고 최근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며 "대뜸 봉사거리를 달라는 학생들을 보면 무례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벼락치기 봉사 활동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봉사 활동 가면…찬밥 신세, 봉사 인정 안되는 기관도"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다르다.
경기 하남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 모(15)양은 "지난 주 경찰서에 봉사활동 문의 전화를 했더니 아침 일찍 나오라해서 왔는데, 경찰 아저씨가 막상 할 일이 없다며 나중에 오라고 하니깐 어이없다"며 불쾌함을 나타냈다.
이 양은 이어 "개학은 다가오고, 봉사활동 시간은 채워야 하는데 우체국이나 경찰서, 동사무소 등 관공서에 문의하면 싸늘한 답변만 돌아온다"고 푸념했다.
서울에 사는 박 모(15)양은 이 양과 달리 일찌감치 봉사활동을 했지만 알고보니 시수가 인정되지 않아 개학을 앞두고 다시 봉사활동을 구하고 있었다.
박 양은 " 동네 어린이집에서 3일 동안 17시간 봉사활동을 하고 확인서를 받아갔는데, 봉사활동 인증이 안되는 기관이었다"며 "미리 알려주든지 시간도 없는데 두번 고생하게 됐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여성 가족부 청소년 정책 분석 평가센터가 지난 6월 전국 중고생 1451명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5.8%는 정부나 학교, 지역 사회에서 청소년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활동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마땅히 시킬 것도 없고…" 일부 기관들, 청소년 봉사활동 부담"
학생들의 봉사 활동을 받는 기관도 할 말이 많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학생들이 오면은 적극적으로 시킬 게 없다"며 "청소는 용역 아주머니가 있고, 그나마 교통 지도를 시키는데 행여나 교통 사고 등 안전상의 문제에 노출돼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학생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알지만 봉사활동 인증서를 발급해주기엔 양심에 가책을 느껴 꺼리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경기 지역의 한 우편 집중국 관계자는 "학생들이 오면 우편물 분리 작업을 시키고 있는데 일손을 덜어주니 좋긴 하지만 봉사활동 성격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따르면 이른바 '터전'이라 불리는 자원봉사활동 인증 기관 수는 올해 기준 전국 16개 시도에 8천 53개로 봉사활동 시수를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전국 중학생 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상진 참여봉사부장은 "시도 광역시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나은데 지방으로 갈수록 청소년들이 봉사활동 거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서도 "청소년들이 성인이 아닌만큼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만큼 봉사활동 인증 기관(터전) 수를 무턱대고 늘릴 수만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우러나야할 봉사 마저도 점수화 시키고, 이에 어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개학에 임박해 벌어지는 '봉사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calling@cbs.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