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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난 '수화' 쓰는 농인 … 여러분과 '언어' 다를 뿐입니다
[중앙일보 박현영.박종근] 그는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처음 얻은 이름은 나종일(30). 날 때부터 듣지 못했다. 네 살 때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양부모도 그처럼 듣지 못하는 농인이다. 부부는 자신과 같은 농인 아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의 한 고아원에 있던 나종일을 만났다. 그가 새롭게 얻은 이름은 네이선 케스터(Nathan Kester). 지금은 구글에서 웹마스터로 일한다. 여기 나종일과 네이선 케스터, 미국과 한국, 수화와 영어, 영어와 한국어, 농인(聾人)과 청인(聽人)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생을 개척해 간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네이선 케스터는 구글의 웹마스터다. 아시아·유럽·북미 등 구글 세계 지사에 있는 웹마스터 60여 명 중 한 명이다. 구글 웹페이지를 디자인하고 관리하며 프로그램을 짜기도 한다. 2005년 구글에 입사한 그는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구글코리아에서 근무했다. 한국에서 근무할 웹마스터를 뽑는 사내 공고에 손을 들었다. 한국 근무 1년을 마친 그를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미국 수화를 하는 수화통역사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한국어-미국 수화-한국어를 통해 질문과 답이 오갔다.
●한국 근무 중 기억에 남는 일은.
“3월 일본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 구글에서 속보나 현지 상황을 안내하는 뉴스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를 웹마스터팀이 관리를 했다. 24시간 연속 일한 적도 있는데, 뭔가 알리고 도울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꼈다.”
●구글에 어떻게 입사했나.
“뉴욕의 RIT 공대(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그때 구글의 사용자로서 '이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다. 2004년 졸업 후 워싱턴의 미국 농무부에서 웹프로그램 관리자로 일했는데, 정부기관이어서 안정적이기도 했지만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블로그를 통해 구글에서 일하는 친구를 사귀게 됐는데, 그가 추천해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채용됐나.
“계약직으로 1년 일한 뒤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처음에는 워싱턴에 있는 구글의 데이터센터에서 데이터베이스 관리를 했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웹마스터가 되고 싶었다. 웹 디자인이나 프로그램이 내 관심 분야라고 꾸준히 알렸다. 결국 웹마스터팀에서 불러줘서 캘리포니아의 구글 본사로 가서 일하게 됐다.”
●소원 성취의 비법은.
“웹마스터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끊임없이 밝혔다. 남들은 부서를 옮기고 싶을 때 프로젝트 제안서를 제출하거나 전화로 얘기하거나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농인이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없다. 직접 만나도 대화하기 어렵고, 제안서를 제출해도 읽어본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꾀를 냈다.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큰 회의가 열려 임원진이 모인다는 걸 알고, 내 돈으로 워싱턴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사고 휴가를 내서 갔다. 수화 통역사를 데려가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나를 소개했다. 임원 몇 명이 나를 인상 깊게 봤다. 정식 면접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첫 직장이었던 워싱턴의 정부 기관 일은 장애인을 배려한 일자리였다. 그는 '농인이라고 채용해 주는 것 말고 내 힘으로 일반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당시 기업 세 곳에서 면접을 봤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떨어졌다. 그는 이유를 분석했다.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나를 인상 깊게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통역 문제였던 것 같다. 농인에게 통역사는 대변인과 같다. 농인의 삶을 100%가 아니라 200% 이상 대변해 줘야 한다. 당사자가 말하는 뉘앙스, 느낌, 의도가 뭔지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면접 때는 회사에서 통역사를 준비했다. 처음 만난 통역사를 통하려니 나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채용이 안 됐다고 생각했다. 면접관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써보라고까지 했으니까.”
그래서 구글 입사 면접 때는 회사에 통역사를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수화도 잘 하고, 말도 잘 하고, 무엇보다 나를 잘 아는 반듯한 미모의 통역사를 개인 비용으로 고용해 데려갔다.
●원래 도전적인 성격인가.
“그렇다. 남들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 성격이 좀 도전적이다. 입양해 주신 부모님께도, 진취적인 성격을 갖고 태어나게 해주신 한국 부모님께도 모두 감사한 마음이 있다.”
●컴퓨터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부모님께서 '네가 정말 좋아하는 걸 찾아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이나 TV 게임을 많이 했다. 어느 순간 이 프로그램을 누가 만들었을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농인들은 직업 선택의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다. 쉽게 대중매체에 접할 수 없어 정보를 습득하려면 인터넷 검색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와 친하게 됐고 빠져들게 됐다.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자연스럽게 필담을 나누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농인에게 불리하지 않은 점도 선택 이유였다.”
케스터는 고교 졸업 후 농인을 위한 대학인 갤러뎃 대학(Gallaudet University)에 들어갔다. 1년 만에 자퇴하고 다시 RIT에 들어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초·중·고교 모두 농인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무작정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농인대학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세계 유일의 농인을 위한 대학이다. 수업뿐 아니라 교수진, 카페테리아, 행정 시스템까지 모두 농인을 위한 맞춤 학교다. 그런데 케스터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 그런가.
“많은 농인은 부모와 가족이 농인이 아니기 때문에 수화와 음성 언어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갤러뎃 대학은 농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정리하고, 농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배워나가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나는 부모도 농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혼란이 아예 없었다. 부모님도 수화를 쓰셨고, 나도 수화를 배웠고, 항상 대화가 충만했다.”
●한국과 미국의 장애인 복지 시스템을 가까이에서 보니 어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농인들이 일반 기업에 들어가는 건 어렵다. 다만 미국이 한국과 다른 점은 농인이 실력을 갖췄는데도 단지 대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고용을 안 하면 이는 위법이다. 농인이 고소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온다. 실력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아마 구글에서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회의 나라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은 것 같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한국인들은 일에 있어서 매우 열정적이다. 천성이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회복지 시스템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은 장애인이 받는 정부 지원금이 한 달을 생활할 만큼 충분치 않다.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 같다. 미국은 장애인으로 등록되면 한 달에 약 15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그래서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양부모님도 농인이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는데도 열심히 일하셨다. 부모님은 우체국에서 일하셨다. 부모님께서는 '농인이라고 연금에 의존해 사는 건 나태하다, 동물과 같다,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걸 적성을 살려서 일해야 삶을 더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늘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늘 아침·저녁으로 일하는 걸 보고 자라서 나는 다른 청인들과 똑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점에 감사하다.”
●구글에서 어떻게 지원하나.
“구글이 현지 수화 통역 업체와 계약을 해 통역이 필요하면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1대1 회의가 있을 경우 통역사를 요청한다. 팀 단위의 그룹 회의가 있을 때에는 실시간 원격 자막 서비스를 해준다. 상대방이 대화하는 동안 화면상의 자막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 일반 업무는 구글의 채팅 서비스인 구글 토크로 소통했다.”
케스터는 대학 때 만난 한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2002년 한국 가족과 상봉했다. 이번에 한국 근무를 자원한 것도 한국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였다.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은 없었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수화는 세계 공통이다.
●입양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주변 환경에 신경쓰지 말고 본인의 잠재능력을 찾아내라. 본인이 똑바로 서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접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인들은 좋은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높은 교육열 때문인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처럼 똑똑한 사람이 많고, 머리가 좋고, 뭐든지 열심히 하고, 게으르지 않다. 그러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중하라. 그러면 혼란을 겪지 않고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입양을 가게 된 이야기를 들었나.
“한국 부모님은 정말 가난하셨다고 한다. 누나, 형, 나 이렇게 3남매를 두셨다. 누나가 농인이었는데, 나까지 농인으로 태어나자 키울 자신이 없어서 고아원에 맡겼다. 원래 부모가 있으면 고아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데, 형편이 너무 어렵다고 통사정하는 바람에 받아주었단다. 고아원에 들어오고 몇 달 안 돼 미국인 수녀님을 통해 입양됐다.”
●친부모를 찾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내 입양 문서에 많은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았다. 거짓 내용도 있었다. 나를 길에서 주웠다고 돼 있더라. 그런데 그 서류를 보고도 나는 믿지 않았다. 농인은 안 들리는 대신 직감과 감각이 발달한 편이다. 보통 입양 문서에는 많은 정보를 거짓으로 적는다고 한다. 충실하게 적으면 나중에 서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다행히 고아원 이름은 제대로여서 연락을 했다. 원장은 처음에는 기억을 못하다가 내가 농인이라고 하니 기억해 냈다. 입양시킨 3000명의 아기 중 내가 유일한 농인이었다고 한다.”
●농인인 게 오히려 행운이었나.
“그렇다. 농인이었기 때문에 친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입양인이 친가족을 찾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친가족을 찾은 소감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대화도 쉽지 않았다. 한국 수화와 미국 수화가 다르기 때문에 농인인 누나와도 얘기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영어를 못해서 필담도 어려웠다. 하지만 농인은 좋은 직감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았나. 점차 서로를 알아가게 됐다.”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즐겁게 지냈다. 특히 좋았던 점은 미국에서는 친구들이 맥주 한두 병 마시고 마는 게 늘 아쉬웠는데, 한국에서는 모두 밤을 새워가며 같이 마시니까 좋았다(웃음). 아무도 먼저 멈추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소통했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는 영어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필담을 나눴다. 한국 농인들 중 간혹 미국 수화를 공부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는 미국 수화로 얘기했다. 한국인인데 영어를 할 줄 모르면 통역사와 함께 만났다. 친누나로부터 한국 수화를 배우고, 나는 미국 수화도 가르쳐 줬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웹마스터팀으로 돌아간다. 나중엔 양부모님이 계시는 시카고에 가서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골프, 글쓰기, 블로그 관리도 열심히 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농인 세계 올림픽에 골프 선수로 출전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활용해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해 보고 싶은 꿈도 있다.”
자국 문자도 외국어처럼 배워야
구글의 웹마스터 네이선 케스터와의 인터뷰는 미국 수화를 하는 한국인 수화통역사 고인경씨를 통해 진행됐다. 기자가 한국어로 질문하면 통역사가 이를 미국 수화로 케스터에게 전달하고, 케스터가 미국 수화로 한 답을 통역사가 한국어로 말해주는 식이다. 짧은 질문과 긴 침묵이 오갔다. 케스터는 농인의 세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는 '청각장애인' 대신 '농인'이란 표현을 썼다.
●청각장애인과 농인은 어떻게 다른가.
“청각장애인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농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듣는 데 장애가 있다기보다는 언어가 다른 사람이라는 문화적 입장에서 봐주길 바라는 것이다.”
●언어가 다른 사람?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농인들은 제1 언어로 수화를 배운다. 시각 언어인 수화가 제1 언어일 뿐이라는 의미에서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뜻이다. 귀가 들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청인(聽人)이라고 칭한다. 농인(聾人)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청인들이 영어·프랑스어·일어·독어 같은 제2 외국어를 배우듯 농인들은 영어·한국어 등을 제2 외국어로 배운다. 미국 농인에게는 미국 수화가 제1 언어, 영어가 제2 언어인 셈이다. 청인들 중에도 제2 외국어를 배우지 않고 모국어만 하는 사람들이 있듯, 농인 중에도 수화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이 제2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듯 많은 미국 농인들이 영어를 하지 못한다.”
미국 농인도 영어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으면 영어를 읽고 쓸 수 없다. 영어를 수화로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수화는 독립된 단어와 문법 체계를 가진 또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신문·자막·간판 등을 계속 보다 보면 웬만한 단어는 익힐 수 있지만, 문법까지 이해하려면 미국 농인도 영어를 제2 외국어처럼 정식으로 배워야 한다. 케스터는 정식으로 영어를 배운 경우에 해당한다. 고씨는 “청인들 중에도 달변가가 있듯이 수화에도 달변이 있는데, 케스터의 수화는 달변 중의 달변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수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한국(왼쪽)과 미국이 다르다.
●미국 수화와 한국 수화도 다른가.
“완전히 다르다. 단어, 문법 등이 모두 다르다. 알파벳과 'ㄱㄴㄷ'이 완전 별도의 체계인 것만큼이나 다르다. 한국에서 미국 수화를 하는 수화통역사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 것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