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5깶7명 머리 맞대고 문제해결
경험-생각 나누니 상상력 활짝
“창의력요? 혼자 생각하는 거요.”(윤대영·대구 경동초 6학년)
“스스로 생각해야죠. 그리고 생각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상상력을 실행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니까요.”(스테이시 호그세트·여·미국 켄터키 주 고교 교사)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 아닐까요?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면 학습능력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질도 높아지죠.”(권현주·서울국제고 학생 어머니)
창의력을 겨루는 세계창의력경진대회(Destination Imagination Global Finals)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 테네시대에서 시작됐다. 유연한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대회다. 초등 중등 고등(대학 포함)으로 나뉜 팀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의 창의력을 평가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13개 국가에서 모인 1155개 팀이 창의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에 섰다. 국내에서도 한국창의력교육협회 등이 주최한 예선을 거쳐 49개 팀이 참가했다.
○ 다양한 경험에서 배우는 창의력
대회에서 제시한 과제는 크게 도전과제와 즉석과제로 나뉜다. 도전과제는 1년 전 공개돼 5∼7명의 학생이 팀을 만들어 준비하도록 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창의력뿐만 아니라 팀워크를 키우자는 취지. 즉석과제는 즉흥적인 창의력을 평가하기 위해 대회 현장에서 제시한다. 역시 팀워크가 관건이다.
“학생마다 가진 능력이 다르다. 관찰력이 뛰어난 학생, 해석력이 남다른 학생, 표현력이 좋은 학생. 이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능력을 배우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력을 높이라는 의미”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과제도 학생의 다양한 능력을 시험하도록 만들었다. 올해의 도전과제는 5가지. 미확인 물체 이동(unidentified moving object), 돌고 도는 이야기(spinning a tale), 세 번 하는 로드쇼(triple take road show), 신화 속 임무(mythology mission), 알루미늄 포일로 버티기(verses! foiled again!).
참가자는 이 중 한 가지를 택해 심사위원과 청중 앞에서 8분간 공연 형식으로 선보여야 한다. 과학 지식과 연극적 표현력, 창의력, 논리성을 종합적으로 담을 필요가 있다.
창의력협회(DI)의 척 케이들 최고경영자(CEO)는 “창의력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 학생으로 구성되는 한 팀에서, 또 전 세계에서 모이는 친구를 통해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배우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가족 단위로 참석한 미국인 부모의 기대도 비슷했다. 텍사스 주에서 온 케이티 로드리게즈 씨는 “우리 아들은 지나치게 나서길 좋아하고, 함께 온 친구는 반대로 소극적이다. 팀 과제를 통해서 서로의 장단점을 알고 성장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황욱 DI한국 회장도 “개개인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건 결국 조직 안에서다. 함께 끌어주고 밀어주는 팀 교육이야말로 사교육이 소화할 수 없는 공교육의 영역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 과학적 상상력의 무대
“Audience, are you ready(여러분, 준비됐나요)?” “와∼.”(박수)
“Team, are you ready(팀, 준비됐나요)?” “This mission isn't impossible(불가능한 미션이 아니죠)!”
“Appraisers, are you ready(평가단, 준비됐나요)?” “We are ready to roll(준비됐어요)!”
개막식 다음 날인 27일부터 사흘간 테네시대 캠퍼스 곳곳에서는 과제별로 마련된 무대에서 참가팀과 청중, 평가단이 어우러진 공연이 끊이지 않았다.
물체를 이동시켜야 하는 A과제 무대에는 물이 담긴 대형 원형 통 안에 2.5m 높이의 타워가 설치됐다. 학생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직접 만든 도구를 활용해 타워 위의 물건을 내리고, 물에 떠다니는 물건을 위로 올려야 했다. 가로세로 50cm 박스 안에 담을 수 있는 도구만 인정되고 전력은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에서 온 중등팀은 폴리염화비닐(PVC)로 긴 파이프를 만들고 그 끝에 거울을 달아 타워 위의 물건을 보면서 집어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매사추세츠 주 초등팀은 가위의 원리를 활용한 집게로 효율성을 높였다.
B과제에서는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에너지 순환을 주제로 연극을 꾸며야 한다. 메릴랜드 주의 초등팀은 물방울로 깜찍하게 분장을 하고 수력발전의 원리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세 종류의 관객을 설정해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테마로 구성해야 하는 C과제의 핵심은 연극적 상상력. 한국팀 중 경남 김해에서 온 고등팀은 시장통, 거리의 관현악단, 법원 청사 앞을 배경으로 비빔밥을 홍보하는 연극을 선보였다. 움직이는 섬세한 배경 연출과 코믹한 내용으로 공연 뒤 사진촬영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 덕분에 대회 폐막식에서 특별상까지 수상했다.
D과제는 나라별 신화 속 인물을 등장시켜 문화적 특성을 강조하는 5분짜리 콩트 만들기. 즉석에서 상황이 주어지는데도 서양 학생들은 일본의 다도와 중국의 쿵후를 표현했다.
E과제에서는 알루미늄 포일과 나무, 접착제만으로 최대한 가볍게 구조물을 만들어 그 위에 바벨을 얼마나 많이 쌓아올릴 수 있는지를 보면서 동시에 뒤틀린(foiled) 인물을 등장시켜 연극을 꾸미게 했다.
이광영 군(서울 역촌초 6학년)은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들으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안 풀리는 수학문제도 다르게 생각하고 다시 풀어보면 답을 낼 수 있다는 걸 대회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상을 받은 비빔밥 공연팀의 이재룡 군(경남 김해 경원고 2학년)은 “함께 준비하고 함께 꾸민 대회이기 때문에 모두가 수상자가 되는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녹스빌=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