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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한국 고교생 “혼자선 공부 못해”

한국 고교생 “혼자선 공부 못해”

교육개발원 1만여명 설문

고교생 10명 중 6명은

혼자공부 하루 1시간도 안돼


밤 열시까지 자율학습불구

야자대신 학원수강 당연시

“학교밖서 2시간 학습” 51%


“1주일내내 독서안한다” 31%

여전히 ‘티처보이’ 재확인


서울 K고 2학년인 조모(17) 군은 오전 7시30분까지 등교해 8시부터 ‘아침 자율학습’을 한다. 이어진 정규 및 방과후학교 수업을 마친 조 군은 오후 10시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해야 한다. 더욱이 조 군은 모자라는 수학을 보충하기 위해 1주일에 두 번 ‘야자’ 대신 학원에 간다. 귀가하면 대략 오후 11시. 책도 좀 읽고 모자라는 단원을 정리하고 싶지만 조 군의 몸은 벌써 ‘파김치’. 펴놓았던 문제집을 접고 잠자리에 든다. 이날 조 군은 학교에서 무려 12시간 가까이 공부했지만, 스스로 공부한 시간은 채 30분이 안 된다. 

‘자기주도적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이라는 용어는 최근 교육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단어다. 지난해부터 외국어고, 일부 자율형사립고, 국제중은 물론 과학고 같은 특수목적고의 전형에는 입학사정관제의 일종인 ‘자기주도학습전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교생 10명 중 6명은 학교나 학원 공부 때문에 1주일 중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이 아예 없거나 5시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자기주도적 학습이 정부와 교육계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학생들은 시험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 교육에 의지하는 등 혼자 하는 공부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헤럴드경제DB]
대부분 학생이 교육당국에서 권장하는 ‘자기주도학습’을 하지 못하고 공교육이나 사교육 때문에 수동적 타율적으로 공부하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9일 한국교육개발원이 2009년 전국 165개 고교 1만1341명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 최근 공개한 ‘지식기반경제에서의 창조적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의 방향과 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고교생의 주당 독립적인 공부시간은 ‘5시간 미만’이 41.2%, ‘안 함’이 23.2%나 됐다. 총 64.4%가 하루 1시간도 공부하지 않는 셈이었다.

반면 고교생 중 1일 평균 학교 안에서 정규수업인 6~7시간을 포함해 자율학습, 방과후학교 시간 등을 합쳐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비율은 절반 가까운 46.9%, 학교 밖에서 학원이나 개인과외 등을 통해 2시간 이상 공부하는 비율은 50.8%나 됐다. 또 고교생 중 상당수가 ▷방학 중(64.4%) ▷학교 가는 토요일(42.7%) ▷공휴일(31.2%)에 학교에 나와 사실상 ‘타율’인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남는 시간에 원하는 공부를 하거나 여가시간을 활용하는 고교생도 많지 않았다. 주당 독서시간이 ‘없다’는 고교생이 31.2%, ‘2시간 미만’이 34.2%나 됐다. 고교생 중 65.4%가 1주일에 책을 채 2시간도 읽지 않은 셈이었다.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은 “교육당국은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며 입학사정관제를 확장시키고 있지만 일선 고교는 아직도 ‘시험 위주 줄세우기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지양돼야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창의적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상윤 기자/ken@heraldm.com 
 

“학원에 밀려…” 교실이 무너진다

학원서 밤12시까지 공부

학교서는 꾸벅꾸벅 졸아


선행학습으로 진도 끝내

수업흥미·집중도도 떨어져


계속되는 학원 순회, 자율 아닌 자율학습으로 인해 학생들이 혼자서는 제대로 공부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교사들은 선행학습과 기초학력 부실로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심하게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타율학습에 교실마저 무너지는 꼴이다.

서울 목동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곽모(35) 교사는 요즘 자괴감까지 느끼고 있다. 스스로는 학생들에게 수학의 원리와 공식의 유도 방법 등을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은 “빨리 책장을 넘기고 문제풀이나 해줬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얘기한다. 이미 학원에서 2~3년 이상 선행학습을 마친 상태라 수업에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2년 이상 반복되다 보니 곽 교사조차도 수업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잃어버렸다. 그는 “어차피 학원에서 배울 것은 모두 배우고 온 아이들이라 수업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선행학습을 안 해온 일부 아이는 해온 아이들을 보며 주눅이 들어 모르는 것이 있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결국 학기 중반이 넘어가면 이 아이들도 학원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모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모(48) 교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학생들에게 시나 문장을 가슴으로 읽고 다양하게 접근해 보라고 가르쳐도 학생들은 학원에서 가르쳐준 글의 주제나 감상 포인트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특히, 전날 밤 학원에서 11시, 12시까지 ‘자율학습’을 마치고 온 아이들은 오후가 되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만다. 다그쳐봐도 떨어지는 고개에는 장사가 없다. 


이러다 보니 수업에 대한 집중도나 이해도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2003년부터 전국의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교육 실태 및 조사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중학교 3학년 학생의 20% 정도가 국어시간에 수업시간의 절반도 안 되는 20분 이하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답했다. 수업시간 전부에 해당하는 41분 이상 수업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학생은 고작 17.8%에 불과했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여서 2009년 고등학교 2학년생의 71.35%가 국어 수업시간 중 30분 이상 집중할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수업시간이 학원에 가기 전 ‘쉬는 시간’으로 탈바꿈 하고 있는 꼴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김포 양곡고의 엄민용 교사(사회)는 “학생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판단ㆍ결정하지 못한다”며 “이런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대학교에 진학해 다른 학생보다 뒤처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