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맘' 은 힘들다
‘녹색어머니회, 사서 도우미, 엄마순찰대, 자모회, 당번 배식, 교실청소….’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의 역할이 학교 안에서 점차 확대되면서 초등맘들의 고민이 깊다.
아이의 알림장이나 준비물 등 학습 관련한 것은 물론 자모회에서 학교 청소 등까지 학교 안과 밖에서 해야 할 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김명영(38·대전 서구)씨는 지난 주 아이 교실 청소를 하고 왔다. 워킹맘인 김씨는 교실청소를 해야 한다는 다른 엄마의 전화에 반차를 내고 교실 책상부터 교실바닥, 칠판까지 2시간 넘는 청소를 했지만 기분은 영찜찜했다.
김 씨는 “아이가 공부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청소를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학교는 공부 뿐 아니라 아이들 사회성을 기르는 곳인데 이런 일들까지 마치 엄마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올해 아이가 초등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선미(38·충남 서산)씨 역시 지난 해 두 달에 한 번씩 했던 교실 청소 때문에 진을 뺐다. 김 씨는 “학부모가 그런 것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은 당연히 들었지만 봉사를 적극적으로 하면 해당 아이에게 교사의 관심이 더 가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해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기 힘든 ‘워킹맘’들에게는 다른 참여요구도 붙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를 둔 또다른 학부모 원 모(35)씨는 얼마 전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학급도우미로 활동하는 한 학부모가 토요일이나 학급 행사 때 간식을 담당해달라는 요청 전화였다
. 며칠 전 학부모회의가 있으니 참석해달라는 말에 워킹맘이어서 어렵다는 의사를 전했던 원씨에게 학부모 총회 때 회의 결과, 참석하지 않는 대신 1년 동안의 간식 담당을 주문한 것.
하지만 원씨는 간식을 준비하면서는 재차 황당함을 느꼈다. 전화를 한 학급도우미가 간식의 성질을 미리 요구했기 때문. 원 씨는 “간식 음료는 이런 종류로 해야한다고 미리 알려줬는데다 과자는 부스러기가 없는 것, 과일은 터지지 않는 것 등을 말하더라”면서 “누구의 생각인지 물어보니 담임교사의 요청이었다고 하는데 당황했지만 어쩌겠느냐”고 기막혀했다.
이렇게 학부모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면서 워킹맘과 전업주부 학부모 간 거리가 멀어지면서 해당 자녀끼리도 점차 어울리지않는 현상도 나타난다.
아이가 초등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영아(40·대전 서구 노은동)씨는 얼마 전부터 아이가 방과 후에 혼자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알고보니 워킹맘인 이 씨가 학교 활동을 안하면서 아이까지 소위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 이 씨는 기가 막혀 자모회장에게 전화를 했지만 ‘어쩌겠느냐’는 반응만 들었다.
이 씨는 “학교일 돕는 게 필요하긴 하지만 전업주부끼리 뭉치는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영향을 받게 되니 시간을 빼서라도 꼭꼭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다”라며 “초등 저학년일때만 신경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학년이 올라가서도 학부모가 고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학부모 총회 때 잠깐 봤던 담임교사가 아이에게 관심을 갖게 하려면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태반인 학부모들은 그나마도 시간을 가장 적게 뺏기는 청소나 배식당번 등이라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전시·충남도교육청에서 학부모교육도우미제를 실시하면서 일정부분 학부모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담임교사들 역시 학부모 못지 않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서도우미나 녹색어머니회 등에서 활동해야 할 학부모를 찾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학기초에는 방과후에 학부모들에게 참여 요청 전화를 일일이 하는 게 일과가 됐다.
충남 공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사서도우미 등은 그나마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인데도 학교에 매여있어야 하니까 부담스러워 하신다”면서 “녹색어머니회 역시 오전 일찍 나와서 아이들을 봐줘야 하는 게 있으니까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담임교사들 역시 시간을 뺏기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정을 알기 때문에 참여요청 리스트에는 아예 처음부터 워킹맘을 제외한다고 털어놓는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일에 이것저것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학부모의 자녀에게 눈길이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사실상 사정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분은 미리 가정조사 등으로 해서 요청 목록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양쪽이 다 고민인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일보 강은선기자/노컷뉴스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