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예양(16), 다예양(13), 승호군(11·오른쪽부터)이 방학에 학원을 가는 대신 집에 모여 책을 읽고 있다. |
ㆍ사교육 없는 김관순씨네의 ‘행복 교육’
ㆍ“공부·독서 알아서 하니 뿌듯”
서울 신대방동에 사는 주부 김관순씨(45)는 세 자녀를 사교육 없이 키우고 있다. 유지예양(16), 다예양(13), 승호군(11)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학원을 전혀 다니고 있지 않지만 성적은 상위권이다. 김씨는 “장기적으로 보면 학원을 다니는 것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게 사고력에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남편과 함께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맞벌이 때문에 자녀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빨래나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직접 하며 자랐다.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일이나 공부는 스스로 한다는 책임감이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맏이 지예양은 성적이 상위 6~7%에 해당한다. 지예양도 중학교에 진학하고 수학이 어려워 1학년 때 수학 전문 학원을 다녀봤다. 그러나 지예양은 “학습 진도가 맞지 않고 과제가 너무 많다”며 곧 그만뒀다.
어머니 김씨에 따르면 지예양은 평소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동네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3만원을 내고 바이올린과 드럼을 배웠고, 교회에서 한 달에 2만원 내고 성악을 배우기도 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적도 있고 학교에서는 교지를 만드는 편집부 팀장을 맡고 있다.
지예양이 공부를 할 때는 학교 정기고사가 시작되기 3~4주 전쯤부터다. 지예양은 이때부터 계획을 차분히 세워 시험 준비를 한다. 공부를 할 때는 집에서 하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오후 8~9시까지 하고 온다. 따로 독서실이나 시험 대비 학원에 다니지는 않는다. 김씨는 “자녀들의 성적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는 않는다”며 “본인이 세워둔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가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둘째 다예양과 막내 승호군도 학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승호군은 한동안 컴퓨터게임에 빠져서 가족들의 걱정을 샀지만, 결국 이 문제도 가족회의를 통해 해결됐다. 김씨 가족은 컴퓨터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1주일간 사용을 금지하는 벌칙을 만들었다. 지예·다예양은 동생이 벌칙을 받자 자신들도 컴퓨터 시간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통해 적정한 컴퓨터 사용습관을 만들어나갔다.
승호군의 공부방식은 이렇다. 집에서 문제집을 풀면 엄마나 누나들이 채점을 해주고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준다. 이 집에서는 엄마가 신문을 읽고 스크랩을 해 놓으면 아이들이 이를 읽고 반대되는 논지의 신문기사를 찾아 읽거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서로 나누기도 한다.
김씨는 “누나들이 항상 책을 보고 있기 때문에 막내인 승호도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무엇을 하라고 시키기 전에 가족들이 이미 그것을 하고 있으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고 말했다.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학원에 시달리는 친구들을 오히려 불쌍해한다”며 “지예와 다예, 승호는 같이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한다”고 전했다.
많은 학부모들이 학과목 학원에는 안 보내도 영어 사교육은 시키는데, 이 집에선 영어 학원도 보내지 않는다. 대신 김씨는 영어만 나오는 위성방송 프로그램을 신청해 아이들이 영어를 많이 듣고 보게 해주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된 만화영화를 보면서 영어 문장 등을 통째로 외우기도 한다. 김씨는 “지예와 다예의 영어 성적이 차츰 올라 지금은 상급반”이라며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다 발음도 더 좋다”고 말했다.
스스로 관리해야 할 시간이 많아지는 방학 때는 어떻게 할까. 가족들은 함께 모여 시간표를 짰고, 아이들은 여기에 따라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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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매는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마음대로 시간표를 짤 수 있다. 아이들은 놀기도 하고, 악기 연습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한다.
김씨는 2008년 ‘등대지기 학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사교육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등대지기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교사 등을 대상으로 사교육의 이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강좌를 진행한다. 지난해 10월 개강한 5기는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와 교육평론가 이범씨 등이 강사로 나오기도 했다.
등대지기 학교를 1기로 수료한 김씨는 “부모와 아이들 간의 신뢰가 교육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맞벌이로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을 ‘감시’할 수는 없지만, 대신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힘을 길렀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을 많이 다니면 어렸을 때 반짝 하고 말 수 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초기에는 빛을 발하지 못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과 사고력이 좋아진다”고 했다. 김씨의 자녀교육 신조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