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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공부는 어떻게?

우리학교 공부스타/서울 휘경여고 2학년 이정아 양

우리학교 공부스타/서울 휘경여고 2학년 이정아 양
[동아일보] 2010년 12월 28일(화) 오전 03:00   가| 이메일| 프린트


[동아일보] “나도 앞자리로” 심화반 맨 뒷줄서 투지 불태웠어요
 
 

《서울 휘경여고 2학년 이정아 양(17).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는 지난해까지 한 ‘성깔’ 했다. 수업 중 떠드는 친구를 보면 지체 없이 “조용히 좀 해줄래” 하고 말하는가 하면, 점심시간 식판을 숟가락으로 긁으며 밥을 먹는 친구를 보면 그 자리에서 “너 그렇게 먹지 마!” 하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즉석에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잠들기 전이면 늘 ‘학급 임원도 아닌 내가 대뜸 그런 지적을 하면 친구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쁠까’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다가 그런 핀잔을 주면 그 친구가 얼마나 창피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성격은 지문처럼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그러던 이 양이 변했다. 이 양의 ‘대전환’에는 선생님이 미친 영향이 컸다. 어느 날 선생님은 “요새 표정이 영 어둡다”며 그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겪는 이런 고통들을 선생님에게 솔직하게 토로했다.

“선생님은 ‘누구나 기분 내키는 대로만 살 순 없다’면서 ‘불만이 있어도 참는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욱’하는 성격은 일종의 열정과도 같은 것이니 공부에 쏟아보자고 말씀하셨죠. 남들의 잘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열심히 공부해서 스스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셨지요.”(이 양)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이 양의 성적은 썩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였다. 고1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평균 81점, 전교 502명 중 64등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험 일주일 전 ‘벼락치기’로 평균 90점 이상을 받았건만 고등학교에선 이런 ‘급땜질’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 양의 성적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건 학교 심화반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그는 지난해 6월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서 심화반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심화반은 학교 내신과 모의고사 점수가 높은 학생 48명이 모여 야간자율학습을 함께하는 곳. 이 양이 배정받은 자리는 심화반에서 맨 뒷줄인 12번째 줄이었다. 심화반에선 앞줄에 앉을수록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던 것.

“심화반 첫날이었어요. 딱 1시간 공부를 하고 나니 더 이상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앞줄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쳐다봤어요. 친구들은 2, 3시간을 쉬지 않고 뭔가를 열심히 필기하거나 문제를 풀더라고요. 얼마나 집중을 하던지 감독선생님이 불러도 못 듣는 학생도 있었어요. 전혀 다른 세상의 아이들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맨 뒷줄에 앉아 있다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이 양의 ‘뜨거운’ 성격은 이때부터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치열한 목표의식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조금씩이라도 앞줄로 가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고는 우선 공부시간을 늘렸다. 다른 친구들처럼 2, 3시간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있는 연습을 했다. 공부계획도 치밀하게 세웠다. 공부 시작 후 첫 1시간은 그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공책에 정리하는 시간으로 할애했으며, 그 뒤부턴 한 시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님의 침묵 정리하기’ ‘정규분포 문제 5문제 풀기’ ‘모의고사에 나온 단어 정리하기’처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갔다.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고1 1학기 기말고사에선 전교 47등, 2학기 중간·기말고사에서는 각각 전교 21등, 17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2학년이 된 이 양은 자연계를 선택했다. 급기야 그는 ‘이제는 심화반의 맨 앞줄에 앉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곤 첫째 줄에 앉아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등교시간인 오전 7시보다 30분 일찍 와 심화반 불을 켜고 앉아 공부를 하더라고요. 수업시간이든 자습시간이든 잠을 자는 모습을 못 봤어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을 보는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모드’였어요.”

이런 자극의 씨앗은 긍정의 에너지를 이 양의 내면에서 ‘핵폭발’시켰다. 쉬는 시간에는 푹 쉬고 심화반에 있는 오후 6시 반부터 오후 11시까지의 자습시간을 십분 활용하자는 전략을 택했다. 자연계인지라 특히 수학에 주력했다. 그에게 수학은 1학년 때 58점까지 받아 봤던 ‘천적’ 같은 과목이었다.

“모르거나 틀린 수학 문제는 우선 풀이를 찾아본 뒤 다시 풀어 봐요. 그러고는 체크를 해두죠. 2, 3일이 지난 뒤 체크한 문제를 다시 풀어 봐요. 이때 풀 수 있으면 ‘○’ 표시를, 못 풀면 다시 체크를 하고 며칠 뒤 같은 과정을 반복했어요.”(이 양)

이 양의 집념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고2 2학기 중간고사 수학점수는 98점. 중간고사 평균 94점으로 자연계에서 전교 1등을 한 것! 심화반 맨 뒷줄에 앉아 있던 학생이 15개월 만에 맨 앞줄로 전진하는 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까지 저에게 ‘뒷모습’을 보여주며 제 앞줄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이젠 ‘어떻게 공부했느냐’며 제게 물어오기도 해요. 심화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첫 번째 자리가 저의 자리라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답니다(웃음).”(이 양)

이 양은 어느덧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장 깐깐하고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는, 그런 아름다운 학생으로 변해 있었다.

김종현 기자 nanzz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