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남이 문제 풀어주는 건 독…스스로 깨쳐야 진짜 실력

choib 2013. 6. 25. 10:43

남이 문제 풀어주는 건 독…스스로 깨쳐야 진짜 실력”

등록 : 2013.06.24 19:50수정 : 2013.06.24 19:50

 

 

양영기 선생님이 6월14일 오후 경기도 안양 신기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분수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안양/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사교육 탈출] 양영기 교사의 수학 학습론

수학은 사고력을 총동원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목이다. 그런데 학원 강의를 들어본 아이들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풀었더라’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학원을 끊을 수 없게 되는 이유다.

2012년도 사교육비 현황조사에서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6조200억원이라는 돈을 수학 사교육에 쏟아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사교육비 현황을 보면 영어와 국어 과목은 미약하게나마 줄고 있는 반면, 수학 과목은 오히려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중 평균이 가장 저조한 과목이 또한 수학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 직전까지 그렇게들 오래, 열심히 수학 사교육을 시켰으면 수학을 잘하게 될 법도 한데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경기도 안양 신기초등학교 양영기 교사는 과거 한때 수학 사교육에 종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학부모들에게 수학과목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이상한 현상의 원인에 대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아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수학을 좋아하고, 조금 더 수학을 잘하게 할 수 있는 비법도 살짝 들려준다.

수학 잘하는 아이들은
모르는 문제 만났을 때
이해될 때까지 고민한다
개념·원리 깨치는 데
가장 좋은 학습서는 교과서다

미리 많이 볼수록 잘하기 어려워

학부모들은 수학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미리 공부해서 아이가 수학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혹은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나가도록 사교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영기 교사는 고도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요하는 과목의 특성상, 수학 사교육을 받는 것이 오히려 학습력에 ‘독’이 된다고 말한다.

“수학은 단순히 많은 문제를 풀거나 비슷한 수업을 반복해서 듣는다고 잘하게 되는 과목이 아닙니다. 지니고 있는 정보와 사고력을 총동원해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과목이지요.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누군가 어떤 문제를 풀어주는 과정을 여러 차례, 미리 ‘본’ 아이들은 수학문제를 대할 때 ‘어떻게 풀어야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풀었더라?’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요. 그러고선 ‘풀이과정’을 외웁니다.”

이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누군가가 풀어 준 ‘독’을 많이 마신 아이들이 고등학생 무렵이 되면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를 잘 풀어내지 못한다. 자기주도적 사고 연습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상대적으로 수학이 쉬운 초등학교 때는 좋은 성적을 받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대부분 성적이 떨어지게 되는 이유이고, 또 학원을 끊을 수 없게 되는 이유라고 한다.

‘개념과 원리’에 집중 못하는 사교육

양영기 교사가 말하는 수학을 정말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 이해하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한 문제를 가지고 몇날 며칠이고 개념과 원리가 이해될 때까지 고민한다. 학원은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을, 게다가 아직 배우지 않은 상위 학년의 어려운 내용을 학습시킨다. 또한 대부분의 수학학원들은 문제풀이 위주로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은 가장 중요한 개념과 원리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다. 오래 학원에 다녀 상위 학년의 문제를 풀고 있으면서도 막상 현재 학년에서 배우고 있는 수학의 개념과 원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양영기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도 수두룩하다.

“수학은 누가 지식을 가르쳐줘서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념과 원리를 깨치고 문제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사교육 없이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은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죠. 이런 아이들은 서로 다른 문제집을 여러 권 풀기보다 하나의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어봅니다. 문제집을 여러 권 푸는 아이들은 같은 문제를 계속 틀리지만, 한 권을 여러 번 푸는 아이들은 한 차례 틀렸던 문제는 다시는 틀리지 않습니다. ‘개념과 원리’를 스스로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같은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기 때문이죠. 지금 대입 수능에서 나오는 수학문제들은 하나의 문제를 두고 다양한 방법으로 개념과 원리를 적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유형별 풀이방법을 외웠던 아이들은 따라가기 힘들지요.”

그가 강조하는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습서는 바로 교과서다. 교과서에 나오는 질문들은 수학의 기본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개념과 원리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틀린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찾는 것

양영기 교사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 중요한 건 환경이라고 말한다. 수학은 다른 어떤 과목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익힐 수 있는 학문이기에 학부모의 정서적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한데,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에 오래 집중할 수 있으려면 아이들을 유혹하는 자극들(스마트폰, 컴퓨터, TV, 게임기 등 아이의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이 적어야 한다. 학부모들은 아이와의 끈끈한 정서적 교감이나, 아이가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집안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학원에 맡기는’ 손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나 다른 요인들의 변화 없이 학원만 다녀서 수학을 더 잘하게 되는 아이는 없다는 게 양 교사의 지론이다.

“수학을 잘하려면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 유대와 소통이 중요합니다. 시험 점수를 보고 부모가 왜 틀렸느냐고 몰아붙이면 아이들은 틀리는 것, 즉 실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순간 아이들은 창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지요. 어른들도 그렇잖아요. 책임에 대한 처벌이 심할수록 창의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려고 하지요. 아이들에게 왜 틀렸느냐고 묻지 말고, 모르는 것을 많이 찾았구나 하고 말해주면서 과정을 격려해 주세요. 수학은 정말로 지금 당장의 성적에 조급해하지 말고, 길게 보고 기다려 주는 게 필요한 과목입니다.”

양 교사는 반 아이들에게 나눗셈을 가르칠 때 “4 나누기 2가 얼마니?”라고 묻지 않고, “4 나누기 2가 무슨 뜻이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처음에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2”라고 답하다가, 답을 물은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의 뜻을 물어본 것을 깨닫는 순간 개념과 원리를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은 어떤 좋은 교사가 아니라 나눗셈을 처음 대하는 우리 아이들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아이들에게서 이런 근원적인 호기심을 빼앗아 간 것은 과연 누구인가?

<수학 학습 부진아의 인지적, 정의적 특성 분석>(남미선·박만구, 한국수학교육학회지, 2008)이라는 논문에서 수학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이해 없이 무조건 지식을 암기하는 특성을 보이며, 정확히 아는 것보다는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정리해 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그리고 우리 학부모들은 매년 6조200억원이라는 돈을 들여 문제풀이 중심의 수학 사교육을 통해 결국 우리 아이들을 ‘수학 학습 부진아’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학부모들은 무모한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어떤 음모’ 속에서, 아이들을 ‘수학 학습 부진아’로 만들고 있으면서도 아이 교육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며 안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부모보다 지금 우리의 제도가 더 큰 문제 아니냐고 누군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어려운 수학을 배우면서 3년 동안 배워야 할 분량을 수능 준비를 위해 2년 동안에 축약해 허덕이며 배워야 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수학 학습 부진아’로 남겨놓을 것인가. 학부모가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제도는 우리가 알다시피 언제나 가장 최후에 바뀐다. 그때까지 우리 아이들을 수학 학습 부진아로 만들며 마냥 기다려야만 할까?

인간은 무엇이든 힘들여 얻을 때 그것에 큰 가치를 두고 소중히 여기게 되는 법이다. 지금 넘치는 풍요 속에서 아이들에겐 소중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배움’도 그 가운데 하나 아닐까. 학원에서 이미 보았고, 학원에 가면 언제라도 다시 보여주는 ‘수학문제’가 아이들에게 소중할 리 없다. 소중하지 않은 것에 아이들이 사고력을 집중할 리 없다. 양영기 교사는 그간 가르친 아이들의 사례를 모아 <학교만으로 충분한 수학>이라는 책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여기 아니면 앞으로 어디에서도 다시는 배울 수 없다고 여길 때, 아이들에게 배움은 지금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될 것이다.

김정주/작가 where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