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시험감독 없는 이 학교, 6년간 커닝은 단 한 건뿐

choib 2013. 5. 22. 21:58

시험감독 없는 이 학교, 6년간 커닝은 단 한 건뿐


 

인천 남동구 한국문화콘텐츠고등학교 2학년 3반 교실에서 이 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시험 감독 없이 중간고사를 치르기에 앞서, 교내 방송에 따라“내 점수는 양심 100%” 라고 선서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양심考査' 치르는 인천 한국문화콘텐츠고교에 가다]

인성교육? 말보다 실천 - 시험 전 전교생 '양심 선서'… 99%가 "커닝 본 적 없어"

부정행위는 원천봉쇄 - 교실마다 학년 섞어 시험, 누가 어느 책상 썼는지 기록

졸업 후 취업도 잘 돼 - 기업들 "學風이 영향 커… 성적·스펙보다 양심 중요"


잠 못 자서 눈 밑이 컴컴해진 여고생들이 동자승 염불하듯 요점노트를 달달 외웠다. "사헌부는 비리를 감찰하는 기관, 비리를 감찰하는 기관…."

지난 6일 오전 11시, 인천 남동구 한국문화콘텐츠고등학교 2학년 3반. 1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 3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여느 학교나 다름없던 쉬는 시간 풍경이 종 치기 5분 전 확 달라졌다.

교사들이 각 반에 들어와 교실을 정돈하고 답안지를 나눠줬다. 시작종과 함께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무(無)감독 시험은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학생들이 기립해 "내 점수는 양심 100%" 라고 선서했다.

교사들이 반마다 시험지를 나눠주고, 학생들이 문제 푸는 모습을 3~5분간 지켜보다 조용히 교실을 떠났다. 층마다 2명씩 남았지만, 부정행위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강종례(53) 교무부장은 "갑자기 배앓이를 하거나 답안지를 새로 달라는 학생이 간혹 있어 복도 한쪽에 대기한다"고 했다. 복도에 남아봤자 창문이 높아(창틀 기준 165㎝) 교실 안을 엿보긴 쉽지 않았다.

이 학교는 1974년에 문을 열었다(옛 문성여상). 연립주택과 상가가 오밀조밀 들어선 동네에 있다. 교정엔 라일락 꽃가지가 흔들리고, 때때로 새끼 고양이 두어 마리가 '야옹' 하고 건물 그늘을 가로지른다. 전국 중학생이 100명이라면 15~70등 사이 학생들이 이 학교에 다닌다. 2~3년 전만 해도 졸업생 70~80%가 대학에 갔다. 이후 추세가 달라져 작년 졸업생은 47%가 '선(先)취업'을 택했다. 진학하는 학생이건 취업하는 학생이건, 학교가 내세우는 교육목표는 같다. ①꿈이 있고(Dreaming), ②책을 읽고(Reading), ③실천하는 아이(Practicing)를 기르는 것이다. 김기동(62) 교장은 "이 세 가지를 익힌 아이는 인생이 고달파도 결국 일어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학교는 전교생에게 '꿈 노트'를 쓰게 한다. 졸업식 때 공부를 제일 잘한 학생과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학생이 나란히 졸업생 대표로 연설한다. 마지막 항목인 '실천'을 가르치려고 도입한 게 무감독 시험이다. 김 교장은 "인성교육, 인성교육 하는데 몸에 배게 가르쳐야 진짜 인성교육"이라고 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양심적으로 시험 치자"고 꾸준히 독려한다. 그렇다고 마냥 학생들 양심에만 맡겨두는 게 아니라, 부정행위를 하려야 하기 어려운 시스템도 구축했다. 시험 기간이면 학생들은 자기 교실 말고 다른 교실에서 학년별로 섞여서 시험을 친다. 책상마다 '좌석 사용 실명제 표'를 붙여놓고 누가 몇 교시에 어느 책상을 썼는지 직접 적는다. 매일 집에 가기 전에 해당 교실에서 벌어진 수상쩍은 일과 불만을 익명으로 적어낸다.

이번 시험 기간에 걷힌 설문지를 보니 별 얘기가 다 나왔다. "쉬는 시간에 1학년이 떠들었다. 어떻게 1학년 목소리가 3학년보다 크냐"(3학년), "3학년이 더 떠들었다"(1학년), "인간적으로 수학 너무 어려웠다"(3학년)…. 강 교무부장은 "아이들이 적어낸 건 그날 안에 확인한다"고 했다.

최근 6년간 이 학교에서 확인된 부정행위는 단 한 건이다.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뒀을까? 이 학교라고 착한 학생만 가려 받을 순 없다. 특성화고라고 성적 압박이 덜한 것도 아니다. 일반고 학생이 명문대를 열망하듯, 특성화고 학생은 대기업·공기업·금융권 취업을 열망한다.

취재팀은 전교생 906명(결석·지각·실습생 23명 제외)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6명 중 1명꼴(146명·16.1%)로 "나도 커닝의 유혹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대다수가 "유혹만 느꼈지 진짜 시도한 적은 없다"고 했다(145명). 재학생 절대다수가 "재학 중 한 번도 부정행위를 못 봤다"고 했다(892명·98.5%).

3학년 문수빈(18)양은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데 정말 부정행위를 안 할까' 싶은가 보죠? 저희 정말 안 해요"라고 했다. "부정행위를 막는 장치가 잘 되어 있어요. 서로 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요. 이걸 깰 필요가 없다고 다들 생각해요. 이렇게 쭉 하다 보니 공부해서 점수 얻는 게 당연해졌어요. 최근 외부에서 취업 관련 시험을 쳤는데, 감독이 있어서 오히려 낯설었어요."

이 학교 졸업생을 많이 뽑는 기업 중 하나가 린나이코리아다. 이 회사 송주섭(49) 인사노무차장은 "매년 신입사원을 받아보면 확실히 학풍(學風)이 있는데, 실망스러운 학교는 이듬해 안 뽑는다"고 했다. "도덕심은 사회 진출 전에 익혀야지, 뽑고 나서 주입하긴 어렵더군요. 일 못하는 직원은 가르치면 되지만 출결과 보안이 안 되는 직원은 못 데리고 있어요. 기업이 성적·스펙을 볼 것 같지요? 양심을 더 많이 봐요."



[인천=김수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