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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촌중학교의 체육 수업 풍경. 이 학교는 매주 화·수·목요일 오전(2~4교시)에 체육 수업을 배정, 전교생이 운동장과 강당에서 열리는 다양한 신체 활동에 참여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신영 기자 |
지난 1월 27일은 교육부가 1년 전 제정한 학교체육진흥법이 시행되는 날이었다. △1학생 1스포츠 활동 △여학생 체육교육 활성화 △학교 체육 전담교사 연수 등을 골자로 하는 학교체육진흥법은 입시 위주 교육에 쫓겨 심신의 건강을 잃어가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부가 내린 일종의 '긴급 처방전'이다. 온 신경이 자녀의 대학 입시에 쏠려 있는 학부모 입장에서 이 같은 조치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체육 강화는 이미 교육계 '대세'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적지않은 전문가가 학교 체육의 힘을 '체육 그 이상'으로 진단하는 게 현실이다. 맛있는공부는 학교체육진흥법 시행을 계기로 학교 체육의 현황과 성과, 과제를 아우르는 기획 지면을 마련했다. /편집자
①현황과 성과│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김승겸 교육부 인성체육예술교육과 연구사는 “교육에서 스포츠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말한다. “인성 교육도 운동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통해 신체 접촉을 경험한 학생 간 폭력 발생률은 현저히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죠. 신체 활동을 통해 친해진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갖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학업 향상 효과까지 노릴 수 있어요.”
◇성적 올리고|성공 요건은 ‘재미’ 발견
실제로 교육부는 학교체육진흥법 시행 이전에도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 학교 체육 활성화에 힘써 왔다. ‘토요 스포츠 데이’ 운영 학교에 체육 재능 기부자를 명예 교사로 파견하는가 하면,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교 축구와 고교 야구를 주말리그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2007년 8.1%에 불과했던 학교 스포츠클럽 등록률은 84.2%로 ‘수직상승’ 했다. 지난 2010년 694개에 불과했던 전국 초·중·고교 학생 전용 체육관 역시 지난해 1253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인천여상’) 3학년 유슬기양은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몸살·복통 등 잔병치레에 시달렸다. 누적 결석일은 30일을 훌쩍 넘겼고 체육 시간은 으레 ‘몸 사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체육 활성화 학교’로 이름난 인천여상에 진학한 이후 그는 지금껏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반 석차도 중위권에 머물렀던 중학교 시절과는 달리 5등 이내를 유지한다. 변신 계기는 교내 건강경영반 활동이다.
“체육 담당 허태련 선생님의 권유로 건강경영반에 가입해 ‘줄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줄리댄스는 ‘줄넘기 리듬 댄스’의 줄임말인데 허 선생님이 직접 개발하셨죠. 처음엔 힘들었는데 계속하다 보니 은근히 재밌더라고요. 그 매력에 빠져 운동을 계속 하게 됐습니다.”
◇자신감 찾고|비만 해결 등 긍정적 효과
박주영(40) 숭실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재단법인 한국청소년건강재단이 시행한 건강교실 연구진의 일원으로 다양한 검사를 실시했다. 6개월 이상 학교 체육을 경험한 학생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과 집중력 향상 정도를 알아보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그는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일수록 운동을 통해 비만 해결 등 긍정적 신체 변화가 나타나면 정서적 측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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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장유정양·전소은씨·김주희양. /이신영 기자 |
올해로 3년째 한국청소년건강재단 ‘운동 멘토’로 활동 중인 윤영민(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4년)씨는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앓는 학생에게도 배드민턴·탁구 등 집중력 향상에 유용한 운동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 보내는 훈련을 거듭하면 집중력과 순발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어요. 인내력을 키우려면 근력 운동을 하는 것도 좋고요. 제일 중요한 건 운동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거예요.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오거든요. 그걸 억누를 엔돌핀이 생성될 때까지 운동을 계속하려면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②과제│ 여학생 체육 활성화 방안 "스포츠 관련 이력도 휼륭한 자소서 소재"
김주희(서울 가락고 3년)양은 교내 여학생 축구클럽 ‘발모아’에서 3년 내내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반에서 그처럼 스포츠를 즐기는 여학생은 많지 않다. “정원 40명 중 체육 시간에 활발한 여학생이 대여섯 명뿐이어서 피구 한 번 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역시 3년간 발모아 주전 선수로 뛴 김양의 동갑내기 친구 장유정양은 초·중학생 시절을 외국인학교에서 보냈다. 그의 눈에 ‘학교 체육 활동 반영률’이 지극히 미미한 국내 대학 입시는 물음표투성이다. “고교 3년을 꼬박 교내 스포츠클럽에서 뛰었고 관련 봉사 활동도 꾸준히 해 왔어요. 하지만 막상 3학년이 되고 보니 그런 이력을 활용해 원서 쓸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는 “해외 대학에선 신입생을 선발할 때 지원자의 학창 시절 스포츠클럽 활동을 비중 있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더라”며 “‘대학 가는 데 도움 된다’는 확신이 생기면 학교 체육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전소은(성신여대 독어독문학과 1년)씨는 또래 중에선 드물게 학교 체육을 십분 활용, 성신리더십우수자 전형(현 성신체인지 전형)으로 지난해 성신여대에 합격했다(성신리더십우수자 전형 시 필수 제출 서류인 교사 추천서엔 지원자의 교내 예체능 활동 내용을 적는 문항이 포함된다). “어릴 때부터 체육 성적이 좋아 ‘스포츠 관련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어요. 초등생 시절 반 대표 계주 선수를 놓쳐본 적이 없고 고 2 땐 교내 반별 대항 배구대회에서 주장을 맡기도 했죠. 그러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과정을 지켜보며 ‘스포츠 외교관’이란 꿈이 생겼어요. ‘대학에 가서 (외교관의 필수 자질 중 하나인) 외국어 실력을 기르자’는 생각을 자기소개서에 담아 입시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습니다.”
전소은씨는 두 후배에게 “자기소개서 등을 통해 학교 체육 관련 이력을 간접적으로 소화해보라”고 충고했다. “대학이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필수 문항 중 하나가 ‘위기 극복 사례’에 관한 거예요. 대부분의 지원자가 이 얘길 들으면 어려운 가정형편 등 무거운 주제를 떠올리는데 반드시 그렇진 않아요. 주희양의 경우, 지난해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었다가 감독님 덕분에 재기에 성공했다고 했죠? 그 역시 ‘운동으로 닥친 위기를 운동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답변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남미영 맛있는공부 기자]
[최민지 맛있는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