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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고 입학’의 오랜 꿈을 이룬 권효은양은 “성적이 생각만큼 안 나온다고 울상지어봐야 달라질 게 없어 이왕이면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했는데, 그 덕에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김승완 기자 |
교육 관련 명언 중 '학업엔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진부한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말은 진리다. 공부에서 '성적을 극적으로 올려주는' 비기(秘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성실하고 꾸준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하지만 좀처럼 오를 기미가 안 보이는 성적을 견뎌내며 묵묵히 책상 앞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대일외국어고 신입생이 된 권효은양은 모범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초등학교 때 '꼴찌' 수준이었던 성적을 중학교 때 중위권으로 끌어올린 후, 마침내 상위권 학생만 들어갈 수 있다는 서울 소재 외국어고(이하 '외고') 진학에 성공한 주인공이기 때문. 화려한 비약 대신 꾸준한 지구력으로 목표를 달성한 그는 "'난 반드시 잘 될 것'이란 믿음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목표 발견할 때마다 한 뼘씩 성장
권양은 초등학교 입학 직후 처음 치른 받아쓰기 시험에서 0점을 받았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입학 직전 귀국한 탓에 우리말·글 실력이 또래에 비해 영 서툴렀던 게 원인이었다. 반면, 역시 미국에서 자란 두 언니는 곧바로 한국 교육에 적응하며 이내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권양의 부모님은 막내딸이 저조한 성적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언니들과의 비교도 삼가며 각별히 신경 썼다. 다행히 '받아쓰기 0점'의 악몽은 비교적 빨리 떨칠 수 있었다. 100점짜리 답안지를 받아든 권양은 한동안 점수가 오른 게 자신의 노력과 부모님의 도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양이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해지지 않도록 당시 담임 교사가 권양의 부모님에게 시험 범위를 귀띔해준 덕분에 가능한 결과였다. (초등학교 졸업 직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권양은 이후 줄곧 '교사'를 꿈으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말 구사력은 향상됐지만 성적은 더디게 올랐다. 초등 6학년 1학기 때 반 성적은 27등, 교사를 꿈꾸게 된 6학년 2학기 때 반 성적은 17등 선이었다.
그가 적극적으로 공부 욕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 둘째 언니의 외고 진학을 지켜본 이후부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학구열 넘치는 교실 분위기와 다양한 동아리 활동 얘길 많이 들려줬어요. 그러면서 점점 '나도 외고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됐죠." 당시 권양의 성적은 전교 200등 수준에 불과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성적표에선 영어·기술·가정 등 극히 일부 과목을 제외하면 '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제가 외고에 가고 싶다니까 절 잘 아시는 선생님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시더라고요. 근거도 없이 절 '대기만성형'이라며 격려해준 가족이 없었다면 외고 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예요."(웃음)
◇"자기 한계 스스로 짓지 않아야 성공"
다행히 1지망 학교였던 대일외고에선 중학교 내신 성적을 2학년 것부터 반영했다. 권양은 그 사실을 안 후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외고 입시를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영어 성적 우위는 계속 유지하되, 나머지 과목 성적도 침착하게 하나씩 올리겠다'는 목표부터 세웠다. "영어와 수학은 언니가, 암기 과목은 엄마가 매일 퀴즈 형태로 문제를 내며 도와주셨어요. 그 덕분에 2학년 1학기 들어 국어·수학을 제외한 전 과목에서 '수'를 받을 수 있었죠. 공부에 탄력이 붙은 후엔 시험을 한 번씩 치를 때마다 전교 등수가 20등 이상 올랐어요. 물론 전교 50등까지 오른 후엔 좀처럼 안 올라 한동안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요."
슬럼프 극복의 비결은 예의 그 낙천적 성격이었다. '성적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에 임한 것. 다만 외고 진학이 목표인 만큼 영어 공부엔 심혈을 기울였다. 한때 '미국서 살다 왔다'는 자만심에 우쭐해 공부를 게을리해 영어 내신이 2등급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교과서 통째로 외우기' 방식으로 악착같이 공부해 다음 번 시험에서 금세 1등급을 회복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달 27일, 권양은 새로 맞춘 대일외고 교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초·중학교 9년간 한 번도 전교 1등을 못 해봤어요. 그래도 만족합니다. 제 목표를 이뤘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니까요. 저처럼 지금 성적은 높지 않지만 분명한 꿈을 지닌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일단 나아갈 방향을 확실하게 정한 후 본인의 능력과 열정을 믿고 우직하게 노력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답니다. 제가 바로 그 증거잖아요."
[남미영 맛있는공부 기자]